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K(Startup Women In Korea) 컨퍼런스
평소 ‘여성’을 주제로한 컨퍼런스에는 꼭 가려고 노력해오고 있다. 수많은 컨퍼런스들이 매일같이 쏟아지는 시대이지만 여성이 연사로 서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다가, 일이 아닌 '삶'에 대한 내용까지 들어볼 수 있는 자리는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회에서 여성 창업자나 여성 리더들의 숫자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고, 육아 부담을 더 많이 지게 되는 여성의 특성상 저녁이나 주말 시간을 컨퍼런스에 내어주기란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래서, 이런 컨퍼런스가 열릴때에는 조용히 뒷자리에 앉아 여자의 삶에 대해 들어본다. 아이 점심 차려놓고 택시로 달려가면서 화장하는 숨가쁜 준비 과정이 필요하지만, 자리에 앉는 순간만큼은 이야기에 집중한다.
지난 8월 31일, 스여일삶(스타트업 여성의 일과 삶)에서 주최한 SWIK(Startup Women In Korea) 컨퍼런스가 역삼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렸다. 스타트업 여성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이다. 스타트업 여성들과 창업가, 투자자, 관계사 사이드에 있는 다양한 여성들이 참여해 서로가 왜 더 많이 모이고 서로 힘을 북돋아야 하는지, 어떻게 더 나은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지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주요 연사로는 페이스북 커뮤니티 파트너쉽팀 최민선 이사, 베이스인베스트먼트 김승현 이사, 마켓디자이너스 CCO 최경희 이사, 넉아웃 박세인 대표, 서울언니들 박샛별 대표, 구글 조윤민 리더 등이 참여했다. 스타트업 생태계 안에서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던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리해보았다.
내 시간의 80%는 오늘을 사는 나,
나머지 중 각 10%는 3년 후의 나,
10년 후의 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
그 20%가 나의 스페셜티를 강화시킨다.
초기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보면 자연스레 ‘제너럴리스트’가 되라는 요구를 많이 받는다. 대기업에서 일할 때는 한가지 업무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 ‘덫’처럼 느껴지곤 했는데, 스타트업에서는 참 다양한 일을 하게 된다. 대기업으로 치환하자면, ‘총무팀 막내 신입사원’이라도 경험하지 않았을것 같은 일들이 매일 슬랙을 통해 전달된다. 그동안 눈물 머금고 쌓아온 커리어가 정체될 때 공포에 가까운 자괴감도 맛볼 수 있다.
명함을 만들기 위해 디자이너에게 명함 디자인을 의뢰해 직접 인쇄소를 찾는다던가, 명함에 회사 전화번호를 넣기 위해 통신사에 연락해 전화를 개통하는 일을 맡기도 한다. 컴퓨터와 전화기를 구입하는 일을 직접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무슨 비전을 가지고 이곳에 와있는지 고민과 방황도 하게 된다.
월급 노동자들이 경력개발과 함께 자신만의 스페셜티를 개발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이상적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큰 난관이 뒷따른다. 자기 커리어를 악착같이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 상사를 말로 구어 삶는 달변가, 뒤로 부업을 해도 모르는 포커페이스형 사람, 일의 Go와 Stop을 자유자재로 선택 할수 있는 재력가라면 현실 개척이 조금 쉬울지 모른다. 이도 저도 아닌 나같은 평범한 직장인에게 경력과 스페셜티 개발은 참 어려운 일로만 느껴진다.
‘내 스페셜티는 무엇이었던가….’하는 정체성 혼란이 오더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것 같다. 스타트업의 성장 속도가 빠르다면 정체성의 혼돈을 겪고 있는 사이 회사로부터 도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회사가 망하면 취업 시장으로의 재진입도 어렵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너럴리스트가 되어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은 나처럼 스테이지 1에 있는 스타트업 재직자라면 많이 고민하는 문제인것 같다. 실제로 관련한 질문이 있었다.
현장질문1
하루 아침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것이 아니다. 본인 역시 정부, 글로벌, 테크, 공무 등 다양한 업계에서 일했고 그 중에서 글로벌 커뮤니케이션과 테크라는 분야를 택한 것이다. - 페이스북 최민선 이사
나의 경우, 스페셜리스트가 되었다가 제너럴리스트가 되었다가 다시 스페셜리스트가 되었다. 내 시간의 80%는 오늘을 사는 나, 10%를 3년 뒤의 나, 나머지 10%를 10년 뒤의 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 그 20%가 나의 스페셜티를 강화하는 조건이 된다. 당장의 하는 일에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언젠가는 묵혀 놓은 양념이 특별한 맛을 내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의 ROI(return on investment)에는 도움이 안되지만 먼 미래에는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 마켓디자이너스 최경희 대표
나의 매력은 영하고 밀레니얼하고 시크한 것인데, 브랜드의 지속성을 생각하다 보면 그 정체성이 흔들리는 시간들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고객이 따라오게 하기 위해 내 자신도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 그 성장을 위한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항상 생각해보아야 한다. - 박세인 대표
내 안엔 여러가지 내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내 모습을 앞세워
내가 원하는 것들을 성취해야 한다
- 넉아웃 박세인 대표
일터에서의 ‘나’와 삶에서의 ‘나’에 대한 정체성의 고민을 하곤 한다. 회사에서는 오랫동안 필요한 존재로 자리매김 해왔지만 일타 밖에서의 나는 다양한 의무에 뒤범벅된채 살고 있다. 수많은 정체성과 수많은 허점 속에서 각 역할들이 통합되지 못한채 아우성이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동생
-누군가의 며느리
-누군가의 시동생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제자
-누군가의 선생님
-어느 학교의 학생
-어느 유치원의 학부모
다행스럽게도, 일과 삶이 각기 다른 춤을 추는 듯한 고민들에 대해 연사들도 모두 한번쯤 고민해본 듯했다. 완벽한 모습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는 것, 가까운 주변에선 배울수 없는 이야기를 책에서 배우고 또 배우는 것 등이 공통적인 대답이었다. 국내에는 여성리더십에 대한 책이 많지 않아 해외서적을 탐독했다는 경우도 많았다.
현장질문2.
나 역시 완벽하고 존경심을 얻는 멋진 대표가 되고 싶지만 그런 모습들이 가면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어떤 날에는 우울해 하는 모습도 내 안에 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대표로서의 모습 둘 다 나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든 ‘내가 사랑하는 내 모습’을 앞세워 내가 원하는 것들을 성취해야 한다. - 넉아웃 박세인 대표
주말에는 머리를 질끈 묶고 취미활동을 하러 간다. 주말에는 나 답게 사는 삶을 위해 스위치 온 앤 오프를 컨드롤 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신념에 반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 필요하다. 자기 삶의 영역을 나눠보고, 적어 보고, 시간을 회고하는 습관도 좋은 것 같다. -마켓디자이너스 최경희 이사
평소 나의 실수에 관대하지 못한 편이다. 실수를 많이 하는 편인데 움츠려 방어하는 모습에 가깝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나의 결정이 영향력을 가진다는 사실 때문에 '실수'에 대해 불가피하게 엄격해진 것이다. 실수하기 싫어 움츠려든 시간이 길어지면서, 실수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는 판국에 이르른 적이 있다. 도전 없인 성장할 수 없다는 명제를 뒤늦게 깨닫고 실수의 숫자만큼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수에는 배움과 성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번 컨퍼런스에서도 다시금 상기했다. 실수로 인한 고통을 또렷이 응시하며 가치를 찾아 앞으로 걸어나가야 한다는 것이 창업자들이 말하는 공통된 메세지였다.
현장질문3
내가 가치 있게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아는게 중요하다. '가치'는 지치는 순간에도 견딜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다. 오늘의 작은 성공이 내일의 커다란 성공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베스트인베스트먼트 김승현 이사
자기 자신을 지켜 가기 위해서 시행착오는 당연한 것이다. 자기 자신을 지켜 나가기 위해선 자신을 동기 부여할 수 있는 요소를 잘 파악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커리어를 길게 보고 돈, 사람, 일, 인정 등의 다양한 요소들 중에 자신이 동기부여 되는 항목을 잘 알아야 한다. - 페이스북 최민선 이사
실수를 할 경우, 자책하고 아파하는게 아니라 그것으로 성장해야 한다. 실패한 날에는 맘껏 울고 술도 마실 수 있지만, 인간이기에 일어날 수 있었던 일임을 빠르게 인정해야 한다. 조금만 슬퍼하고 실수로 인해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 - 넉아웃 박세인 대표
덧붙히는 말
익숙해져온 사회와 문화의 관성을 깨트리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노력이 필요한 일인것 같다. 여성들이 각자의 삶에서 목소리를 내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회는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비틀거리며 한걸음씩 걷는 일, 기록하고 연대하며 서로의 힘을 북돋는 일, 남성과 여성이 함께 윈윈할 수 있는 더 나은 방식에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란 생각을 한 날이었다.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이 의견을 내어주고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길 기대해본다.
ps. 아이의 식사를 챙기느랴 컨퍼런스의 앞부분과 맨뒷부분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로 안해 본의 아니게 누락된 내용이 많으니 참고해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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