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 형성 4탄(아이에게 노래 들려주기)
엄마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은 아이에게 황금 같은 시간이다. 딸이 어릴 적 다른 아이들보다 말을 빨리 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가볍고 상큼하고 재미있는 최승호 님의 [말놀이 동시집] 덕분이지 않나 싶다. 너무 어렵고 고리타분하면 책 뚜껑을 열어보지 않고 먼지만 폴폴 날렸을 텐데 물 흐르듯이 술술 따라 하게 된다. 책 속의 수많은 동시를 딱딱하게 읽지 않으며 리듬감을 주고 흥얼흥얼 거리며 노래하듯 동시를 들려준다. 아이는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다. 엄마가 노래하는 건지 시를 들려주는 건지 헷갈린다며 가끔 머리를 갸우뚱 거린다. 말놀이 동시집의 CD도 있지만 다섯 권 전부를 구매하지 않아도 아무 이상 없다. 무작정 사놓고 읽지 않으면 5만 원 정도 하는 돈이 아까우니 우선 한 권을 구매한 후 아이에게 보석 같은 시를 한 줄 한 줄 읽어준다. 책이 너덜너덜 해지면 다음권을 조용히 소리 없이 인터넷으로 주문한다. 다음 책이 집에 도착하면 택배 비닐을 박박 찢어서 보여주면 아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반짝반짝 읽어주라고 들려주라고 안달이 난다. 매일 읽어달라는 책을 들고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아이의 샴푸 향기를 맡으며 고운 목소리로 들려준다. 방시혁과 조권이 만든 동요집, CD도 있지만 저에게는 없어도 무관하다. 엄마가 만든 장착 노래가 CD보다 아이에게 더 흥미진진하게 아이에게 다가간다. 즉흥적으로 매일 읽으니 달라지는 음을 아이도 옆에서 똑같이 따라 하게 된다.
늘 조용하고 말 없는 저에게 이런 끼(=시로 노래 부르기)를 가지고 있는지 친구들은 아무도 모른다. 하는 일 없이 '직장만 다니다가 아이는 시어머님이 다 키워줬구나' 라고 생각한다. 모임에서 저에 대한 집안일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니 알 길이 없다. 그리고 가끔 친구들이 나에게 이야기 한다.
딸이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똘똘한 거야?
너야, 남편이야.
둘 다 아니다. 책 속의 동시의 단어들이 아이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딱딱한 책을 닮았구나. 하하하. 맞는 말이다. 가끔 톡톡 쏘는 말이 책을 닮기도 했다. 그것 말고도 책 속의 아름다운 단어들을 쏘옥 빼닮아서 나쁜 언어도 함부로 사용하지 않고 곱디곱게 자라 주었다.
그러면 그 속에 나온 한 가지 말장난(=말놀이) 동시를 소개하려 한다.
판다/최승호[말놀이 동시집]
판다를 판다?
판다는 안 돼요
판다는 팔 수 없어요
판다는 물건이 아니거든요
판다 사진을 판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있지만
판다를 판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요
어떤가? 말놀이를 하다 보면 말을 잘 할 수밖에 없겠된다. 즐기면서 노래 부르니 단어들이 귀에 쏙쏙 들어오고 눈에 콕 박히니 한글도 금방 혼자서 읽을 수 있게 된다. 억지로 하지 않고 즐기면서 하게 되면 놀이인지 공부인지 말하는 건지 노래를 하는 건지 알쏭달쏭 헷갈리지만 스르륵 시간 보내며 아이와 단둘이 행복감을 담뿍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독서지도사님의 추천으로 구매해서 유아기 때 아이와 함께 읽었는데 학교에서 최승호 님의 동시가 교과서에 뿅 하고 나왔다. 아이는 엄마와 흥얼거리는 때를 기억하며 수업에 집중하고 동시에 대한 사랑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었다. 학교에서 동시를 만들어 오라는 숙제를 주시면 알아서 척척 해낸다. 선생님의 숙제가 쉬울 수밖에 없다.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튼을 누르고 엄마를 생각한다. 그 당시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아이에게 노래를 들려주었는지 반드시 기억하므로 애착 형성은 대성공이다. 숙제는 엄마 도움 없이도 혼자서 잘 한다. 엄마 역할을 슬슬 내려놓고 다음엔 어떤 책으로 노래 부르며 즐겁게 놀이할지 상상하며 즐겁운 시간을 가진다.
이 동시 덕분에 말장난과 시 짓기를 좋아해서 요즘 가벼운 말놀이 시가 즉흥적으로 생각나며 머릿속에서 하루에 하나씩 떠오른다. 계속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지는 꿈을 꾸며 시 짓기를 신나게 만든어 본다.
너 혹시 시 짓는 신동?
(허, 허, 허 선생)
남편에게 들려주니 나의 시에는 깊이가 부족하다며 톡으로 본인이 좋아하는 시를 보내준다.
이런 것이 시의 세계라며 나를 톡톡 다독여 준다. 유명한 시인들이 시를 읽고 사색하다 보면 나도 멋진 시인이 된다. 그렇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올거라 믿는다. 딸이 좋아하던 동시가 어쩌다 나에게 불씨를 가져다 주었다. 이 행복감을 글로 남기니 인생의 재미가 두배로 바뀌었다.
자 그럼 남편이 전해 준 두편의 시를 같이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 지음, 피천득 역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자화상 /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드려다 봅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펄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사나이가 미워저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사나이가 가엽서집니다。 도로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사나이가 미워서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펄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출처]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