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일기
'찰칵, 찰칵!'
사진 찍는 소리가 난다. 소리는 침대 아래쪽에서 난다. 그러니까 내 몸의 아랫도리에서.
간병사는 이불을 들추고 이어서 내 몸을 들췄다. 간병사의 손길에 나동그라지듯 흩어진 이불은
내 몸에서 저만치 떨어져 나갔다. 추위보다 더한 허전함이다.
이불속 내 몸은 오래전부터 알몸이었다. 어떻게 바지가 벗겨지고, 오줌줄이란 것이 끼워졌는지 기억이 없다. 벗겨진 몸뚱이는 오직 이불이 지켜주고 있다. 이불은 나의 속옷이자, 바지이자, 나를 지켜내는 갑옷이다.
모든 사람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목욕탕에서도 나는 수건을 둘러 내 몸을 가리곤 했다. 수건이 지켜낸 것은 가슴 부위와 음부였다. 작가 박완서의 소설에는 늙어 늘어진 자신의 몸을 거울 너에게도 보여주지 않겠다는 대목이 있다. 난 그 글귀에 공감했다. 무엇도, 그것이 거울 속 나라고 해도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 실체와 다르다 해도 잘 가리고 포장하여 나를 고귀하게 지켜내고 싶었다. 그런데 거울은 커녕 이 낯선 장소에서 나는 아무렇게나 드러나 있다.
내 허전함을 알 리 없는 간병사는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음부에 이어 엉덩이 깊은 곳까지. 한마디 설명도 없이, 시장 좌판에서 생선을 고르는 것처럼 이렇게 저렇게 내 몸을 들춰댄다. 나는 미칠 것만 같다. 네가 뭔데 나를 이렇게 유린하는 거냐고 소리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숨소리 하나 크게 내 쉬지 못하니, 앙다문 입처럼 눈을 꼭 감을 뿐이다.
이곳 사람들은 서로 다른 증상으로 입원했지만 결국 같은 고통을 겪는다. 바로 욕창이다.
모두 누워있으니 이불에 닿아 눌리는 부위에 욕창이 온다. 많이 눌리는 엉덩이, 발꿈치 같은 부위가 헐고 진물이 흐른다. 어떤 할머니는 손가락에까지 욕창이 왔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이런 상황이니 간병사가 찍은 내 사진은 그녀의 전리품이 될 거다.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얼마나 능력 있는 간병사인지 사진이 증명하리라. 사진을 자식들에게 보이며 당당한 목소리로 말할 것이다.
“할머니 엉덩이에 욕창이 심했는데 이렇게 좋아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