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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Jun 23. 2024

다섯번째 혼밥은 국물이 시원한 금수복국

저녁으로 복국을 먹었더니 엄청 시원했다. 발렛이 아주 친절했고 맛이 있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은 다음 요트를 타러 갔다. 7시 예약이었고 30분 일찍 오라고 했는데 식사를 마치니 5시 반이었다. 한 시간가량이 남아있었지만 카페를 찾아가서 커피를 마시는 시간 합하면 시간이 모자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선착장에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주차장에 자리가 없어서 귀퉁이에 붙여 대고 갔다. 해운대의 파크하얏트 건물이 빛나고 있었다. 앉을자리를 찾았더니 어르신들이 자식 이야기를 벤치에서 하고 있었다. 소리가 지나치게 컸지만 야외 공간이니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글을 쓰겠다고 길게 휴가를 냈지만 그렇다 할 글은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가상의 인간을 창조하려니 결국 내 이야기로 귀결되었다. 구체성을 위해선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삼십 분간 쓰고 있었더니 여성 두 명이 앞 벤치에 왔다. 한 명은 간병인이고 한 명은 할머니 나이쯤 되어 보이는 언뜻 보면 자매 같기도 했는데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물리치료 해주기 시작했다. OK?라는 말을 계속하면서. 그들이 행위를 시작하자 할아버지 무리들도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러다 그들이 가자 다시금 목소리가 커졌다.


글을 쓰다 보니 요트 시간이 다가왔다. 어릴 때 타본 적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타보는 것이었다. 사람은 나 포함 3명이었는데 커플은 강아지를 데리고 탔다. 강아지는 처음에 타지 않겠다고 버텼지만 줄을 끌자 순순히 따라왔다. 요트는 출발했고 바닷바람이 기분 좋았다. 사람이 적어서 더욱 좋았다. 다른 요트를 보니 10명 이상은 족히 되어 보였다. 음악을 틀어주었는데 순간을 기록하려 영상을 찍었다. 물결이 굽이쳐 얼룩무늬를 만드는 걸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도시에서 살 때와는 다른 시간관념이었다. 이곳의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자꾸 시간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었고 다음타임에 무얼 할지 계산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었다. 직원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고 찍힌 사진을 보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요트에서 내릴 때쯤엔 노을이 지고 있었는데 하늘을 붉게 물드는 색이 너무 아름다워 그 앞에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연사를 찍었더니 새삼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요트에서 내려서도 한동안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호텔로 출발했다. 차를 가져와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는 밥을 먹고 좋은 걸 보는 것만으로 피곤해지고 말아서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면 엄청 고단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택시 뒷자리에 앉아 멀미하는 건 더욱 끔찍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역시 라이딩이었지만 부산의 밤거리를 운전하는 건 좋았다.


호텔로 도착해서 주차를 하고 올라가니 방을 배정해 주었다. 예전 같으면 밤늦게 또 어떤 일정을 했을 텐데 침대에 한동안 누워 있었다. 손빨래를 하고 티브이를 틀었더니 콩믹서기를 광고하고 있었다. 내일 할 일정을 러프하게 짜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가듯이 바라보라. 그리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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