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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llalawoman Oct 12. 2022

무모했지만 용감했던

실패를 남겨두는 마음

오랜 시간 웨딩플래너로 일을 하면서, 그 일을 더 확장시키는 나만의 사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나만의 공간에서 내가 상상하거나, 이뤄보고 싶은 것들을 다 해보는 꿈의 동산과 같은 곳을 꿈꿨습니다.

소규모 예식이 가능하고,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음식을 직접 해주기도 하는 그런 환상의 공간이었습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웨딩홀의 예식이 아니라, 소규모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결혼식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웨딩플래너 일을 하면서 느꼈던 새로운 것의 대한 갈망과 상상력을 실현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차 있었지요.

함께 오래 일했던 멘토이자 동료였던 분과 생각이 맞아 과감하게 회사를 그만두고, 그 꿈을 실현하는 공간과 구체적인 매뉴얼을 만들었습니다. 동료와 함께 우리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우리는 너무 행복한 결말을 상상했다는 것입니다.

웨딩플래너 일을 하기 전에 몇 년간 커피 매장 운영을 책임지는 일을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사업을 준비하고 운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십여 년 경험들을 총동원하였습니다. 그때는 그 시도가 기존에 없던 시도였기에 관심을 갖고 찾아주는 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업이 자리를 잡기까지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여유롭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초조해졌습니다. 주위에 몇몇 사람은 무슨 뜬구름을 잡는 이런 일을 벌였냐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말들이 점차 제 의지를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절대적 노동시간이 길고 기다리고 애쓰는 시간들이 길어지니 지쳐갔습니다. 경험이 부족하여 나에게 많은 의지를 하는 동료에 대해서도 원망하는 마음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꿈꾸던 것과 다른 현실에 나는 패자의 마음가짐으로 링에 올라선 선수와 같았습니다.


괴로운 마음이 몸과 마음을 잠식하고, 깊이 가라앉았습니다. 기침 한 번에도 고통스러운 통증으로 무너져 내리는 건강상태가 되었습니다. 하루하루가 후회스럽고, 내가 왜 이런 무모한 일을 벌였나 스스로를 괴롭히며 지옥과 같은 삶으로 스스로를 가두기 시작했습니다.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희망이 한 방울도 남지 않았습니다.


결국 꿈에서 하차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나 자신을 더 망가뜨리기 전에 이 고통을 멈추고 싶었습니다. 꿈꾸고 준비하고, 견뎌내는 것은 아주 많은 노력과 생각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내려오는 것은 하루의 시간이면 충분했습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패자가 된 기분은 비참했습니다. 나는 영원히 그곳을 떠났습니다.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이한 병사처럼 이름도 사라져 버린 채로, 조용히 시간 속에 묻히기를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동생이 "언니, 누구나 꿈을 꾼다고 그것을 실현시키며 살지 않아. 무모한 선택이었어"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살이에 서툴고 패배자라는 사실을 인주로 마음에 새기는 듯하여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쓰리고, 아프고 치열했던 그 무모함이 참 고맙습니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을 더 견디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해보았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입니다. 치기 어린 마음만 가득하던 젊은 날, 나를 좀 더 겸손하게 만들어준 고마운 시간들이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나의 동료는 아직 그곳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환상의 동산 속에서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지켜내고 있습니다.


나약하고 부끄러웠던 그 시간은 인생에서 찢어버리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무모할 만큼 용감했던 시간이었기에 남겨두려고 합니다.

계절이 변하듯, 나의 시간도 변해왔고, 조금씩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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