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

그림책 ㅣ TEACUP

by 핀다


나는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이 불편하다. 다친 것이 아니다. 작은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하다. 쉽사리 잠들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다른 손가락으로 네 번째 손가락을 감싸도 소용이 없다. 나는 밤이 되면 못 자겠다 칭얼대는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에 머리칼을 내주어야 한다. 내 머리칼도 아닌 다른 사람의 머리칼을. 어렸을 때는 엄마의 머리칼을, 결혼하기 전까지는 같이 자던 여동생의 머리칼을 네 번째 손가락에 둘렀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머리칼을 쥐고 잠에 들었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이제 좀 쉬려는 데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린다는 것은 대단히 귀찮고 성가신 일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엄마가 홱 돌아누워 얼굴을 마주 보고 자야 했을 때는 서운했다. 자책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다 컸는데 이게 무슨 부끄러운 습관 인가 싶어 이제 정말 뿌리를 뽑아야 하겠다는 생각에 손가락을 꾹꾹 눌러보기도 하고, 내 머리칼을 쥐어 보기도 하고, 깍지도 껴 봤지만 다 소용이 없었다. 잠이 아무리 쓰나미 격으로 몰려와도 네 번째 손가락을 어쩔 줄 몰라하며 몇십 분을 보내다가 결국에는 옆사람의 머리칼을 가만히 쥐고 스르륵 잠드는 것이었다. 잠과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중독이 심하다 보니 나의 모든 성감대가 네 번째 손가락에 모여 있어 이 습관을 끊어 버리기가 이토록 어려운 건 아닌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채워도 채워도 차지 않는 구멍 난 독을 이고 다닌달까.


뭐 대단한 거라고 그동안 엄마가 이야기해 주지 않아,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다. 아마 부모 마음에 안쓰러운 면이 있었나 보다. 놀랍게도 내가 머리칼을 쥐고 자는 습관을 가지게 된 것은 3살 때부터였다고 한다. 동생이 태어난 후 젖먹이 동생한테 엄마 품을 내주고 나는 엄마 등 뒤에 붙어 자야 했는데, 그때부터 엄마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다가 잠이 들었다고 한다. 잠들기 전 엄마의 품을 대신해 준 엄마의 머리칼. 나에게 사람의 머리칼은 머리를 보호해주는 기능, 이성을 유혹하거나 개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신체부위를 넘어서 안전하게 꿈의 세계로 건너가는 다리가 된 것이다. 잠이 밀려와도 차마 가지 못하고 서성이며 칭얼대는 아기를 엄마가 자장가로 어르고 토닥이는 것처럼 내게 머리칼은 그런 다리였다.


아주 작은 결핍이 끈질기게 우리를 괴롭히기도 한다. 오죽하면 다 큰 엄마가 숱이 얼마 되지도 않는 5살 딸아이의 머리칼을 쥐고 잠에 드니 말이다. 딸은 고맙게도 귀찮아하거나 엄마 손을 뿌리치지 않는다. 간지럽다고 깔깔대고 웃다가 “엄마, 왜 내 머리카락 자꾸 만져?”라고 정말 궁금해서 물을 뿐이다. 결국에는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 주위에만 머무는 다른 성격의 공기를 없애야 할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누군가를 온전히 믿기에 나를 전부 내려놓으며 쉬었던 기억이 있고,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은 쉬이 채워지지 않는다. 그렇게 오늘 밤도 무의식의 세계로 가볍게 건너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어쩌면 끈질긴 습관 덕에 다리를 잃지 않은 나는 운이 좋은 것인지도 모른다.




Rebecca Young이 글을 쓰고, Matt Ottley가 그림을 그린 아름다운 그림책 'TEACUP'에는 한 소년의 여정이 영화처럼 펼쳐져 있다. 고향에서 내쫓기듯 떠나 새로운 터전을 찾아 정착해야 하는 난민들의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지만, 내게는 피할 수 없는 성장과정을 겪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TEACUP> Rebecca Young, Matt Ottley / Dial


소년은 집을 떠나야 했다. 집이라 부를 수 있는 다른 곳을 찾기 위해 소년은 가방 안에 책 한 권과, 물통, 담요를 넣고 떠날 채비를 한다. 소년이 놀곤 했던 곳의 흙을 한 줌 담은 찻잔도 잊지 않았다. 작은 배 한 척에 의지해 끝도 없는 바다를 여행하는 길은 녹록지 않다. 잔잔한 파도는 자장가처럼 다정하기도 하지만 위협적인 파도가 덮치려 할 때는 찻잔을 꼭 끌어안고 버텨야만 한다. 바다는 눈이 부실 정도로 환히 빛나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별빛이 간절할 만큼 어둡기도 하다. 고래들이 서로를 부르는 소리에 차를 마시라고 소년을 부르곤 했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여행을 멈출 수 없다. 어느 날, 찻잔 속의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된다. 소년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기도 하고, 사과로 배를 채우고, 가지에 올라 조금 더 멀리 내다본다. 가까스로 육지에 도착한 소년은 나무를 땅에 옮겨 심는다. 그곳에서 소년은 한 소녀를 만난다. 소녀는 배나무를 키워낸 후 깨져버린 작은 에그 컵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소년과 소녀의 깨진 찻잔과 에그 컵, 그들의 사과 한 알, 배 한 알, 그리고 아기의 발자국이 찍힌 모래를 보여준다.

20191117_171026.jpg <TEACUP> Rebecca Young, Matt Ottley / Dial


아이가 4살 때의 일이다. 그림책 5권을 다 읽을 때까지도 눈이 또랑또랑하더니 어느새 눈꺼풀이 반쯤 감긴 채로 뒤척거리고 있었다. 그때 아이가 말했다. "지켜줘."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응?" 아이는 내 팔을 당겨 자기의 가슴팍으로 가져가더니 살며시 놓았다. "지켜줘." 순식간에 내 안이 따뜻한 무엇인가로 가득히 차올랐다. 가르쳐주지도 않은 말의 의미를 어떻게 알았는지 신기하기도 했고, 늘 어김없이 찾아오는 잠이 무섭지만 엄마가 지켜준다면 괜찮을 거라는 마음이 귀여웠다. 엄마라는 나의 존재 자체가 아이에게는 완전한 안전함을 보장해준다니. 어쩌면 그 순수한 믿음이 깨질 때부터 우리의 마음속에 불안이 자라나는 것이 아닐까. 그 불안이 모든 감정의 시초는 아닐까. 엄마의 보호막이 그리 튼튼하지 않다고 깨닫게 되는 그 시점부터 우리는 엄마를 떠나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법을 배워 나가야 한다.


<TEACUP> Rebecca Young, Matt Ottley / Dial


한없이 그리운 단단한 엄마의 땅이지만 우리는 새로운 땅을 찾기 위해 배에 몸을 싣고, 엄마의 흙이 담긴 잔을 깨야만 나무로 자랄 수 있다. 작가는 흔들리는 파도 위에서 불안, 공포, 외로움을 온몸으로 겪으며 비로소 엄마라는 한 줌 흙에서 자신만의 나무를 길러낸 우리가 종국에는 다시 집이라 불릴 수 있는 단단한 땅 위에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 그리고 소년과 소녀가 그랬듯, 그들의 아기도 노를 저을 수 있을 만큼 크고 나면 떠날 채비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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