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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위 악마 시트리

악마와 철학자의 법정

by 아르칸테

제12위 악마 시트리 – 욕망의 과시와 유혹

죄명: 욕망을 과시하며 타인을 유혹한 죄

[악마 소개]
시트리.
옛 기록에 따르면 그는 표범의 얼굴과 새의 날개를 가진 아름다운 존재로 나타난다.
그는 남녀의 마음을 흔들어 육체적 욕망과 관능으로 빠져들게 만들며,

사람들로 하여금 부끄러움 없이 탐욕을 드러내게 한다.
그의 능력은 ‘유혹과 과시’다. 그는 욕망을 화려한 꽃으로 치장해,

스스로의 불안을 감추고 타인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그를 바라보는 눈빛, 곧 탐욕에 물든 갈망이다.
그가 싫어하는 것은 탐욕의 장미다. 그 장미는 화려해 보이지만 가시에 찔린 순간,

욕망의 진짜 상처가 드러난다.
오늘 그는 피고석에 앉았다.


[법정 심문]

철학자(아르칸테): 피고, 네 이름과 죄를 말하라.

시트리: 나는 시트리. 나는 인간에게 쾌락을 주었고, 그들이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했다. 나는 즐거움을 펼쳐 보였고, 그들은 그 속에서 해방을 맛보았다. 어찌 내가 죄인이 되겠는가.

철학자: 네 죄명은 욕망의 과시와 유혹이다. 네가 준 것은 해방이 아니라 중독이었다. 욕망은 은밀할 때 절제가 가능하지만, 과시되는 순간 통제가 무너진다. 너는 인간의 존엄을 벗기고 욕망의 전시에 가담하게 했다.

시트리: (웃으며) 욕망은 숨길 수 없다. 오히려 드러내야 해방된다. 나는 인간을 진실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철학자: 아니다. 네가 드러낸 것은 진실이 아니라 나약함이었다. 욕망을 과시하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 속에서 소모된다. 너의 유혹은 해방이 아니라 굴레였다.

시트리: 그러나 사람들은 기꺼이 나를 따랐다. 그들은 내 속삭임을 원했다.

철학자: 원했다고 해서 옳은 것은 아니다. 네가 그들의 욕망을 불러낸 순간, 그들은 더 이상 자신을 지배하지 못했다. 너는 그들을 자유롭게 한 것이 아니라, 욕망의 노예로 만든 것이다.

시트리: (미소를 짓는다. 목소리는 달콤하고 낮다.)
아르칸테여, 너조차 나의 향기를 느끼고 있지 않은가?
너의 눈빛이 흔들린다.
이 법정의 공기 속에도 내 숨결이 스며 있다.
나는 단지 인간의 ‘진실’을 보여줄 뿐이다.
그들이 감추는 것은 죄가 아니라, 부끄러움이다.
그 부끄러움이야말로 가장 위선적인 가면이지.

철학자: (눈을 가늘게 뜬다)
시트리, 그대의 말은 꿀이지만 독이다.
욕망의 노출은 해방이 아니라 노예의 표식이다.

시트리: (웃으며 다가온다)
노예라… 그렇다면, 자유란 무엇인가?
욕망을 억누르고 참는 자가 진정 자유로운가?
아니, 그들은 감옥에 갇혀 있다.
나는 그들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들은 나를 통해 진짜 자신을 만났다.
그들의 숨결이 뜨겁게 변했고,
그들의 눈빛은 더 이상 거짓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끝이 허공을 스친다.
그 순간, 법정의 벽이 흔들리고,
거대한 장미 덩굴이 자라나듯 천장으로 뻗는다.
붉은 꽃잎이 피어오르고, 공기는 묘하게 달콤한 냄새로 물든다.)

시트리: 봐라, 이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그들은 욕망할 때 가장 솔직하고, 가장 살아 있다.
나는 그저 그들에게 ‘삶’을 준 것이다.
죽은 이성보다, 살아 있는 욕망이 더 아름답지 않은가?

철학자: (단호히)
아름다움은 진실을 대신하지 않는다.
그대의 장미는 피로 물든다.
그대의 유혹은 살아 있게 만들지 않는다
그저, 잠시 잊게 할 뿐이다.

시트리: (고개를 기울이며, 유혹하듯 속삭인다)
잊는 것도 은총이 아니던가?
고통을 잊고, 도덕을 잊고, 무게를 잊는 것.
그 순간 인간은 ‘신’처럼 가벼워진다.
나는 그들에게 무게 없는 날개를 주었다.
그들은 나를 통해 하늘을 날았다.
비록 그 끝이 불길이라도…
그 불길 속에서, 그들은 아름다웠다.

철학자: (조용히)
그대는 불꽃을 사랑하지만,
그 불꽃이 타오를 수 있었던 건 연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연료는 인간의 영혼이었다, 시트리.
그대는 그것을 태워 빛을 냈을 뿐이다.

시트리: (웃으며, 장미꽃 하나를 철학자의 발밑에 던진다)
그래. 나는 태운다.
그러나 잿더미 속에서도 인간은 나를 원한다.
그들은 도덕보다 쾌락을,
진리보다 열정을 택한다.
나는 그들의 선택, 그들의 거울이다.

철학자: (잠시 침묵 후, 낮게 말한다)
그대는 거울이 아니다.
그대는 유리의 독을 입힌 미혹이다.
욕망은 인간을 드러내지만,
그대는 그 욕망을 조롱했다.
그대는 불안의 공허를 화려함으로 포장했고,
타인의 눈빛 속에서만 존재했다.

시트리: (미소를 잃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나를 택한다.
왜냐하면, 나는 ‘진실보다 달콤하니까.’

(그녀가 웃을 때, 수많은 장미가 폭발하듯 피어난다.
꽃잎이 공중을 덮고, 그 속에 가시들이 반짝인다.
법정의 공기가 진동하며, 욕망의 향기가 모든 이의 숨결에 스며든다.)

철학자: (숨을 고르며)
그대의 향기는 강렬하지만,
곧 썩는다.
그 향기 속에서 인간은 자신을 잃는다.
그대는 해방이 아니라, 황홀한 속박이다.

시트리: (조용히 웃으며 속삭인다)
속박이라도 좋지 않은가, 철학자여.
적어도 그 속박은… 달콤하니까.

(그녀의 목소리가 공기 속에 스며들며,
법정 전체가 잠시 황홀한 침묵에 빠진다.)


[심판]
철학자는 탐욕의 장미를 꺼내 시트리 앞에 내밀었다.
장미는 눈부시게 피어났으나, 그 줄기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빽빽했다.

철학자: 시트리, 이 장미는 네가 과시한 욕망의 상징이다. 화려하지만, 손에 쥔 순간 상처를 남긴다.

시트리가 미소 지으며 장미를 잡자, 곧 손바닥이 가시에 찔렸다.
그의 피가 장미꽃잎을 붉게 물들였다.
꽃잎은 화려하게 피어올랐으나, 곧 시들어 검게 변했고, 그의 몸을 덮치듯 무너져 내렸다.

시트리: (피가 흐르는데도 여전히 웃으며)
보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 피인가.
이건 고통이 아니라 장식이야.
인간은 상처마저 아름답게 포장할 줄 안다.
나는 그걸 가르쳤을 뿐이다.

(그녀는 피 묻은 손을 들어, 피를 장미 위에 문지른다.
피와 꽃잎이 뒤섞이며 검붉은 광채가 번진다.
그 빛은 마치 욕망의 불꽃처럼 요동친다.)

시트리:
이건 저주가 아니야.
이건 예술이야
피로 물든 아름다움, 절제 없는 황홀,
그 속에서 인간은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나는 그들의 심장을 움직이게 했고,
그들의 몸을 불타오르게 했지.
나는 해방을 주었다.
부끄러움이 없는 세상, 그게 얼마나 찬란한가.

철학자: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그대의 찬란함은 타인의 시선 속에서만 빛났다.
그 빛이 꺼지는 순간, 그대는 사라진다.

시트리: (웃으며 고개를 젖힌다)
사라진다고?
아니, 나는 사라지지 않아.
인간은 나 없이는 살 수 없어.
거울 앞에서 스스로를 꾸미고,
화려한 말로 욕망을 포장하고,
사랑이라 부르는 불안 속에 몸을 던질 때마다
그들은 나를 부른다.

(그녀의 등 뒤로 수백 송이의 장미가 피어나며,
그 꽃잎 하나하나에서 남녀의 환영이 떠오른다.
그들은 서로의 눈을 탐하며, 입맞추고, 욕망을 나눈다.
그 장면은 아름답지만, 점점 피비린내로 가득 차오른다.)

철학자: (눈을 감는다)
그대의 꽃밭은 낙원이 아니라 무덤이다.
그대의 아름다움은 생명을 흡수해 피어난다.

시트리: (한 발 앞으로 다가서며)
그렇다 해도 인간은 나를 찾는다.
그들은 고통보다 쾌락을,
진실보다 환상을 택한다.
나는 그들의 솔직한 본능이야.
너조차 부정하지 못하겠지?

철학자: (눈을 뜨며)
나는 인정하네.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자 생명의 불이다.
그러나 그 불은 빛이 되어야지, 타락의 연기가 되어선 안 된다.
그대는 불을 피운 것이 아니라,
불길에 인간을 던져 넣었다.

시트리: (웃으며 장미를 휘두른다)
불길이 뭐가 나쁘지?
그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이 나오지 않나?
인간은 차가운 진리보다, 타는 황홀을 원한다.
나는 그 욕망을 심판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에게 ‘자유’를 허락했을 뿐이야!

철학자: (조용히)
자유를 허락한 것이 아니라, 방향을 잃게 했다.
그대는 자유를 미화한 방종의 화신이다.
이제 그 화려한 장미가 그대를 삼킬 것이다.

(그 말이 떨어지자, 시트리가 든 장미의 꽃잎들이 일제히 흩날린다.
그 꽃잎들은 피처럼 흩어져 그녀의 몸을 감싼다.
화려하던 장미의 향은 썩은 냄새로 변하고,
꽃잎들은 점점 검게 타들어간다.)

시트리: (비웃으며 외친다)
그래, 타오르게 하라!
욕망은 꺼지지 않는다!
불타는 한, 나는 살아 있다!
나의 향기, 나의 열기, 나의 눈빛…
인간의 심장은 언제나 나를 갈망할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장미의 가시가 그녀의 살을 찢고,
그 피가 장미의 뿌리를 타고 다시 빨려 들어간다.
장미가 피를 빨아들이며 그녀의 몸을 삼킨다.
화려한 붉은 꽃잎은 점점 잿빛으로 변하며,
그녀의 몸이 서서히 검은 재로 부서져 간다.)

철학자: (잔혹할 만큼 냉정하게)
욕망을 과시한 자는 결국 자신을 장식으로 삼는다.
그대는 타인을 유혹했으나,
끝내 그 유혹의 무덤에 스스로를 묻었다.

(시트리의 눈이 마지막으로 번쩍이며,
그 안에 수많은 인간의 얼굴이 스친다.
그들의 웃음, 눈빛, 탄식이 한데 섞여
하나의 목소리로 울린다.)

시트리의 목소리:
“나는 그들의 욕망이었고,
그들의 거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완전히 사라진다.
남은 것은 바닥에 흩어진 한 송이 검은 장미뿐.
그 장미의 가시 끝에는 아직 미세하게 피가 맺혀 있다.)

철학자: (장미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욕망은 아름다움을 흉내 낸 불이다.
그 불에 자신을 비춘 자는,
결국 스스로를 태운다.



[귀환]
무너진 장미 더미 속에서 한 인간의 얼굴만이 남았다.
그는 피 묻은 손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욕망을 과시하고 타인을 유혹한 죄인이다. 이제는 화려한 장미가 아니라, 가시의 상처를 기억하며 절제하겠다."


[교훈]
욕망은 은밀할 때 다스릴 수 있지만, 과시되는 순간 스스로를 파괴한다.

유혹은 해방이 아니라 굴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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