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노화로 몸 상태가 나빠지긴 했지만 뇌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까 나는 파킨슨 환자는 아닌 거다. 자식들은 다행이라며 좋아했다. 나도 좋았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몸의 불편함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계속 나빠지고 있었다.
나의 하루는 아침을 차리고, 점심을 차리고, 저녁을 차리는 일로 이어져 있었다. 남편과 두 식구뿐이지만 밥상을 차리고 치우는 건 다섯 식구 살 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릇 수와 숟가락 수가 줄었을 뿐 난 그 일을 수십 년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익숙할 대로 익숙해졌을 그 일이 점점 천근처럼 힘들어졌다.
“흐음!”
식탁에 앉은 남편이 목젖을 눌러 소리를 냈다. 밥상이 맘에 들지 않다는 의미였다. 내가 봐도 어제저녁 밥상과 다를 것이 없는 초라한 밥상이었다. 말수가 적은 남편은 그저 저런 기침 소리로, 굳어버린 표정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그 모습에 나는 늘 위축되고 힘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일을 처음 겪는 것도 아니고, 나는 불편한 맘을 거친 밥알과 함께 삼켜 버리려 애썼다. 그리고 점심에는 장을 보러 나가봐야지 했다.
바람이 거센 날이었다. 추위가 가시고 봄이 오고 있었다. 봄바람이 구름을 모두 몰아내 파란 하늘만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했다. 나는 가벼운 잠바 하나 입고 집 밖으로 나왔다. 장을 보러 집을 나선 것이 언제였더라? 검사 결과는 파킨슨이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외출을 삼가고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누가 내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나. 나는 꾸역꾸역 살림을 하며 지냈다.
자식들은 힘들어하는 나를 돕겠다고, 먹을 것을 사다 주고, 끼니에 맞춰 배달 음식을 시켜주기도 했다. 하지만 매 끼니 그런 것을 먹을 수는 없었다. 남편이 원하는 건 방금 무친 나물과 시원하게 끓여낸 국물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콩나물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잠바 주머니에 작은 지갑과 핸드폰을 넣고, 현관에 세워둔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지팡이를 짚고 교회에 오는 노인은 많았다. 막대기 하나가 뭐 그리 도움이 될까 하는 맘이 있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지팡이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자식들은 득달같이 지팡이를 사들였다. 나는 그들의 말에 따라 지팡이를 들고 대문을 나섰다.
언제 시장까지 가나 아득했는데 2층 계단을 내려와 대문을 나서자 시원한 바깥공기에 기분이 좋았다. 부는 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졌다. 나는 작은 계단 몇 개를 올라 집 앞 골목을 벗어나 조금 큰 골목길로 들어섰다. 얼굴로 거센 바람이 물벼락처럼 몰아쳤다. 나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며 정신을 차렸다.
아무리 거세다 해도 바람일 터였다. 다리에 힘이 줄었다 해도 나는 종이 인형이 아니니 바람은 불편할 뿐 큰 문제는 아니라고 여겼다. 나는 지팡이 쥔 손에 힘을 주고 앞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지팡이가 앞서 걷는 꼴로 걸음을 옮겨 걸었다. 조금씩 걸음에도 바람에도 익숙해지는 기분이었다.
골목은 비탈길로 이어져 있었다. 우리 아이들 모두 이 길을 지나 학교에 다녔다. 그러니 우리 식구는 모두 이 길을 눈감고도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익숙했다. 하지만 바람은 그 길을 허락할 수 없다는 듯이 막아섰다. 비탈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처럼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 바람에 놀란 나는 지팡이를 짚으며 걷던 걸음의 리듬을 잃고 말았다.
“아이쿠! 아아!”
거센 바람에 내 몸이 휘청이며 손에 든 지팡이가 땅이 아니라 하늘로 치솟았다. 손에 쥔 지팡이를 동아줄처럼 꼭 쥐었지만 지팡이는 동아줄이 아니었다. 날 잡아줄 리 없었다. 그 순간 나는 지팡이를 내던지고 땅을 짚었어야 했다. 손목이 다칠 수도 있었지만 얼굴이 땅바닥으로 나동그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탈길은 쓰러진 나를 더 뒤흔들었다. 나는 얼굴을 바닥에 찧고, 다시 찧었다.
‘별이 보인다는 게 이런 건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쓰러진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순식간에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내가 넘어진 건 알겠는데 이게 아픈 건지, 어디를 얼마나 다친 건지 몰라 잠시 어리둥절했다. 몸은 내동댕이쳐졌지만 나도 나를 내동댕이칠 수는 없었다. 나는 주섬주섬 몸을 일으켜 바닥에 앉았다. 겨우 앉기만 했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길을 가던 사람이 적잖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체면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도와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나를 힘주어 일으켜 주었다. 나는 모르는 사람 손에 의지하여 힘겹게 오르던 길을 되돌아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대문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은 참이라 길게 신세 지지 않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집에 간다고 넘어진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었다.
“무슨 일이야? 얼굴이 왜 그래?”
말 수 없는 남편의 목소리가 커졌다. 나를 걱정하는 그 목소리가 반갑지 않았다. 그냥 누워 쉬고만 싶었다. 남편에게 손사래만 연신 치고는 안방에 가서 누워버렸다. 봄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진 건가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그러자 괜히 눈물이 찔끔 났다. 눈물이 찔끔 나자 엉엉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러는 건가, 왜 서지도 걷지도 못하고 이러나.
그런 내가 왜 콩나물을 사겠다고 굳이 나섰나.
바람은 가엾은 내게 왜 공격하듯 불었나.
나는 왜 그깟 지팡이를 지키겠다고 땅바닥에 얼굴을 디밀었나.’
두서없이 쏟아지는 생각들은 하나같이 답답하고 분한 것들이었다.
거실에서 자식들에게 전화하는 남편의 분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픈 나를 들여다보기는커녕 자식들 불러들일 생각만 하는구나 하는 맘이 들었다. 남편은 늘 그랬다. 내가 생각하는 순서가 그에게는 없었다. 나는 그저 쉬고 싶었다. 그래서 기어나가 남편의 전화기를 뺏고 싶었다. 하지 말라고 소리쳐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기력이 없었다. 얼굴은 숙성되어 부푸는 밀가루 반죽처럼 부푸는 것이 느껴졌다. 살살 손을 대보니 평소 만지던 얼굴이 아니다. 몸을 일으켜 거울로 확인할 기력도 없었다. 나는 부어서 잘 감기지 않는 눈을 감았다. 이제 땅바닥이 아닌 방바닥에, 그렇게 나를 내버려 두었다.
얼마나 지난 걸까? 거칠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딸아이가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겨우 눈을 떠서 딸을 보았다. 나를 본 딸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그 아이가 울었다면 나도 따라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용케도 딸은 눈물을 삼켰고,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가겠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말처럼 괜찮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 얼굴이 괜찮다면 누구라도 거짓말이라고 할 것이었다.
이마에 커다란 혹이 나 있었다. 그 혹을 하나라고 해야 하나, 둘이라고 해야 하나. 이마부터 시작해서 눈두덩이로 다시 볼록한 것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쪽 눈은 거의 보이지 않는 지경이었다. 격렬한 시합을 마친 복서처럼 눈이 붓고, 그 위로 피가 엉켜 말라붙은 푸른 혹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좀 심한 타박상이란 걸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상처 부위가 특히 욱신거렸고, 넘어지며 몸에 힘이 들어간 탓인지 온몸이 아팠다. 응급실로 가자는 딸과 나는 실랑이를 했고, 남편이 딸 편이 되어 내 등을 떠밀었다. 실랑이 끝에 우리는 안과를 우선 가보기로 했다.
병원에 다니다 보면 두 부류의 의사를 만나게 된다. 면피를 하듯 진료 후에 큰 병원에 가보라는 의사와 이 정도면 괜찮아 보이니 좀 지켜보자는 의사. 대체로 나이 든 의사가 좀 지켜보자고 하곤 했다. 내 성격에는 그게 맞았다. 뭐든 호들갑스러운 건 질색이었다. 게다가 살만큼 산 나이 아닌가. 어디가 아파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안과 의사는 어쩌다 이리되셨냐고 안타까워하더니, 눈에는 아무 이상 없을 거라고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음날 다시 오라고 일러줬다. 상처도 자기가 보기에는 괜찮아 보인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 말 덕분에 나는 응급실로 떠돌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 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