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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 Oct 15. 2024

2. 각질처럼 조각나다


나는 정말 죽고 싶은 것이 맞나, 생각이 이렇게 오락가락한다면 나는 나의 계획을 제대로 실행하여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아니다, 포기해선 안 된다. 그간 나는 얼마나 고통스러웠나. 그걸 잊어선 안 된다. 시간이 흐르면 기억은 물에 탄 것처럼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든 걸 잊어도 내 간절한 목표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내 몸에 본격적인 이상 신호가 드러난 건 80이 되던 겨울이었다. 80까지 건강했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누가 80까지 건강하겠나. 인간의 몸은 강철이 아니다. 80은 풍부한 먹거리와 적당한 운동, 타고난 체질 등으로 이어진 생명일 뿐 나도 아프고 힘든 곳이 많았다. 

언제부터라고 할 것도 없이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걷기 힘들어지고, 일어서기도 힘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심각하게 느낀 게 80이었다. 이대로 앉은뱅이가 되는 건 아닐까 무서울 지경이었다.      

병원에 가기 전 나는 방송과 신문에서 건강 기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세상일은 참 이상도 하지. 내가 관심을 보이면 방송에서도 그런 방송을 하고, 신문에도 그런 기사가 실렸다. 관심을 가지고 보니 그리 보이는 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누군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게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아닐는지 말이다. 아, 참고로 나는 교회 권사다.      


신문을 뒤적이던 어느 날, 파킨슨병에 대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파킨슨병은 뇌의 신경세포가 손상되어 나타나는 질환이라고 했다. 도파민이 어쩌고 저쩌고 설명이 장황했는데 내 눈에 띈 건, 그 증상이 나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일찍부터 내게는 손떨림 증상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늙은이들이 손을 떨어 글씨체가 달라지고 나중에는 글씨도 제대로 쓰지 못한다더니 바로 내가 그랬다. 무엇보다 나는 중심 잡기가 영 힘들었다. 순간순간 넘어질 듯 휘청일 때면 식은땀이 났다. 그저 다리에 힘이 덜해서 그런가 했는데 어쩌면 파킨슨병으로 내 뇌에 문제가 생겼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당장 떨쳐 일어나 병원에 가기는 힘들었다. 난 파킨슨 환자처럼 늘 피곤했고,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문제를 자식들에게 털어놓고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만만한 자식은 막내아들이다. 다정한 성격의 막내아들은 막내라는 호칭에 딱 맞는 아이다. 말과 행동에 애교가 많아서 내게는 딸 같은 아들이다. 무엇보다 막내아들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서 여전히 내 자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결혼하여 제 식구가 생기면 조심해야 할 것이 많다. 내가 조심해야 문제없이 살 거라는 생각을 애들 결혼시키며 다짐하듯 자주 했다. 내 딸이라고 마구 불러대면 사위나 사돈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고, 내 아들이라고 이래라저래라 하면 며느리 시집살이 시킨다고 할 것이었다. 나는 막내아들에게 연락하여 몸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봐야겠다고 말이다. 막내아들은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정하게 말했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 별거 아닐 거야. 

혹시 병이라고 하면 검사해서 잘 고치면 되니까 불안할 거 없어.”


아들의 그 말이 듣기 좋았다. 어쩌면 나는 막내아들에게 그런 소리를 듣고 싶어서 연락했는지 모른다. 막내아들은 나의 고민을 누나와 형에게 재빠르게 연락했고, 병원을 알아보고 데리고 가는 건 딸의 몫이 되었다. 딸은 자기 시부모가 다닌다는 병원에 예약을 했다. 처음에는 간단한 문진부터 시작하더니 해야 할 검사가 하나둘씩 늘어갔다. 결국 날을 잡아 아침부터 밤까지 검사해 보기로 했다.      




검사하기로 한 날은 한해의 끝날, 12월 31일이었다. 그날은 딸네 시댁 일이 있어서 큰아들과 가기로 했다. 새벽같이 큰아들 내외가 나를 데리러 왔다. 시집살이시키는 시어머니 소리는 안 듣고 싶었는데 며느리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며느리 표정부터 살폈다. 어딘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 옆에서 아들의 모습도 경직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라서 나는 애써 모른 척했다. 

     

검사는 이게 사람 살리자는 건가 싶게 힘이 들었다. 지옥을 경험하라는 듯이 어둡고 좁은 통에 사람을 가두더니 귀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렸다. 이제 좀 그치려나 싶으면 다시 시작되는 소음은 정말이지 너 한번 죽어봐라 하는 것만 같았다. 이미 죽겠어서 병원에 왔는데 병원은 나를 더 낭떠러지로 밀어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떤 고통도 순간이 지나면 잊히게 마련이다. 나는 피를 뽑고, 통에 들어가고, 사진을 찍는 검사들이 힘이 들긴 했지만 다 마치고는 잊을 수 있었다. 다만 아직도 몸서리가 쳐지는 것은 검사를 위해 옷을 갈아입었던 순간이다.

      

“이미자 님!”

내 이름이 불리고 간호사는 탈의실에 가서 환자복으로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다. 간호사가 가리킨 곳은 여자 탈의실이었다. 며느리가 나서서 걸음이 불편한 나를 데리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겨울이었으니 나는 벗을 것이 많았다. 먼저 목도리를 풀고, 겉옷을 벗고, 스웨터를 벗었다. 나이가 들며 브레이지어는 이제 필수 속옷이 아니었다. 나는 런닝 위로 환자복을 입었다. 그리고 양말을 벗고, 바지와 함께 내복을 벗었다. 그런데 바지가 내려갈수록 하얀 가루가 그 속에 숨어 있었다는 듯이 펄럭이며 나왔다. 

각질이었다. 하얗고 가벼운 그것은 어찌 손쓸 틈도 없이 위로 떠오르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환복을 돕던 며느리가 순간 '헙'하며 숨을 참는 것이 보였다. 사실 나도 그걸 고스란히 들이마시게 될까 걱정스러웠다. 가능만 하다면 바로 다시 옷을 입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민첩하지 않았고, 상황도 그럴 수는 없었다. 이제 마지막 검사고, 이 검사만 마치면 집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몸이 불편하며 위축됐던 내 맘은 내 몸에서 떨어져 나온 각질처럼 산산 조각나는 기분이었다. 며느리는 잠깐 숨을 참기는 했지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나를 도왔다. 나도 며느리를 따라 아무 일 없는 척 연기를 했다. 하지만 이렇게 누워서도 그때 일이 떠오를 만큼 나는 그때 너무도 참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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