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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현 Jan 30. 2022

인간 논픽션이 되고 싶다.

나를 미치게 만드는 브랜드 - '논픽션' 편


우선 나는 과소비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물건 하나를 살 때에는 몇 번을 고민하고 최저가를 검색하고 후기도 찾아보고

아무튼 재고 따져서 사는 '스마트 컨슈머'임을 자부한다.

그래서 물건을 하나 사면 꽤 오래 아껴서 쓰는 편이다.

충동구매하기 딱 좋은 카테고리인 옷을 살 때에도 그렇고, 화장품을 살 때에도 그렇다.


그런데 이토록 이성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나를 단번에 무장해제시켜버리는 브랜드를 만날 때가 있다.

우연히 그런 브랜드를 만나게 되면 처음에는 애써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한다.

입덕 부정기를 거치는 것이다.

그러다 또 우연히 누군가 그 브랜드의 제품을 사용하는 걸 보거나, 나에게 한 번 써보라며 권해주면 나는 바로 사랑에 빠져버린다.

그러고 나면 그 브랜드가 너무 좋아서 홈페이지를 샅샅이 읽고, 음미하고,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모두 좋아요를 누른다.

당연히 장바구니 가득 물건을 담고 결제를 한다.

이렇게 나를 미치게 만드는 브랜드를 만나면 마케터로서, 소비자로서 너무너무 행복하다.


최근에 빠진 브랜드는 '논픽션(nonfiction)'이다.

이미 론칭 때부터 지켜봐 온 브랜드라서, 마케팅도 잘하고 브랜딩도 잘하는 괜찮은 브랜드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 뜬금없이, 샤워를 하다가 갑자기 논픽션 바디워시를 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쓰는 논픽션 핸드크림을 몇 번 빌려 써본 적이 있는데, 그 향기를 온몸에 휘감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들었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서 논픽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천천히 브랜드 설명과 카피들을 읽는데, 정신이 몽롱해졌다.


'우리는 넘쳐나는 이미지와 타인의 목소리, 소셜미디어가 쏟아내는 어지러운 잣대와 평가에 잠식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실과 거짓,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질수록 꾸밈없는 얼굴과 담담한 목소리는 내면의 틈새 속으로 깊이 숨어듭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어쩌면, 심오한 깨달음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나만을 위한 소박한 *리추얼을 만드는 것. (리추얼: ritual. 내면을 마주 보는 일상의 의식)

어떤 목소리에도 휩쓸리지 않고 나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는 경험.

논픽션의 이야기는 바로 그러한 순간으로부터 시작됩니다.'

- 출처: 논픽션 공식 홈페이지


브랜드 소개글을 멋지게 쓰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멋진 말이 뜬구름이 되지 않도록 제품, 서비스에 녹여내서 고객들의 피부에 닿도록 경험시키는 것이 어렵다.

논픽션은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제품, 디자인, 패키지 여기저기에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제품 썸네일에서 조금 멀어지면 상품 이미지가 블러 처리되고, 다시 가까이 가면 선명하게 보이는 반응형 UI를

제품 패키지에 트레이싱지를 덮어서 'uncover your story'라는 문구와 함께 연결시킨 부분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질 좋은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다는 메시지를 넘어서,

이 브랜드를 소비하는 모든 과정이 즐거운 경험이 되도록 만드는 이 브랜드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핸드크림, 향수, 바디워시, 바디크림, 립밤을 구매해서 일주일 넘게 사용해보고 있는데,

제품도 좋고, 향기도 좋고, 네이밍을 음미할수록 좋다.


'일상 속 작은 의식'이라는 뜻의 '리추얼'을 내세우는 브랜드가 많이 보이는 요즈음.

논픽션만큼 리추얼을 쉽고 합리적인 가격에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게 만든 브랜드가 또 있을까 싶다.

르 라보도 좋고, 이솝도 좋고, 불리도 좋지만, 다 써보고 나니 나에겐 논픽션이 딱이다.

인간 논픽션이 되고 싶은 지경이다.

원래 초록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논픽션 로고 디자인이 너무 좋아서인지 내 심경에 변화가 생겨서인지,

평소라면 절대 사지 않았을 초록색 맨투맨을 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하나의 브랜드가 내 마음속에 들어오면, 내 취향이 바뀌고, 소비성향도 바뀔 수 있구나.

새삼 브랜드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는 것을 느낀다.


물론 논픽션에게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상자와 포장재가 좀 더 환경친화적인 방식으로 바뀌어도 좋을 것 같다.

재구매 텀이 짧은 바디워시와 바디크림은 아비브처럼 리필용 벌크를 따로 팔아도 좋겠다.

꼭 저렴한 가격으로 사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낭비되는 플라스틱과 부자재들이 조금 아깝게 느껴진다.

그 부분만 보완한다면 정말 완벽할 것 같다.


내가 생각한 논픽션의 키워드는 '선물'이다.

나에게든, 친구에게든 선물하고 싶은 브랜드이다.

그래서인지 '카카오톡 선물하기'에 입점되어 있고, 선물하기 좋게 가격대 별로 다양한 구성으로 짜여있다.

이 부분도 참 영리하게 느껴지고 마음에 든다.

얼마 전 친구의 생일에 논픽션 핸드&립 케어 세트를 선물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이 브랜드를 즐기고 나눌 수 있어서 참 기쁘다.

논픽션의 팬으로서 앞으로 이 브랜드가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고,

잘하는 부분은 계속 발전시키면서 더욱 멋지게 성장하는 모습을 오래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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