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살자!

단상의 아포리즘 26

by 고봉진

오십이 돼도


서울 출장길에 교보서점에 들렀다.

서울에 오면 늘 오는 곳이다.


역시나 책의 홍수에 정신이 없다.

나도 저런 책을 써야지

기약없는 소리가 허공을 때린다.


‘서른이면 어른이 될 줄 알았다’는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이런 류의 책을 쓴다면

‘오십 돼도 어른 되기 글렀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작가에게 필요한 것


경험, 관점, 글쓰기 습관,

아이디어, 열정, 호기심


무엇보다

글쓰기를 즐기는 마음이 있다면

족한 게 아닐까!


대단한 작가가 아니어도 좋다.




글은 다듬는 것이다


교보문고에서

‘결국 책은 쓰는 것이 아니라 다듬는 것입니다’

책 제목을 봤다.


맞다는 생각이 든다.

글은 다듬는 거다.

퇴고가 글을 쓴다.


작은 원석을 가져다가

여러 번 깎고

여러 번 다듬어야 한다.




걸으면서


걸으면서 몸과 마음에 공기를 쐰다.

걸으면서 삶을 돌아본다.


걸으면서 감사하게 된다.

걸으면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걸으면서

계속 꾸준히 걸어갈 것을 다짐한다.




오늘 하루


방심하면 하루가 쉬 간다.

하루 하루 시간이 많을 것 같지만

시간은 끝을 알린다.


인간은 시간은 재고

시간은 인간을 잰다.

(이탈리아 속담)


오늘 내가 허투루 보낸 하루는

누군가에겐

절실한 시간이었다.




즐기는 마음으로


지난 일기를 읽다가

예전에 병원에서 일하던 청년이 해준 말이

눈이 들어온다.


“이길 수 없으면 즐겨라!”


오늘 하루를 살자!

즐기자!

나에게 주어진 지상명령이다.




느긋해지자


조급함에 달려보니

실수하기에 딱 좋다.


여유를 찾자.

느긋해지자.

마음의 평온함을 찾자.


천천히

생각하며

여유있게

분명하게


“조급히 굴지 말아라.

행운이나 명성도 일순간에 생기고 일순간에 사라진다.

그대 앞에 놓인 장애물을 달게 받아라.

싸워 이겨 나가는 데서 기쁨을 느껴라.“ (앙드레 모르아)



하루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하루 하루가 모여

내 삶을 채운다.


내 삶은 얼마나 될까?

그 수를 채우고 나면

저 세상으로 가는데


소중하게 생각하며

감사하며 살고 싶다.



현재를 살자!


과거 때문에 미래 때문에

현재를 살지 못하면 어리석다.


현재를 살아야 한다.

때론 치열하게 뛰어야 한다.

때론 느슨하게 풀어야 한다.


즐기고 싶은데 즐길 수가 없다.

내 자아가 과거를 미래를

계속 끌어들인다.

내가 참 어리석다.




어리석음


내 어리석음을 애써 숨기지 말자.

때때로 드러내자.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어리석음을 사람들에게 보이는가?


원래 저런 사람이구나 인지되면

나중에 남 뒷통수 때릴 일은 없겠다.


법철학이라는 규범학을 하니

잘난 척, 도덕군자인 척

말하기 싶다.


조심해야 한다.

내 삶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

위선이 드러날까

두려워해야 한다.




계속 쓰자


어떤 사람은 계속 쓴다.

일상이 쓰는 삶이기 때문이다.

계속 연구하면서 성과를 낸다.

한 권을 쓰고 또 한 권을 쓴다.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

어떻게든 써야 한다.




다산과 추사


다산 정약용 선생님은

1801년부터 1818년까지 (40세부터 57세까지)

18년 동안 강진 유배생활을 했다.

“이제야 내가 겨를을 얻었다”며 저술에 몰두했다.


추사 김정희 선생님은

1840년부터 1849년까지 (55세부터 64세까지)

9년간 제주 유배생활을 했다.

고달픈 ‘위리안치’의 시간 동안 ‘세한도’와 ‘추사체’가 탄생했다.


긴긴 유배생활이 있었기에

그들의 학문과 예술이 꽃을 폈다.

고난을 기회로 삼아

학문과 예술을 꽃피우게 했다.




글은 위험하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

위선을 경계한다.


삶이 글을 따르지 못하면

글을 삶에 가깝게 해야 한다.


수필이 좋은 건

본연의 나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내 실수를, 내 잘못을,

내 어리석음을 드러낸다.


물론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경계할 일이다.




자연이 주는 힐링


산책을 나갔다.

집 가까이 즐길 수 있는 자연이

있다는 게 행복했다.


동네 한 바퀴 돌아보니

푸르른 자연이 가까이 있다는 걸

새삼 알겠다.


시골이 따분해도

이런 맛이 있다.

이 맛에 시골에 산다.




인생


언젠가 사라지는 인생이라면

불평을 접고 감사하면서

즐기는 게 낫지 않나!


언젠가 사라지는 인생이라면

불행도 내 인생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게 낫지 않나!


언젠가 사라질 인생이라면

한순간 한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게 낫지 않을까!




나뭇잎 한 장


나이가 드니

내가 나무 몸통이 아니라

떨어질 운명인 나뭇잎이란 걸 알겠다.


나무에 붙어있으려 해도

언젠가 떨어질 나뭇잎


나뭇가지에 붙어 푸르름과 붉음을 드러내더라도

언젠가 땅에 떨어져 사라질 잎이라는 엄연한 사실에

마음 한 구석이 외로워진다.


어떻게든 푸르름을 발해보려는

붉음을 드러내려는 아우성이

공허하게도 느껴진다.


그럼에도 왜 다른 잎과 비교하고

다른 잎과 미워하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떨어질 운명은 똑같은데 ...


난 아마도 미련한 잎인가 보다.


행복은 별게 없다.

떨어질 날이 있음을 인지하고

주어진 시간 동안 소망 가운데

시간에 맞추어 사는 게 아닐까!




활기차게


활기차게 살아야 한다.

활기를 느끼지 못하면

숨이 찰 때까지 뛰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삶을 조망하고,

무엇을 할지 곰곰이 생각하고

두 발로 움직여야 한다.

생생하게 살아야 한다.



쓰기와 걷기


글을 쓰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끼면

그게 최고다.


걷으면서

상쾌함을 느끼고 기뻐하면

그것이 최고다.


쓰고 걷자.

매일 꾸준히 성취해가자.

내가 사는 법이다.


슬프고 외롭고 힘들고 좌절되는 순간이 있어도

쓰기와 걷기가 있다면 괜찮다. 괜찮다.



혁신


아이디어를 현실에 실현하는 힘 ...

혁신가들이 갖춘 능력이다.

탁월한 아이디어를 추진할 힘이 그들에게 있다.


나는 과연 이 둘을 갖추었는가?

아이디어가 있는가?

이를 실행할 수 있는가?




범생이의 한계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색다른 삶을 생각하고 추진해야 하지 않을까?


이대로 쭉 가겠지만

뭔가 변화를 주고 싶다.


약간의 변화가 필요하다.

뭐가 있을까?

삶에 변화를 주기가 쉽지 않다.


연구하는 사람이라

연구 주제에 바꾸면서

변화를 줄 수 있다.


...

범생이라 한계가 있다.




심심한 시간


아들 정훈이가 심심하다고 한다.

누구에겐 심심한 시간은

창조적이라고 했던가!


아이들은 어떻게든 새로운 시도를 한다.

심심함을 그대로 두지 않고

재미를 어떻게든 찾는다.


아이에게 배울 점이 분명 있다.

(물론 한쪽 면을 볼 때 그렇다.)




단상의 조각들


출퇴근길을 걸었다.

걸어도 단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불연듯 ‘단상의 조각들’을

중단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쉬어가는 건지 모른다.


2018년 1월 1일부터 시작해

초서재에 단상을 매일 하나씩 올렸다.

552개의 단상이 모였다.


‘단상의 조각들’을 정리해

책으로 엮어내면 어떨까?

이제는 (부족하더라도)

‘초서재 수필’ 연재를 시작하면 어떨까?

다른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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