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일기
너무 어려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전쟁을 겪었다. 머리 위로 굉음을 내며 날아가던 전투기의 공포를 기억한다. 어른들은 어디에 포탄이 떨어져 사람들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설처럼 떠들어댔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끔찍하고 두려운 일이라는 건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엄마 품으로 숨어 들어가 눈을 꼭 감았다. 하지만 세상에는 전쟁 때 머리 위를 날던 전투기만 두려운 것이 아니다.
귓가에 에엥 소리가 들려온다. 아이고, 파리 새끼 한 마리가 온 모양이군 한다. 그리고 천장 전등 사이에선 까만 무언가가 나를 향해 날아온다. 뭐야, 두 마리인 거야? 나를 향해 날아오던 파리는 금세 눈앞에서 사라진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눈으로 파리를 찾는다. 나를 놀리듯 파리가 날아왔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날아오기를 반복한다.
'귀찮은 파리 새끼.'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나온다. 파리가 알아들을 리 없다. 하지만 내 욕지거리를 듣고 기분이 상한 듯이 파리가 더 요란스럽게 내 주위를 난다. 오른쪽 귓가에 앵앵 소리가 나는 거 같더니 이마에 가 앉았는지 이마가 조금 근질거린다. 하지만 손하나 까딱할 수 없는 나는 이마를 짚어볼 수 없다. 있는 대로 얼굴 가죽을 끌어다가 인상을 써본다. 분명 이마에 주름이 졌을 것이다. 그제야 파리는 이마에서 떨어져 날아간다. 나는 잠시 안도한다.
내 욕지거리에 파리는 얼마나 마음이 상한 것일까? 파리는 다시 내게 거칠게 날아든다. 눈 뜨고 그걸 보자니 두렵다. 절로 눈이 감기고 사방이 조용해진다. 가만히 느껴보니 이번에는 파리가 이마 가운데가 아니라 이마와 머리가 이어지는 머리카락 근처에 가 앉은 거 같다. 나는 다시 파리를 쫓기 위해 인상을 써본다. 하지만 아무리 인상을 써도 파리에게 주름이 전달되지 않는 거 같다.
파리는 안전하다고 여긴 건지 살살 내 이마 언저리에서 움직인다. 얼음판 위에서 한 발을 디뎌 안전한지 살피고 다음 발작을 떼듯이 파리도 그러는 거 같다. 나는 그것이 온전히 느껴져 불쾌하다. 불쾌감이 느껴지자 파리의 다리가 닿아 간지러운 느낌도 든다. 이마의 작은 간지럼증은 온몸으로 전해져 나를 어쩌지 못하게 한다. 나는 다시 입을 달짝여 보고, 코를 찡그려보고, 눈을 깜빡여본다. 그런 작은 움직임이 울림이 되어 파리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파리에게 위협으로 느껴지길 간절히 바란다.
어린 시절 파리를 잡으려고 숨까지 참고 살금살금 가도 파리는 알아채고 도망을 갔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파리는 날아오르지 않는다. 난 다시 욕을 한다.
'파리새끼, 네까짓 것까지 나를 우습게 여기는 거야?'
하지만 그 말은 파리에게 가 닿기보다, 나에게 닿았다. 내가 파리 하나 쫓을 수 없는 상태가 되다니. 파리도 우습게 볼 정도가 되다니. 하지만 이깟 일로 울 수는 없다. 그리고 그 한탄은 잠깐 부린 어리광에 불과한 일이란 걸 잠시 후 깨닫는다.
다시 내 눈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체가 날아들었다.
내가 아는 파리도 모기도 아니다. 너무 빨라서 그 형체를 알아볼 수조차 없다. 정체를 알 수 없을 때, 대부분은 공포가 된다. 파리 서너 마리를 합쳐놓은 듯이 커다란 비행체는 내게 다가올수록 속도도 빠르고, 크기도 커졌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눈을 꼭 감았다. 검은 물체는 싸대기를 때리듯 내 얼굴을 치고 달아났다. 아픔보다 커다란 공포에 가슴이 찌릿했다. 점점 커지는 공포에 감은 눈을 뜰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날아오는 비행체에 싸대기를 몇 대 더 맞았다. 그러는 동안 내 주변은 요란한 소리로 가득했다. 막을 수 있다면 귀도 막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서 눈을 더 꼭 감았다. 얼마나 꼭 감았는지 눈에 고여있던 눈물이 찔끔 나와 맺혔다. 80이 넘어 나는 다시 전쟁통에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 진짜 진짜 무섭고, 두려웠다.
잠시 후, 간병사의 신경질적인 소리가 들렸다.
“아니, 나방이 어떻게 들어온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