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눈에는 종이 위에 갇힌 글자처럼 박제된 천재의 울림이 들리지 않았다.
나이테 박히고 삶의 고단함으로
어깨 굽어가던 어느 날 불쑥,
나즈막이 읊조리는 낯익은 여배우의 목소리 끝에서
차가운 잉크는 따뜻한 피로 흘러든다.
소리 없던 글자들이 호흡의 끝에 매달려
피 한 방울이 되고, 떨림은 눈앞에서 빛을 뿜는다.
무참하게 돋아나려 발버둥 치던 그 절규가
세상의 무게에 묻히지 않으려는 간절한 파닥임이
이제야 내 굽은 뼈마디를 타고 돈다.
그 절절한 파닥임이 뼈마디를 타고 돌수록,
“날개야, 돋지 마라!”
몸 안에서 꿈틀대다 멈춰버릴
차라리 돋아나지 않아 다행인 불치덩어리.
환청 같은 날개는 한때 치열한 염원이었으나
언제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버릴 허공의 날개짓이라면.
기다리고 기다려도
끝내 푸른 날개는 돋지 않고
등 뒤로는 시린 공기만 머문다.
그러나, 뜨거워진 심장은 이내 말한다.
“날개야, 돋아라!”
자유를 노래하는 날개를.
허나 아무리 더듬어 보아도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투명한 허공의 날개라면
이제 나는 이 땅에 굳건히 발을 디딘다.
날개 없는 이 삶이 진실을 보여주니
닿을 수 없는 꿈보다
딛고 선 현실의 발바닥이 더 아려온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이제 안다.
소리 없는 문장보다
소리 내는 마음이 더 멀리 갈 수 있음을.
그리고 그 치열한 염원들은
내 안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쉰다.
날개가 없어도,
나는 여전히 나인 채로.
오디오북으로 다시 마주한 이상의 『날개』는 활자로 읽던 어린 날의 나와 삶의 나이테가 박힌 지금의 나를 다시 이어주었다.
'날개야 돋아라'와 '날개야 돋지 마라' 사이를 방황하며 현실의 발바닥이 아려오는 진실을 마주하기까지, 내 안에서 일어난 작은 폭풍을 이 시에 담아 보았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날개를 애써 찾는 건 아닐까. 당신의 날개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당신 안에 숨 쉬는가.
사진 출처 :pixa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