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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 Jun 03. 2024

두 번의 장례식

39. 행복한 기억이 남았습니다

힘들게 시작했던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한해 마지막 주말이다 뭐다 하는데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21일 아빠의 1주기를 중심에 두고 12월을 시작했는데 그다음 날부터 시아버지의 응급실행이 이어졌고, 23일에는 시아버지마저 떠나고 말았다.


요상한 인연이 있는 듯이 두 분은 생일이 하루 차이였는데, 돌아가신 날도 하루 차이다. 그래서 매년 장례식을 치르는 꼴이 되었다. 작년에 보았던 남편의 회사 직원들은 어딘지 낯익어 소개도 받기 전에 먼저 손 내밀어 인사하기도 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두 번의 장례식은 참 이상한 것이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행사를 치른다. 해마다 생일을 보내고, 또 다른 삶을 선택하는 결혼식을 한다. 개인적인 행사뿐 아니라 나라에서 정한 어린이날, 어버이날 같은 기념일도 챙긴다. 하지만 어떤 것도 장례식처럼 특이하지는 않다.


장례식은 어떤 일보다 우선시 된다. 급한 일이 있어도 장례식 앞에서는 올스톱이다. 회사도 학교도 장례식 중에는 가지 않는다. 군대에 있던 군인도 휴가를 나오게 된다.


그리고 장례식은 시간제한을 두지 않는다. 장례식처럼 시간제한이 없는 행사가 있을까? 장례식은 아침 일찍 찾아와도 되고, 밤늦게 찾아와도 괜찮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장례식에는 밤을 새도 괜찮다. 아니, 그것을 정성으로 여겨 고마워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정이 넘치고 그래서 질척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행사는 없다.


마지막으로 장례식은 가족이 함께 치르는 행사다. 멀리 있는 가족이 열일 제처 두고 모여서 장례식을 치른다. 그래서 자주 보지 못했던 친척도 장례식에서 만나고, 가족 행사에 빠지곤 하던 가족도 이때만큼은 모이게 된다.




나는 이런 특징을 가진 장례식을 통해 많은 치유를 받았다. 모든 것에 우선 되는 장례식이다 보니, 장례식만 생각할 수 있어서 편했다. 한 가지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맘을 어지럽히지 않아서 좋았다. 그래서 슬픔을 안고 찾아온 문상객의 눈에는 내가 멀쩡해 보였을 수 있다. 그리 슬프지 않아 보였을 수도 있다. 난 그게 좋았다. 계속해서 징징대지 않을 수 있어서 나도 좀 나았던 거 같다.


밤낮으로 며칠 동안 치른 장례식이라서 이른 새벽에도 늦은 밤에도 문상객들이 왔는데 늦은 밤, 아르바이트 끝나고 왔다며 조카의 친구들이 아빠의 장례식장에 왔었다. 초등학교 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놀아주던 형들이 어느새 어른이 되어 나타나 반가웠다. 또 시아버지 장례식 때에는 크리스마스 가족 여행을 떠났던 남편의 회사 동료가 여행 중에 소식을 들었다며 뒤늦게 찾아왔다. 찾아오지 않았어도 전혀 서운하지 않았겠지만 찾아오는 이들이 시간 구애 없이 올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워 반갑게 맞았다.


장례식에 찾아온 이들은 위로의 방식도 다양했다. 어떤 이는 절을 하고, 어떤 이는 고개를 숙여 기도를 했는데 유난히 절도 있게 절을 하던 사람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신기할 정도로 절도 있게 절을 해서 절을 하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었다. 어쩌면 웃음이 날 것도 같은 모습이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평소에도 절도 있고,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무튼 그렇게 정성을 다해 아빠에게 예를 갖추었다는 생각에 고마웠다. 또 어떤 이는 기도를 마치고도 한참을 서서 아빠의 사진을 들여보기도 했다.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을지도 모를 일이다.


난 저마다 다른 모습의 위로를 보면서 모두 감사하고 좋았다. 그래서 어떤 모습이 건 내가 할 수 있는 모습으로 위로를 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례식장에 가면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눈치를 보고, 조심하게 되는데 내 마음을 다해 위로한다면 틀리는 것은 없는 거 같다.


장례식은 한없이 슬픈 행사지만 행사를 지내는 동안 슬프기만 한 건 아니었다. (물론 이건 내 상황에 하는 말이다.) 두 번의 장례식들을 떠올려볼 때 행복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재미있다는 표현이 어색할 수 있는데 난 그 시간들이 좀 재미있는 시간이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거 같다.

가까운 이들이 나를 찾아와 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주니 좋았고, 가족과 삼일 동안 함께 지낸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여행을 간다고 해도 같은 맘으로 긴 시간을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오직 장례식에서만 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같은 옷을 차려입고, 같은 맘으로 슬퍼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 어울려 시간을 보내고, 밥을 먹었던 것이 나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장례식을 하는 동안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이면 우리는 모두 모여 밥을 먹었다. 장례식 도우미분들까지 모두 떠나고 나면 서로 도와 밥상을 차렸다. 따뜻한 뭇국을 뜨고, 새콤한 홍어무침을 덜어 담고, 멸치볶음, 김치 등의 밑반찬을 차렸다. 그리고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따뜻한 국물과 말캉한 무가 속을 데워주었다. 평소에도 자주 먹는 국이었지만 장례식장의 뭇국은 참 맛이 있어서 모두 국 한 그릇씩 잘 먹었다. 지금도 우리는 그 대학병원 장례식장은 음식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웃을 때가 있다.


시아버지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댁 식구들과는 더 함께할 시간이 별로 없었는데 시아버지 장례식으로 삼일을 함께 지냈다. 시아버지 장례식 때는 육개장이 기억이 난다. 빨간 육개장으로 속을 달래며 장례를 치렀는데 모두 어울려 맛있게 먹었다. 시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육개장 이야기를 하며 먹었던 시간이 행복했던 거 같다.


난 그 시간들이 떠나는 아빠가, 시아버지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두 번의 장례식은 슬프게만 남지 않았다. 다시 하기 힘든 경험과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한없이 따뜻한 시간으로 말이다.


죽음은 모든 것을 리셋시키는 힘이 있는 거 같다. 장례식을 치르며 미워하는 맘, 원망하는 맘이 점차 사라졌다. 아빠를 떠나보내기도 하는데 그깟 일이 뭐 대수일까 해졌다. 슬픔은 컸지만 시간이 흘러 마음에 평안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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