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일기
내가 남편을 다시 만난 건 중환자실을 거쳐 요양병원에 온 후였다. 목관을 하고 난 후, 나는 볼펜으로 남편이 보고 싶다고 썼다. 지긋지긋했던 남편이었는데 이렇게 주저앉고 나니 가장 많이 보고 싶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남편이 병실로 들어왔다. 나를 보기 위해 온 것이다.
남편은 말수는 적지만 속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내가 요양병원에 입원하기로 하자, 남편은 소파에 앉아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나는 남편의 그런 모습이 낯설어 어리둥절했지만 싫지 않았다. 그 후로 얼마나 헤어져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수개월이 지나지 않았을까? 멀리서 매미 소리가 들려왔으니 봄이 지나도 한참 지났을 것이었다.
병실에 들어선 남편은 간병사가 보는 데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내 얼굴을 붙잡고 한참 흐느꼈다.
“어쩌다가, 미자야 어쩌면 좋으니.”
남편의 흐느낌에 나도 따라 울었다. 목관을 하고 운다는 건, 목관을 하고 사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참을 수 없었다. 나는 그처럼, 그를 따라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다시 몇 개월이 지났다. 간병사가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 캐럴이 나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여름도 가을도 지나 겨울이 된 거였다. 여름에 다녀간 남편은 그 후로 한 번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찾아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 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자식들도 차마 말해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나보다 먼저 하나님을 만나러 떠난 것이 아닐까.
“당신이 나보다 먼저 죽어야 해.
내가 당신 장례식 치르고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하고 떠날게.”
평소에 내가 남편에게 했던 말이다. 남편은 내 말 대로 떠난 거 같았다. 남편은 내 말을 들어줬는데 나는 이 꼴이 되어 남편에게 했던 말을 지키지 못하게 되어 미안했다.
그래도 남편 먼저 떠나보낸 것은 잘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를 떠나보내고 슬퍼했을 그를 남겨 두지 않았으니 남편은 분명 고마워했을 것이다. 가끔 정신이 몽롱할 때면 남편을 닮은 큰아들이 남편처럼 보인다. 내가 본 것이 진짜이길 바라며 제발 그 입에서 ‘엄마’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랄 때가 있다.
마음 한 구석, 여전히 그가 떠나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