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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는 마음의 날개

by 송단아


소녀의 눈에는 종이 위에 갇힌 글자처럼 박제된 천재의 울림이 들리지 않았다.


나이테 박히고 삶의 고단함으로
어깨 굽어가던 어느 날 불쑥,
나즈막이 읊조리는 낯익은 여배우의 목소리 끝에서
차가운 잉크는 따뜻한 피로 흘러든다.
소리 없던 글자들이 호흡의 끝에 매달려
피 한 방울이 되고, 떨림은 눈앞에서 빛을 뿜는다.


무참하게 돋아나려 발버둥 치던 그 절규가
세상의 무게에 묻히지 않으려는 간절한 파닥임이
이제야 내 굽은 뼈마디를 타고 돈다.
그 절절한 파닥임이 뼈마디를 타고 돌수록,


“날개야, 돋지 마라!”
몸 안에서 꿈틀대다 멈춰버릴
차라리 돋아나지 않아 다행인 불치덩어리.
환청 같은 날개는 한때 치열한 염원이었으나
언제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버릴 허공의 날개짓이라면.


기다리고 기다려도
끝내 푸른 날개는 돋지 않고
등 뒤로는 시린 공기만 머문다.


그러나, 뜨거워진 심장은 이내 말한다.


“날개야, 돋아라!”
자유를 노래하는 날개를.
허나 아무리 더듬어 보아도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투명한 허공의 날개라면
이제 나는 이 땅에 굳건히 발을 디딘다.


날개 없는 이 삶이 진실을 보여주니
닿을 수 없는 꿈보다
딛고 선 현실의 발바닥이 더 아려온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이제 안다.
소리 없는 문장보다
소리 내는 마음이 더 멀리 갈 수 있음을.
그리고 그 치열한 염원들은
내 안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쉰다.


날개가 없어도,
나는 여전히 나인 채로.


rain-5124097_1280.jpg



오디오북으로 다시 마주한 이상의 『날개』는 활자로 읽던 어린 날의 나와 삶의 나이테가 박힌 지금의 나를 다시 이어주었다.

'날개야 돋아라'와 '날개야 돋지 마라' 사이를 방황하며 현실의 발바닥이 아려오는 진실을 마주하기까지, 내 안에서 일어난 작은 폭풍을 이 시에 담아 보았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날개를 애써 찾는 건 아닐까. 당신의 날개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당신 안에 숨 쉬는가.


사진 출처 :pixa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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