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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시,냇물 27화

유언

詩,냇물_27

by 앤 셜Lee

만약에 말이야

네가 준비할 틈도 없이

내가 떠나버리는 날이 오면


그날 너와 내가 사랑하지 않아서

서로의 뒤통수를 노려보았거나

내가 너에게 미움을 샀거나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 여겨졌어도


그건 다 가짜였다고 여겨주길.

너를 사랑한 날이 더 많았음을 알아주길

잊지 말기를

어제 내가 미워한 것은

너의 뒤집힌 양말에 물든 흙가루였고

어제 내가 흘긴 눈은

네 머리카락을 흔들고 가는

작은 날벌레를 향한 것이었음을.


다 잊어주기를.

너를 고되게 했을 나의 말도.

다만 기억해 주기를.

네가 옆에 없어 너에게 말하지 못하고

너를 떠나 미안하다고.

하지만 나는 네가 아는 거기에 있다고.

그러니 잠깐 슬퍼하고

잠기지 말라고.

우린 다시 만날 거라고.



불안도가 높은 사람일까 나는.

가진 것 없이 살다가 생명을 품어보고

시간을 들이는 것이 사랑임을 알게 되니

너를 볼 수 없는 나의 시간이 힘겨웠다.

그래서 아이와 어른의 사이시간에

청소년, 사춘기 등을 허락하셔서

정신 차려보니 다 큰 듯한 너의 등짝이 보였다.


너를 사랑한 나의 시간을 말해주고 싶어서

몰래몰래 편지를 쓴다.

쓰다 보니 유서가 되어버린다.

너에게 남길 유산은 사랑뿐인데.

주섬주섬 너의 첫돌 반지를 찾아 또 한 줄을 쓴다.


더 줄 것이 없나.

이불장 쌓인 이불에 손을 넣고 휘저어본다.

그 옛날 나의 엄마처럼.

거기 그 자리에 두툼한 무언가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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