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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 Oct 18. 2024

4. 이상한 면접


머리에 푸른 혹이 달리고 나는 집안의 환자가 되었다. 나의 고통이 혹으로 드러나자 가족들은 본격적으로 나를 도울 방법을 찾았다. 딸이 용하다는 침술사를 찾았다며 침을 맞아보자고 했다. 한의원에서는 보험이 되어 몇천 원이면 침도 맞고, 원적외선도 쐬고, 덜덜이 마사지도 받는다. 하지만 딸이 찾은 침술원은 달랐다. 우선 침놓는 사람이 의사가 아니라 의료보험과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러니 첫째 비싸고, 둘째 불안한 맘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순순히 딸을 따라나섰다.


나는 어떻게든 걸어야 했다. 내가 걸어야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늘 쉬고 싶은 맘이었지만 가족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나는 한 사람의 가족 구성원을 넘어 기둥이었다. 내가 그런 존재인지 나도 몰랐다. 그런 내가 아프니 모든 것이 달라졌다. 달라져야 했다.   



   

가장 큰 변화는 집에 요양보호사가 온다는 것이다. 딸은 오래전부터 요양등급을 받자고 했다. 자기 친구 부모들은 요양보호사가 집에 와서 청소도 해주고, 밥도 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모르는 사람을 집에 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맘은 남편이 더 했다. 나는 불편한 대신 집안일이 주니 어찌할까 고민이 되었지만, 남편은 아니었다. 내가 또는 모르는 요양보호사가 밥을 차려준다고 하면 남편은 나를 택하면 그뿐이었다. 요양보호사를 부르는 것은 쓸데없는 데 돈을 쓰는 일이었다.

남편의 맘을 눈치챈 건지 딸은 요양보호사를 불러도 돈은 아주 조금 낸다고 했다. 세상에 그런 경우가 어디 있나 싶었다. 딸은 자식들이 내는 세금으로 국가에서 하는 일이라고 했다. 덧붙여 매달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 아까워 죽겠으니 제발 하자고 했다.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더한 것도 할 수 있을 터였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딸은 서둘러 서류 준비를 하고 신청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요양등급 심사를 위한 면접이 있다는 연락이 왔다. 이 나이에 심사를 받는다면 어떤 것을 받는 것일까? 시험을 본 기억도, 면접을 본 기억도 아득하여 짐작이 되지 않았다. 딸은 야무지게 예상 질문을 뽑아서 남편과 나를 교육시켰다. 우선 면접에 임하는 마음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엄마, 아빠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기 힘든 상태라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해. 이건 분명한 사실이니까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라고, 뭐. 아시겠지요?”

“그래.”

“면접관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는 인지 능력이라고 해. 치매 노인들은 100% 요양 등급을 받는다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절대 똑똑하려고 하면 안 돼요. 나이를 묻거나, 날짜, 요일 같은 걸 물으면 절대로 바로 대답하지 마세요. 생각하는 척 시간을 끌다가 틀린 답을 하거나 그냥 모르겠다고 하시면 돼. 아셨죠?”

우리 부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나 보라거나 걸어보라거나 하는 것도 시킨대. 이것도 바로 일어나지 말고, 힘겹게 겨우 일어나거나 일어나다 다시 주저앉거나 하는 거예요. 너무 힘내서 하려고 하지 말라고요. 이 심사는 잘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게 중요한 거라고. 뭐든 더 못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

딸은 잘하려 하면 안 된다는 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한마디로 바보, 병신 짓을 하라는 말이었다. 나와 남편은 연신 알겠다고 했다. 오래 살다 보니 못해야 잘되는 심사도 받는구나 했다.


심사를 받는 날 아침, 딸은 평소와 다른 차림으로 왔다.

“엄마, 어때 나 출근하는 여자 같아?”

“너야 뭐든 잘 어울리지.”

“그래? 나도 직장 다녀서 부모 찾아오기 힘들다고 어필하려고 좀 꾸미고 왔어.

 이따가 엄청 바쁜 척하려고. 히히.”

우리에게 신신당부하던 딸은 자신이 해야 할 몫도 잊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부모는 아프고, 자식들은 직장 일로 모두 바쁜 가족으로 완벽하게 세팅을 했다. 국가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지만 넘어진 후유증으로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벅차니 아주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라고 고쳐 생각했다. 그러니 떨리는 맘이 좀 가라앉았다.

남편의 어눌한 연기와 내 얼굴에 남은 혹과 누렇게 변해가는 멍의 잔재, 그리고 딸의 유려한 상황 설명으로 심사는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다시 며칠 후, 딸은 요양등급을 받았다는 연락을 해왔다. 뭐든, 심사를 통과했다니 기뻤다.

     



요양등급이 나오고 딸은 다시 면접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에는 요양보호사 면접이었다. 딸은 식사 준비가 힘든 나를 위해 점심과 저녁을 차려줄 수 있는 조건으로 사람을 찾았다. 요양보호사를 쓸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어서 우리가 원하는 조건은 조금 까다로운 것이었다. 게다가 남편과 나, 두 사람을 돌봐야 하니 요양보호사 입장에서는 꺼리는 일이라고 했다.

요양보호사들이 원하는 조건은 간단하고도 까다로웠다. 많은 요양보호사가 할머니를 선호한단다. 아무래도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깔끔하다고 했고, 요양보호사가 여자가 많으니 그런 것도 같았다. 그리고 요양보호사는 가족과 함께 사는 노인 돌보기를 꺼렸다. 노인 한 사람을 돌보러 간 건데 나머지 가족의 일이 끼어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는 직장을 찾는 조건과 비슷했다. 교통편이 좋은 위치에 인프라 좋은 곳을 선호했고, 시간 활용이 좋은 경우를 선호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집은 불리한 것이 많았다. 남편과 내가 함께 살고 있었고, 오래된 주택에 전철역도 꽤 먼 편이라 오가기 좋은 위치도 아니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연락이 왔다. 다시 면접 날을 잡았다.   

   

요양보호사를 면접하는 날에는 억지로 일어나 소파로 가서 앉았다. 집에 들일 사람을 뽑는 거라 누워있을 수만은 없었다. 요양보호센터장이라는 사람이 먼저 들어오고, 뒤따라 긴 머리를 한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딸은 두 사람이 마실 차를 준비해서 내놨다.

마주한 두 사람의 표정은 상반되었다. 센터장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었지만 면접 보러 온 요양사는 굳어 있었다. 억지로 꼬뚜레를 뚫어 끌고 온 것처럼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티 나지 않게 집안을 살폈다.


“어르신들이 아주 깔끔하시네요?”

센터장의 그 말을 칭찬으로 들어야 하는지 헷갈렸지만 웃어 보였다. 옆에 있던 딸이 엄마가 워낙 깔끔하신 분인데 몸이 불편하셔서 집안일이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딸의 말투에는 그래서 당신들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하다는 느낌이 가득했다. 센터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딸의 말을 들었다.

“자식들도 사는 게 바쁘니 어쩔 수가 없어요. 우리 요양사님이 잘 도와주실 겁니다.”

“점심과 저녁을 부탁드리려고 하는데 중간에 시간이 비어서 어쩌지요?”

“우리 요양사님이 책을 좋아하셔서 중간에 쉬는 겸 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오시겠다고 해요. 그러면 시간문제는 해결이 되지요.”

“아, 그렇군요. 책을 좋아하시는구나.”

딸이 반갑게 웃어 보였다. 책을 좋아한다는 설명을 듣고 보니 요양사는 노년에 접어드는 여인치고는 긴 머리에 커다란 천가방을 든 모습이 꽤 지적인 느낌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 모든 일을 해결해 줄 듯이 말하는 센터장과 달리 요양사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제야 센터장이 요양사의 표정을 살폈고, 요양사가 입을 뗐다.

“오면서 보니까 도서관이 생각보다 좀 멀더라고요.

길도 비탈길이라 마을버스를 타고 다녀야 할 거 같아서 시간을 좀.”

요양사의 말에 센터장이 금세 말을 바꿨다.

“사실 그렇기는 해요. 이렇게 시간을 띄워서 일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요.”

시간 조정을 요구하는 말에 딸은 나와 남편을 번갈아 보았다. 이쯤 되면 내가 나서야 했다.

“그냥 점심에 오셔서 일하고 가시라고 해라.”

결국 우리는 요양사가 원하는 대로 시간을 맞춰줬다.      


“저, 그런데 오다 보니 시장도 꽤 멀던데 식사 준비라도 해드리려면 어찌해야 할지.

요양사는 이번에는 주변 편의 시설을 걸고넘어졌다.

“그건 걱정 마세요. 제가 장을 봐오거나 배달시켜 드릴게요.”

딸이 나서서 그 문제를 해결했다. 그제야 요양사는 내일부터 와서 해보겠다고 했다. 

우리에겐 요양사를 잡아끌 매력적인 조건이 별로 없었다. 낡은 주택에 교통도 불편하고, 남편과 사니 독거노인도 아니었다. 그저 자식들이 함께 살지 않는다는 정도만이 내세울 조건이랄까? 

분명 면접을 보는 것이었는데 어느새 면접을 당하는 꼴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요양보호사가 제기하는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하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면접이 끝나고 그들이 떠났다. 하지만 면접을 마치고 떠나는 요양사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나는 요양사가 정말 내일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너무 수다스러운 것보다 조용한 게 낫지 않겠어?”

“그래, 수다스러운 것보다 낫지. 책을 좋아한다니 성격도 조용한가 보네.”

“센터장님이 경력 많은 분이라고 칭찬하셨으니까 괜찮을 거야.”

“그래, 긴장하는 모습이 좋은 사람인 거 같아. 영악한 사람이라면 저리 긴장하지 않을 거다.”

사람 불편하게 내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던 요양사를 나는 애써 좋게 생각하려 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못해야 통과하는 요양등급 면접을 치르고 나니, 이번에는 나를 도울 사람을 찾으면서도 내가 그들 맘에 들어야 하는 면접을 했다. 두 번의 면접은 지금까지 내가 알던 면접과는 참 다른, 이상한 면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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