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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욤뇸 Aug 27. 2021

우연히, 운 좋게 너랑 함께해

- 우연인 듯 인연인 듯




망아지를 선물 받게 해 주세요.


 방에서 밥도 주고 먹이도 주면


되니까요 꼭이요!




크리스마스이브에 나의 소원은 '망아지'키우기.

 tv에서 보던 망아지가 너무 귀여웠고,

산타할아버지가 내게 망아지를 선물하면

책상 아래 공간에서 의자를 치우고

내 망아지를 키울 거라 다짐했다.


당연히 현실 가능성은 없었지만 이 소원은 현실과 타협해 '망아지'에서 '강아지'로 옮겨갔다.


매일매일을 그렇게나 졸라댔다.

강아지를 키우면 똥도 치울 거고

밥도 줄 거고 목욕도 시킬 거라며 졸라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지방 출장을 갔다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오겠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건설 일을 하셔서 지방 출장이

잦았고 때문에 나랑 서먹서먹한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나 기뻐 아버지에게

질문을 20가지는 한 거 같다.


무슨 색 강아지인지

털은 짧은지 긴지

무슨 종류인지 한참을 물어봤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내가 물어도 맞다고만 하셨다.


'아빠, 털 짧아? 다리도 짧아?'


 '웅'

'그러면 닥스훈트인데... 털이 그렇게 없어..?'


사촌에게  물려받은 빛바랜 '동물도감'책을 한참을 붙잡고 강아지 종류란 종류는 다 읽어보았다.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건 '포메라니안'이었다.

여우같이 생긴 게 너무나 귀여웠고

13살의 나는 내가 원하는 대답을 듣기 위해

아빠를 물고 늘어졌다.



'아빠, 여우같이 생겼어? 그럼 포메라니안이야!'


포메라니안을 만날 생각에 두근두근하며

마치 강아지를 미리 만난 듯

피카추 인형 위에 이불을 폭 덮어주고  

꼭 껴안아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아버지의 손엔 작디작은 새장이 들려있었다.

그 속에 있던 건 바로 재롱이었다.


재롱이는 다리가 짧은 닥스훈트도 아니고,

나의 꿈인 포메라니안도 아니었다.

그 당시 길에 지나가면

10중에 10은 보이는 몰티즈였다.


여수에서부터 올라온 재롱이는

간신히 눈을 뜨고 있는 새끼 강아지였고

장거리 여행에 지쳐

새장 속에서 축 늘어져 잠이 들었다.

재롱 이를 보자마자 1초 간만 실망했지만


우리 집에 온 강아지,

내 강아지라는 생각에 너무나 신이 났다.

하루 종일 자는 재롱 이를 지켜보다

깨지 않으면 톡톡 앞발을 건드려 깨워보기도 했다.


엄마는 강아지는 손타병난다며

잘 때는 재롱이 와 우리를 분리시켜놓았다.


너무나 행복했다. 다 가진 것 같았다.

학교에 자랑해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고,

일기장에 재롱 이를 열심히 따라 그렸다.


일기지만

 일기 아닌

 전체 공지처럼

글을 써 내려갔다.


우리 집에 강아지가 생겼다.

 자랑스럽게 글씨도 꾹꾹 한 자 한 자 눌러썼다.




운 좋게 함께해, 재롱이


동생과 나는 강아지가 온

다음날부터 이름을 짓겠다고 난리난리를 쳤다.

지금은 없지만

 그 당시엔  두꺼운 가죽케이스를 두른

'국어사전'이 있었고


작명가가 된 듯

내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마음먹었다.

솔직히

그때만큼 국어사전을 한 장 한 장

깊게 읽을 때는 지금껏 없었다.

그곳에서 발견한 이름이 바로 재롱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동물병원에 가면

재롱이는 뒤에 핸드폰 번호를 붙여야 한다.

강아지 10마리 중 3-4 마리 이상은 다

재롱이, 초롱이였으니까.


창의력 없던 어린 작명가에게

그것도 큰 충격이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재롱이는 우리 재롱이니까.


한참을 재롱이 와 함께하던

어느 날, 엄마가 말했다.

재롱 이를 보내야 한다고

사실 재롱이는 우리와 함께 하러 온

강아지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직장동료분이 데려다 키우라고 준걸

잠시 맡았다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기로 한 거였다.


, 우리는 임시 보호자였다.

헌데 강아지를 데려다 키우겠다는 분의

 경제상황이 급격히 안 좋아져

데려다 키울 수 없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임시보호기간이 길어지자 결정을 내렸다.


어린 우리가 정이 들기 전에 떻게든

다른 집에 보내자고

우리를 설득시켰다.


재롱 이를 다른 집에 보내자고


나는 정말 거실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절대 안 된다고 동생과 함께 시위를 했다.

내복 바람으로 재롱 이를 꼭 안은채

절대 안 된다며 입술이 주욱 나와있었다.

우리만큼 재롱 이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이미 다 큰 재롱이가

다른 집에 가면 잡종이라고 무시당할 거라는

(재롱이는 푸들 +말티자브종)

나름의 근거도 늘어놓았다.


몇 날 며칠을 시위를 했고,

재롱이에게 잘하겠다는 다짐을 받고 나서

엄마는 우리에게 두 손 두발 다 들었다.

그렇게 재롱이는 우리와 함께하기 시작한다.



우연하게 만났지만 운 좋게 만난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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