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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llalawoman Oct 17. 2022

죽음이 살아있는 내게 남긴 것

나의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할아버지... 잘 지내고 계세요? 그곳에서 저를 보고 계세요? 보고 계신다고 믿고 싶어요. 13년 전 바로, 이 무렵에 할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드렸어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붓고, 딱딱 해진 할아버지를 가장 마지막으로 인사한 사람이 저였어요. 제 목소리를 들으셨지요?


일하다 할아버지가 더 이상 생의 시간을 붙잡지 못하시기에 보내 드려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심장이 요동치고, 숨이 가빠 오고 눈이 뜨거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어요. 저를 기다리실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못할까 두려워 구두 굽이 인도 사이에 걸려 망가지는 순간에도 늦어서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해서 평생 가슴을 붙잡고 살게 될까 무서워 죽을힘을 다해 달렸어요.


가족 모두 옷자락을 붙잡고, 두 다리를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아 슬픔을 토해내고 있었어요. 제 생애 처음 보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눈앞에 형상화된 순간이었어요. 텅 빈 병실에 홀로 계신 할아버지는 저를 기다리셨죠. 살면서 단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도 못 해봤어요. 할아버지께서 품에 처음 안아본 내리사랑의 첫 수혜자였는데 말이에요.

할아버지의 산소호흡기를 떼고, 사망선고를 듣는 순간. 그제야, 할아버지로 인해 제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할아버지의 시간이 닫히고, 저의 시간은 바뀌었어요.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맞이한 것도,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도 하늘로 보내 드리는 모든 순간을 목격하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많이 생각했어요.


한참 뒤 비에 흠뻑 젖은 할아버지께서 저를 찾아오신 꿈을 꿨어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죠.

얼마 전 할머니를 하늘에 보내 드리며 두 분의 합장을 할 때 비로소 알았어요. 그동안 할아버지의 육신이 평온하지 못했다는 걸요. 저에게 하고 싶었던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저는 모든 순간에 참 어리석고, 부족했어요. 죄송해요.

언제쯤 세상 일에 조금 더 지혜로워질까요? 언제쯤 영민해질 수 있을까요?


저는 죽음을 잊지 않고 매일을 살아가고 있어요. 죽음에 하루하루 다가가며 살아가는 중이에요. 세상 모든 이의 탄생의 순간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아가지요. 할아버지는 저에게 그 시작과 끝을 알려주셨어요. 그리고 그 순간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 어느 날이 저에게 찾아와도, 후회와 미련보다는 '이걸로 충분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게요. 저를 마지막까지 기다려 주셔서 감사해요. 할아버지의 의식의 마지막 순간에 "은주야"라고 다정하게 불러 주셔서 감사해요. 세상에 존재했던 순간의 그 따뜻한 목소리와 마음을 마음속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고, 자주 보면서 자주 들으면서 살게요. 잊지 않고, 살아 낼게요.

사랑해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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