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에서 느끼는 비의 촉감
지난 주말엔 비가왔다. 수영과 비를 동시에 즐기기 위해 워터파크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 평소처럼 운동으로서의 수영이 아니라, 놀이에 가까운 수영을 하기 위해서다. ‘아이까지 괜히 고생시키지 말라’는 남편의 배려(?)는 흔쾌히 수용하기로 했다. 가끔의 휴식으로 지친 나에게 보상을 해주는것도 필요하니까. 친구를 꼬셔 아줌마 둘이 워터파크로 향했다.
내가 야외수영장에 가는 날의 대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비가 오곤했다. 그 덕분에 알게 되었다. 비오는 수영장이 정말 매력적이라는 것을. 줄을 길게 서거나 붐비는 인파에 시달릴 필요없이 온전히 수영장을 누빌수 있는 절호의 ‘성수기 안의 비성수기’인 것이다.
비오는 날 수영장의 진짜 매력은 우두둑 떨어져 맨몸에 닿는 빗방울의 촉감이다. 젖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이 피부의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물 위를 둥둥 떠다니며 흐린 하늘을 뚫고 떨어지는 빗줄기를 정면으로 감상할 수도 있다. 비가 수직으로 내 얼굴을 향해 떨어지는 동안 빗방울로 온통 몸을 적시다보면,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다. 비를 흠뻑 맞을 기회가 우리 인생에서 흔히 찾아오지 않으니 어쩌면 참 소중하기도 하다.
긴 줄을 서지않아도 되다보니 거대한 물놀이 기구에 도전할 기회도 자연스레 찾아왔다. 인생 처음으로 '메가스톰'이라는 슬라이드 놀이기구에 도전할 수 있었다. '이건 언젠가 외국에서 타본 물놀이 기구와 비슷하니까 안타봐도 되겠어.'라며 피하는 겁많은 친구의 팔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오늘 안타면 10년후까지도 이런 기회 없을것 같애” 오늘이 아니면 친구와 둘이 워터파크에 올 일은 중년이 되어서도 없을것이 분명했다.
친구와 손을 잡고 물놀이 기구의 꼭대기에 섰다. 지상 37미터 높이의 출발선에 서니 높은 타워빌딩의 전망대에 올라선 듯한 느낌이다. 워터파크 전체가 내려다 보일만큼 높은 위치에서 출발하려니 덜컥 겁이 났다. 아줌마가 되어서 워터파크 미끄럼틀 정상에 선 우리 모습이 조금은 우스꽝스러웠다.
"으악!!!!!!!!!!!!!!!!!!" 원형 튜브에 여섯명이 몸을 싣자마자 355미터 길이 슬라이드를 약 1분만에 내달렸다. 급하강, 급상승, 상하좌우 회전, 무중력이 반복되는 동안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놀이동산으로 비유하면 롤러코스터와 바이킹을 합쳐 놓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자기부상 워터코스터와 토네이도 형태가 합쳐진 '복합형 워터슬라이드'라는데 '정신이 쏙 빠진다'는게 이런 것일까 싶었다. 절로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는 경험이었다.
우리는 입수할때 숨을 참고 발차기에 온 마음을 쏟는다. 그 어떤 생각이 들어올 겨를도 허용되지 않는다. 워터파크에서 커다란 미끄럼틀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경험 역시 마찬가지 였다. 이 공포와 스릴에만 집중하는 단 몇분의 경험으로 마음 속에 있었던 무거운 고민들도 쑤욱- 하고 함께 내려가버렸다.
수영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한톨 가벼워진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