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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 Jun 05. 2024

익숙한 멸치, 낯선 시어머니

40. 당신을 위로하는 나의 슬픔

저녁은 뭐로 하면 좋을까? 그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며칠 전에 남편과 장을 보며 사온 어묵이었다.

남편은 어묵을 좋아한다. 그것도 조금 까다롭게 좋아한다. 생선살이 많이 들어간 비싼 어묵보다는 어릴 적 먹었던 싸구려 어묵을 좋아한다. 그래서 최근 들어서는 비싼 어묵보다는 싼 어묵을 사곤 한다.


함께 장을 본 그날도 그래서 비교적 값싼 어묵을 사 왔다. 나는 그 어묵을 가지고 정성스레 어묵탕을 끓여보기로 했다. 건강 때문에 국물 음식을 줄이고 있기는 하지만 비가 온 날이면 따끈한 국물이 생각나게 마련이다.

무를 조금 크게 썰고, 다시마 두 장을 꺼냈다. 국물을 내기 위해 쓰는 다시마지만 이번에는 중간에 꺼내서 버리지 않을 예정이다. 남편은 어묵탕에 든 다시마를 좋아한다. 너구리 라면이 특별한 이유도 한 장 들어있는 다시마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나는 어묵탕에 삶은 달걀도 넣고, 우동도 넣어서 먹어보기로 한다. 이쯤 되면 정성을 다해 어묵 우동을 끓이는 것으로 저녁 식사 준비가 끝나게 될 것이다.


먼저 육수를 내기 위해서 물에 무를 썰어 넣고, 다시마, 대파를 넣는다. 그리고 멸치를 넣어야 하는데 나는 이럴 때 편히 쓰기 위해 평소에 멸치와 건새우를 갈아서 만들어둔다. 그러면 따로 멸치를 건져내는 수고를 덜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석대로 국물을 만들 요량으로 다시마를 꺼내며 보였던 굵은 멸치를 넣기로 한다.

여전히 눈알이 보이는 멸치 머리, 그리고 똥이며 내장이 빠진 길쭉한 몸통이 있다. 나는 그것을 넉넉하게 냄비에 넣는다. 그런데 그 순간 왈칵 눈물이 났다.




내가 냄비에 넣은 그 멸치는 시어머니가 일일이 손질해서 육수 만들 때 쓰라고 준 것이다. 며칠 전에도 난 어머니가 주신 찰보리를 마지막으로 현미와 섞어 밥을 지었다.

어머니는 늘 찹쌀이며 보리를 투명한 페트병에 넣어 나눠주셨다. 그렇게 하면 보관도 쉽고, 쓰기에 편했다. 그리고 페트병 겉에는 찹쌀, 찰보리 같은 글자가 쓰여있다. 글씨는 어머니가 썼을 수도 있고, 시아버지가 쓴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 썼든 그 글자는 다시는 볼 수 없는 글자다. 이제 어느 분도 그렇게 글씨를 써서 나에게 주지 못한다.


어머니가 내게 준 것은 아직도 내 냉장고 곳곳에 있다. 시동생이 사다준 젤리를 어차피 다 못 먹는다며 억지로 내게 나눠준 적이 있다. 그 젤리는 나도 잘 먹지 않는 것이어서 그대로 냉장고 속에 있다. 그리고 김치 냉장고에는 어머니가 주신 검은콩이 있다. 많이 주셨는데 이제는 거의 다 먹어서 얼마 남지 않은 상태다.


나는 어머니가 주신 먹거리가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이걸 다 먹으면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건 아닐까?' 하는 이상한 생각을 한다. 그래서 어떤 때는 어서 다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어떤 때는 먹지 말고 두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시어머니는 지금 인공호흡기를 하고 1년째 누워계신다. 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저 음식들을 서둘러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먹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누워 있는 고통에서 벗어나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살아계시는 것이 안심이 될 때도 많다.

나는 멸치 한 줌을 냄비에 넣으며 이런 생각으로 엉엉 울고 말았다. 오랜 시간 노환에 시달리고, 인공호흡기를 하고 1년여의 시간을 보내며 눈물도 말라버린 줄 알았다. 그런데 멸치 한 줌이 나의 맘을 소용돌이치게 했다.




사람들은 이제 어머니를 아기 대하듯이 한다. 나도 어머니를 만나면 조금이라도 편해질까 싶어서 머리칼을 살살 쓸어준다. 그러면 어머니는 조금 편한 얼굴이 되어 잠이 든다.

간병사는 어머니에게 자식들 보며 웃어주라고 말한다. 그게 우리를 위한 좋은 맘으로 하는 말인 걸 잘 알지만 가끔 우리 집 제일 큰 어른인 어머니에게 그런 걸 시키다니 같은 맘이 들 때도 있다. 괜한 어깃장을 부리는 맘인 걸 알면서도 어떤 날은 그게 듣기 싫다.

단정하고 똑똑하던 시어머니는 어디에 계시는 걸까? 김치 싱거우면 액젓 조금 더 넣어 먹으라고 당부하시고, 어떻게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 맛있다고 늘 일러주시던 분은 어디 있는 걸까? 나는 어머니를 보면서도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어서 어리둥절한 느낌이다.


따끈한 어묵 우동 한 그릇을 끓이려다 뜨거운 눈물을 너무 오래 흘렸다.           




** <슬픔을 빌려드립니다>를 이쯤에서 마무리하려 합니다. 그동안 찾아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간간이 들려주신 위로도 깊이 감사합니다. 사실 위로를 받고 싶어서 쓴 글은 아니었어요. 슬픔 속에 있는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어서 시작한 글이었지요.

아빠를, 시아버지를, 시어머니를 병원에 모시며 간간이 검색을 해보곤 했는데 같은 처지의 분들이 쓰신 글들이 큰 위로가 되더군요. 낭떠러지에 서서 그다음을 몰라 허둥댈 때, 이어질 상황의 힌트를 주는 것만 같았다고 할까요?  뭐, 그런 것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겪은 일을 구구절절 늘어놓았어요.

하지만 이 내용이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걸 여러분은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삶은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하고, 우리는 잘 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긴 호흡으로 풀어나가야 하니까요. 다시 말이 길어지는데요. 마지막 진심은 다음 글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을 위로하는 나의 슬픔>

나의 슬픔을 들려드릴게요. 당신을 위로하는 데 쓰세요.

다른 이의 슬픔으로 위로받으려 한다고 미안해 마세요.

위로를 찾는 당신도 힘든 건 마찬가지니

우리 그렇게 서로의 위로가 되자고요.

내가 누군가를 위로했다면

나의 슬픔도 슬픔으로만 남지 않아 다행이지 않겠어요?


사실 슬픔은 기쁨보다 힘이 세요.

슬픔은 강한 몸부림을 동반하고,

깊은 밤에도 잠들지 않는 정신력을 보이며,

옅은 기억력에 늘 깜빡이던 이에게도

오래 남아 기억하게 하지요.


나는 나의 슬픔을 지금도 기억해요.

1년이 지나도 계속 이런 상태라면

정신과 치료를 받는 편이 낫다고 해요.

아무리 잊을 수 없는 슬픔이라도 그때쯤이면 떨쳐야 한다는 의미일 거예요.

세상은 슬픔을 일 년 정도만 참아주나 봐요.  

너무 야박한가요?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당신을 살게 하려고 그러는 걸 거예요.

후회 없이 살라고 말이에요.

그러니 슬픔을 빌려 당신을 위로하는데 쓰세요.


                                                                            스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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