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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빗소리 May 16. 2024

생에게

5

생(生)에게



 명상 박물관 앞

 안내표지판을 수줍게 숨긴 11월 은행나무와

 그 나무들 이야기가 끝없이 펼쳐지는 노란 은행나무길의 저 너머까지

 바람을 맞으며 지켜보았다

 우수수 떨어지면서

 기꺼이 아름답게 쓰여지는, 쓰러지는

 노란 잎들

 노란 잎들의 마지막을


 제가 키운 무게를 한 번도 짊어져본 적 없는 풍경은

 저토록 아름다울 수 없고

 다시 또 그 빛나는 공중을 내려놓지 않은 자

 기필코 행복할 수 없어서


 눈부심을 버리는 눈부심

 미풍의 허공 같은, 그런 나무를 닮은 사람 만난 적 있어서


 오랜 전생처럼

 낯익은 바람결을 따라 져 내리는 동반자의 미소가

 내 캄캄한 그림자 위로

 노란 심장과 같이 떨어져


 닿았다


 세상의 모든

 최소한의 존재들이 밟고 내려오는 無의 계단들을 따라


 내가 쓰고 싶은

 보이지 않는

 우리의 노랗고 먼 문장들이




* 이것저것 시도한 것들이 잘 되지 않던 서른 즈음의 가을. 버스 차창 너머로 노란 눈처럼 흩날리며 떨어지던 은행잎들을 보았다. 애쓰던 것들을 내려놓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한 번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적이 있었던, 당신과 걷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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