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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llalawoman Oct 09. 2022

내 삶의 천재지변

어느 날 갑자기였습니다. 학교에서 강의를 듣다 부모님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급하게 집으로 돌아갔어요.

부모님은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당장 떠나야 한다고, 제가 다니는 학교도 더 이상 다니기 힘들겠다고 하시 더군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정말 귀에서 날벼락이 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왜요? 왜 그래야 해요? 물어도 대답 없는 고개 숙인 부모님의 모습에서는 더 이상 희망을 머금던 표정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 스스로 돈 벌어서 학비 내고, 스스로 살아가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부모님께서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벌어 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꿈꾸던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앞날이 꿈꾸는 대로 이뤄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내게 아주 많은 사랑을 주시고, 아주 많은 것을 주셨어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꿈꾸는 것 앞에서는 가장 험난한 산이 되셨지요. 왜 하필, 매 순간 나의 꿈 앞에서였을까요? 그때는 매일 울며 세상이 닫힌 듯 두렵고, 인생이 망가진 것만 같아 괴로웠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아버지 가방 속의 약봉지를 발견하고 나서 슬픔과 두려움을 멈췄습니다. 고통 속에서 말없이 견디시는 아버지가 더 이상 홀로 견디게 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세상이 내게 무슨 의미인지 상상하기도 싫었습니다. 꿈은 나중에 라도 이룰 수 있으니, 지금은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세상에 처음으로 작은 불빛이 켜졌습니다. 그 불빛만을 보고 달리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21살의 나이에 빚 독촉에 시달리는 건 정말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경험이었습니다. 매달 22일의 심야근무까지 해가며 꼬박꼬박 빚을 갚고 있음에도, 그들은 왜 그리 재촉하고 왜 그리 겁을 주었던 것일까요?

어서 빨리 갚으라고 이러면 곤란하다고, 당신 큰일 난다고 협박을 하는데 그들의 말처럼 정말 큰일이 날까 무서웠습니다. 세상의 쓴맛을 너무 일찍 알아 버렸습니다. 그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습니다. 더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해 애쓰고, 더 많은 수당을 받기 위해 모든 시간을 쏟아붓고, 더 인정받기 위해 이를 물고 버텼습니다.


그 시간들이 쌓이고, 흘러 어느새 나는 대학 동기들보다 세상 일에 더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모두들 졸업 후 세상에 막 나와 현실의 쓴맛을 보고 있는 그 시간에, 저는 제 직업에 리더가 되어있었고, 또래보다 많은 연봉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일과 동시에 대학 공부도 함께 해서 졸업장을 얻었고, 부모님을 빚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드렸고, 유럽 배낭여행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힘겨운 숙제를 마친 기분을 느끼니, 그제야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 차 올랐습니다.


삶이라는 것이 남들이 맞다고 하는 삶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길이라는 것은 결국 어디에서 든 원하는 곳에 닿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 돌아서 온 길, 걷다가 멈춰 선 길, 막다른 길... 많은 인생의 길 앞에서 때론 나 스스로가 그 길을 만드는 첫 발자국이 될 수도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쇠를 뜨거운 불 속에서 달구어 내리치고 또 식히기를 반복하면서 더 강한 무기가 되듯, 내 인생 역시 그렇게 달구어지고, 내리쳐지고, 식혀지고를 반복하며 더 단단하고, 더 빛나는 인생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게 행복했습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내 인생이 참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어떤 시간을 통과하고 있던지, 우리는 이 시간의 끝에 서게 됩니다. 그 끝에서 저는 제 인생이 제법 근사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잘 살아냈다고 박수 쳐주고 싶습니다. 그날을 생각하니 가슴이 벌써 두근거립니다.

나에게 허락된 남은 시간도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설렙니다.

오늘도 열심히 살아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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