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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llalawoman Oct 08. 2022

어쩌면 나도 또라이일지도

감정이 끓어오를 때

네, 감정이 들끓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는 혼자 보글보글 끓여서, 바글바글 팔팔 끓을 때까지 생각한 다음, 얼음물을 확 부어 버립니다. 감정이라는 것이 생각을 덮쳐서 끓는 대로 말을 내뱉어 버리면, 나에겐 가족도 친구도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의 이해할  없는 행동을 보며 감정을 꾹꾹 참아내느라,     쓰던 해우소 같은 글들이 엄청나게 쌓여 있더군요. 사람들이 서로를 헐뜯고 돌아서면 아닌 척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은근히 따돌리기도 하고, 이중적 모습을 가진 이들이 바깥에서는 세상 제일 좋은 사람인 척하는 모습을 보면,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님에도 화가 나고, 부끄럽고, 내가 있는 세상이 이런 흙탕물 같은 곳이라는 것이 한탄스러웠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더러운 모습을 보느니 안보는 것이 내 정신건강을 위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글로 쏟아내고 나면 생각이 정리되고, 나를 돌아볼 수 있다고 하기에 있는 힘을 다해 썼습니다.


결론은, 제가 왜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인지, 제 안의 이유가 보이더군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책에서 "옳다는 건 핵심이 아니다"라는 말에 저는 주저앉았습니다. 세상을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으로 나누어 보고, 판단하며 살아왔습니다. 삶이란 반드시, 옳은 것을 선택하고 옳은 것을 향해 가야 한다는 고집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사람을 볼 때도, 세상을 볼 때도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팔팔 끓어올랐습니다. 나 역시 이분법적 사고를 하는 편협한 인간이었습니다. 옳고 그름을 제가 판단하고, 사람과 세상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나는 타인의 삶에 옳고 그름을 재단할 자격이 있는가? 없었습니다. 나의 옳고 그름의 기준에는 절대적 정의가 있는가? 없었습니다.


나 또한 사람들 앞에서는 좋은 사람인 척하고, 집으로 돌아와 사람들의 옳지 않은 행동들을 떠올리며 화를 내고 잘근잘근 씹고 있는 이중성을 가진 사람이더군요. 아무도 모르게 말입니다.


정신의학과 선생님의 카툰을 본 적이 있습니다.

[보통의 사람이 보기에 5% 정도는 이상해 보인다고 합니다. 하지만 5%의 사람이 보기엔 95%의 사람이 이상해 보입니다. 혹시 당신 주변에 너무 많은 또라이가 있어서 힘드신 가요? 주변에 싫은 사람 이상한 사람이 너무 많으면, 거울을.....] 웃음을 뿜어내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저도 또라이인 줄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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