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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경아 Mar 04. 2024

27. epilogue

10일의 이집트 여행이 나와 Yul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거나,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되지는 못했다.

우리는 여행에서 돌아와 이전과 다름없는 일상으로 복귀했다.

아침 여섯 시 반에 일어나 등교 준비와 출근 준비를 하고, 저녁 여덟 시면 취침 준비를 하는 평범한 날들의 연속이다.


조금 변한 게 있다면 자기 전, Yul에게 해주는 ‘많이 웃고, 많이 사랑하고, 넓은 세상 살자’라는 말이 허공을 맴돌다 사라지는 연기 같은 게 아니라는 걸 둘 다 느낀다는 것이다.

우리는 체험을 통해 알게 된 실존하는 이 말을 매일 실천하고 꿈꾼다.

나는 하루하루 Yul과의 시간에 충실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역 기러기 아빠인 남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자주 볼 기회를 만들려고 애쓴다.

Yul은 여전히 조금이라도 게임을 더 하려고 잔머리를 굴리고, 내 잔소리 없이는 양치질과 숙제를 끝까지 미룬다.


약간의 변화라면, 엄마와 주말여행에는 닌텐도와 아이패드를 가져가지 않기로 하고도 잘 따라나선다.

주말에 함께 자전거 탈 때면 어른에게도 힘든 언덕길을 양 볼이 발개지고 숨을 헐떡대면서도 끝까지 완주한다.

가끔 우리는 다음 여행지를 어디로 갈지 토론하기도 한다.

“나는 이집트 다시 가고 싶어. 나는 토하고 엄마는 장염 걸려서 아스완 못 간 게 너무 아쉬워. 그리고 내가 아빠한테 다 안내할 수 있어.”

다시 갈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아빠를 안내할 수 있다는 Yul의 말에는 동의한다.


마지막 날 국내선을 타고 카이로 공항 1터미널에 도착해 국제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2터미널로 이동할 때 일이다.

우리는 이집트 다섯째 날 아스완행 비행기를 타려고 카이로 공항을 헤매며 1터미널에서 출발하는 공항 순환 셔틀버스를 탄 경험이 있었다.

그 강렬한 기억을 더듬어, 마지막 날 나와 Yul은 택시 기사의 호객 행위를 간단히 무시하고 공항 셔틀버스를 타러 갔다.

버스에서 우리는 공항이 익숙한 현지인들 사이에 몇 안 되는 외국인 중 하나였다.

Yul은 여유롭게 바퀴 턱 위에 올라앉아 가방을 쿠션 삼아 등에 대고 기댄다. 또 한쪽 팔로 머리를 받치고는 자는 척을 한다.

공항 직원 아들이라고 해도 될 만한 포스다.

아스완행 비행기 게이트를 찾아 헤매던 그 악몽 같던 경험이 이런 자산이 돼 돌아올 줄이야!

세상에 버릴 경험은 없다.


“여름 방학 때는 엄마랑 르완다 가자! 고릴라 사파리 하고 싶어”

“싫어, 나는 그리스! 아빠랑 그리스 같이 가기로 했어.”

“아빠는 올해 바빠서 12월에나 시간 된대. 그리고 여름에 그리스는 너무 더울 거야.”

“그럼,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는 축구 제일 잘하는 나라래. 나 거기 가고 싶어.”

“엄마는 포르투갈.”

Yul과 다음에는 어디 갈지 하나씩 주고받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게 실현되면 어떤 탐험이 펼쳐질지 기대하며 즐거운 상상에 젖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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