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해진 내 인생

by 핀다

참을 수 없는 먼지의 무게

여름의 끝자락, 삽상한 가을바람에 모두 소풍을 떠났을 화창한 오후. 마른 얼굴로 슬리퍼를 끈다. 지 이 이 이익. 지 이 이 이익. 버석한 몸을 벗기는 광선을 한번 흘기고는 나무 옆 의자에 털썩 앉는다. 가냘픈 다리로 선을 붙잡고 언제든 날아갈 듯한 새 말고, 코끼리처럼 털썩. 두 무릎은 가볍다 못해 튀어나왔는데 입꼬리만 무겁다. 그래도 이렇게 초록을 보고 있으면 머리에 우주비행사 헬멧을 쓴 채로 다시 물속으로 내던져지지는 않겠지. 한 번의 몸부림도 없는, 귀가 먹먹하고 물기 없는 침잠. 단단하게 땅에 뿌리내린 나무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지. 가렵다. 산 속도 아니고 놀이터 옆에 무슨 벌레들이 이렇게 많이 사는지 모르겠다. 그래, 오늘은 다 물어뜯어라. 테이블 위에 쓰레기, 먼지뭉치도 무슨 상관이랴. 먼지뭉치에 다리가 달렸다. 움직인다. 나뭇가지로 위장하는 나무벌레나 온갖 것들을 몸에 붙인 바다생물은 봤어도, 먼지뭉치를 등 위에 이고 다니는 벌레는 처음이다. 먼지를 눈덩이 굴리듯 만들었는지 크고 둥글게 잘도 만들었다. 실처럼 가느다란 다리는 걷는 건지 바닥에 놓아보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보일 듯 말 듯하다. 언젠가 비에 젖어 오들오들 떠는 강아지의 모습이 꼭 자기와 같았다고 말했던 남자가 있다. 턱을 들고 하얀 이를 다 드러내고 웃는 사람이 무슨 청승인가 싶었었다. 그런데 이름을 알 수 없는 저 먼지벌레가 자꾸 나 같다. 광활한 우주 속 아주 아주 작은 존재. 천근만근 먼지를 이고 다니는 먼지벌레.


납작해진 내 인생

2주일째 집안 정리 중이었다. “왜 정리한 걸 다시 또 정리해?” 남편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다시 제대로 하려고.” 난 온 집안의 물건을 꺼내 버릴 것은 버리고, 남길 것은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꺼내고, 버리고, 정리했다. 미니멀리즘이라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며 내린 근사한 결단 같은 것이 아니었다. 늘 가던 길에 갑자기 커다란 바위가 놓여 어쩔 줄 몰라하는 개미처럼 나는 사방으로 정신 사납게 움직이고 있었다. 정리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급한 일도, 해야만 하는 일도,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지만 나는 시간과 노력과 정신을 쏟아부었다.


거실 벽면 한쪽을 꽉 채운 책장의 모든 책을 꺼냈다. 영화 ‘나비잠’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여주인공이 후배에게 자신의 책을 색깔별로 진열해달라고 부탁한 그 방식대로 다시 정리했다. 옷장의 옷들을 하나하나 다 외우기라도 하려는 듯 꺼내서 다시 걸고, 꺼내서 다시 개어 넣었다. 그동안 직장에 다니느라 너무 바빴으니 다들 나에게 여행이라도 가고, 새로운 취미를 가져보라고, 맛집도 가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친구도 만나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새벽에 눈 떠서 정신없이 출근하고 퇴근하면 아이를 챙기다 끝나는 것이 나의 하루였는데 이렇게 집에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을 구경할 수 있는 시간도 있으니 그게 맞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끊임없이 정리만 했다. 창밖의 소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고, 잠시 방바닥에 가만히 앉아있는 일은 있었지만 이내 또 정리를 시작했다. 나는 왜 그렇게 끝없이 정리를 했을까. 지금이라면 그토록 소중한 노동력을 낭비하다니 혀를 내둘렀을 그 일을 왜 해야만 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기다린다는 것은 내게 너무 힘든 일이었다. 뭐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내 인생, 별 것 없어 보이는 내 인생이었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내가 점점 쪼그라들어 아예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가 탁탁 털어 반듯하게 끼워 넣은 침대 시트와 각 살려 접어 놓은 이불은 내 손길이 닿은 그 자리 그대로 정돈되어 있었다. 엉망인 내 삶이 가지런해지기를, 안개가 걷히기를. 뭐 하나쯤은 내가 바라는 대로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자 위안이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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