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피해자였고 피해자는 가해자가 된다

[3부: 치유] 지금 나를 만나러 갑니다

by 네오

정신과 주치의> 아버님은 살아온 게 기적입니다.


아빠가 앓고 있던 지병에 대한 얘기부터 아빠가 살아온 삶에 대해 주치의에게 얘기해 준 적이 있었다. 그때 주치의가 한 말이다.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었고 아버지 자신으로서는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을 거라는 의미였다.


나는 개성과 다양성이 존중받는 민주주의 시대에 태어났고 나는 심리학 공부를 통해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했고 나는 정신의학을 통해서 심리치료도 받았고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열반과 해탈의 길도 배우게 되었다. 그런 내 삶에 비해 단 하나도 해당 사항이 없었던 내 아버지


나는 유교문화로 내 아버지를 잃었다. 대한민국의 뿌리 깊은 유교문화는 내 아버지를 고통의 길로 내몰았고 아빠는 평생을 고통 속에 살다가 고통 속에 돌아가셨다. <새마을운동>은 국민의 정신건강을 경제부국과 맞바꾸며 경제성장이라는 미명 하에 국민정신 건강을 사지로 내몬 대국민 사기극에 불과했고 천민자본주의를 일삼는 대한민국은 아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깊은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엄마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삶


엄마들은 왜 태어난 순간부터 '내 엄마' 였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왜 그녀들의 인생은 기억되기보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쉽사리 가려져 버리는 걸까? "너희는 엄마라도 있지. 엄마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10년 전 어느 날 엄마가 자식들의 말에 깊은 상처를 받아 눈물을 훔치며 했던 말이다.


‘아... 엄마도 엄마가 필요하구나..’

엄마가 12살 때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그 어린 나이에 가난을 짊어지고 장녀인 엄마가 장남인 아빠를 만나 결혼해서 유교문화 속에서 겪었을 모진 풍파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힘겹게 살았을 엄마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혼자 한참 동안 오열을 했다. 나는 자라면서 내 엄마처럼 고생하고 힘겹게 사는 여성을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 그날은 내가 엄마에 대한 원망이 스르륵 녹던 날이었다.


내가 상처받은 만큼 엄마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싶었던 못난 나를 향한 자책과 비난들. 엄마를 향한 미움, 정말 많이 반성했었다. 가난, 유기된 경험, 방임과 학대, 가정불화와 폭력, 호의를 가장한 비뚤어진 어른들의 성추행까지.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아동기에 겪으면 깊은 내상을 입힌다는 것을 모두 다 경험한 내 어린 시절 내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다 내 부모의 정신적 대물림 탓이라고 생각했다. 부모의 고통을 내 것인 양 내면화시켰고 나는 '의식'적으로는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무의식'은 의식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차마 내 부모를 원망할 수 없었던' 감정을 깊은 무의식으로 억압시켜 버렸다.


부모에 대한 무의식적 원망이 있었다는 사실을 정신과 상담을 통해 드러나게 되면서 그동안 내가 외면했던 가장 마주하기 힘들었던 감정을 만나게 되었다. 내 부모를 원망한다는 것, 적어도 내 '의식 선상'에서는 결코 용인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일 한 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이해 못 할 내 부모를 이해했다는 것이다.


내 부모가 겪었던 고통은 지금 내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한 인간에 대한 연민의 감정은 나를 고통 속에서 차츰 벗어날 수 있게 해 줬다.


이젠 당신들을 이해합니다.

당신들 역시 고통스러웠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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