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정도 딸네 머물다 나는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는 일주일 정도 입원해 있다가 퇴원했다. 특별히 나아진 건 없었다. 그 사이 통증이 사라진 건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걸 빼면 내 몸은 더 나빠진 것 같았다. 병원 침대에 누워있기만 해서 이제는 더 걸을 자신이 없었다.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디디면 부러진 성냥개비처럼 무너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걸어야 했고, 집에 가야 했다. 딸이 입안에 혀처럼 돌봐주고, 병원에서는 언제든 의사가 달려와 고통을 다스려 주었지만, 거긴 내 집이 아니었다. 그래서 늘 언제 집에 돌아가나 하는 생각만 했다. 그때 집은 나고, 나는 집이었다. 퇴원하는 날, 두둑한 약봉지를 희망처럼 품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들어서니 낡았지만 익숙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혼자 지내며 꽤나 그리웠는지 남편도 웃는 얼굴로 나를 맞았다.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요양보호사는 관뒀다고 했다. 요양센터장은 서둘러 요양보호사를 구해주겠다고 했다. 여러 조건을 요양보호사 편의에 맞춰둔 상황이라 구하기 어렵지 않을 거라고 했다. 센터장의 말대로 금세 새로운 요양보호사가 왔다. 마른 몸에 강단 있는 모습이었다. 인상대로 요양보호사는 철저하게 시간을 지켜 자기가 할 일을 해냈다. 그리고 그즈음 남편에게도 철저하게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아빠, 이제부터 아침은 아빠가 챙기셔야 해요.”
딸은 남편 손을 끌어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가 있는 쪽으로 갔다.
“냉장고에 김치며, 국 넣어 둘 거예요. 반찬도 몇 가지 챙겨둘 테니 꺼내서 드시면 돼요.
밥은 밥통에 있으니까 밥그릇에 뜨시고요. 하실 수 있지요?”
“그럼, 그럼. 엄마 교회 가면 나 혼자 늘 밥 챙겨 먹었는데 뭘.”
“맞아요, 그렇게 챙겨 드시면 돼요. 이제부터 엄마 식사까지 같이 챙기시는 거예요. 아셨지요?”
남편은 알겠다고 걱정 말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딸의 말이라면 순한 양처럼 굴던 남편이니 이번에도 그랬다.
밥상 차려놓고 불러도 느릿느릿 자기 할 일 다 하고 식탁에 앉아서 속 터지게 했던 남편이 이제는 아침마다 밥상을 차리고 나를 불렀다. 다 먹고 나면 김치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넣고, 설거지까지 했다. 하지만 남편의 일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요양보호사가 없는 시간에 일어나는 일은 모두 남편의 몫이 되었다. 나는 점점 움직이기 힘들어 작은 일 하나에도 남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저기 휴지 좀 줘요.”
소파에 앉아 테이블 위에 있는 휴지를 꺼내려는데 잘 되지 않았다. 몸 일으켜 한 발짝만 떼면 간단할 일이었는데 그랬다. 남편이 뽑아서 손에 쥐어줘야 편하게 쓸 수 있었다. 그러니 남편을 부를 일이 많았다.
“민수 아빠, 민수 아빠.”
“어, 왜.”
“나 좀 일으켜줘. 화장실 가야 해.”
몸은 장작처럼 바싹 말라가는데 왜 몸에선 계속 물기를 만들어내는 걸까. 몸에 기운 빠지듯이 오줌도 줄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읏차!"
남편은 힘겹게 나를 일으켜주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일어나기 수월한 건 그나 나나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80 노인이 80 노인을 부려먹는 꼴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남편을 깨우지 않고 화장실에 가보기로 했다. 안간힘을 쓰고 몸을 일으켰다. 인간의 생존 조건에는 자고, 먹고, 싸는 것이 있다더니, 화장실에 가는 게 본능처럼 간절했다. 그 본능에 충실하려 나는 정말 쉬지 않고 애를 썼다. 결국 몸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고 어찌어찌 워커를 손에 쥐었다. 이제 되었다 했다. 한발 한발 움직였다. 워커에 몸을 의지하면 발바닥을 쓸어 걸을 수 있었다. 예전 어떤 노인이 평면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탄 듯 쓱쓱 걸음을 걷는 걸 보고 신기했는데, 내가 그러고 있었다. 무릎을 구부려 발자국을 떼서 걷는 것이 아니라 발바닥을 바닥에 대고 쓱쓱 밀어내며 걷는 것이다. 그렇게 화장실 앞에 왔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다더니 이제 나 혼자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나오는구나 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문제였다. 끝까지 방심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화장실 문 앞에서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너무해.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됐는데.’
나는 너무 절망스러워서 일어날 맘도 들지 않았다. 어쩌면 그때처럼 다시 응급실에 가고 병원에 입원하는 끔찍한 상상을 했던 거 같다. 이상한 인기척을 느낀 건지 남편이 일어나 나왔다.
“나를 깨우지, 또 넘어진 거야?”
남편의 목소리에는 걱정보다 화가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말에 아무 댓구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넣어 손깍지를 끼더니 나를 일으켜 세우려 힘을 줬다. 하지만 좀처럼 일으켜지지 않았다. 나는 바짝바짝 말라갔지만 역시 늙고 마른 남편에겐 무거운 짐짝 같았을 것이다. 남편은 몇 번이고 나를 일으켜주려고 안간힘을 썼다. 얼마나 힘을 쓴 건지 잔뜩 힘이 들어간 그의 손이 내 가슴을 몇 번이고 누르고 또 눌렀다.
“아이고, 아파라!”
나는 아프다고 소리쳤지만 그는 일으켜 세우는데만 열중해서 멈추지 않았다. 결국 나는 숨이 턱 막혀 그의 손에 이끌려 일어섰다. 그리고 방에 와서 눕는데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났다. ‘아이고 아이고’ 소리는 통증에 섞인 내 신세 한탄이었다. 그 소리에 남편도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나가 죽던가, 낫던가 해야지, 원.”
그 말에 슬프면서도 웃음이 났다. 뭐 저리 적절한 말이 있나 했다.
자식이 정성으로 보살펴주고, 병원에 입원해 갖은 검사를 다 받아 치료하고도 나는 이 모양이다. 나는 어느 쪽이 될까 생각했다.
'내가 나을 수 있을까? 죽는 게 빠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