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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현 Feb 15. 2022

‘워커홀릭’이라는 프레이밍에 대하여

솔직히 이거 욕 맞지?


“너 진짜 워커홀릭이다!”

이런 말을 예전부터 많이 들어왔다.


나는 일을 열심히 한다. 시키지 않아도 하고, 시키면 거기에 더해서 일을 벌이고, 그걸 또 잘 해내려고 노력한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그런 건가 생각해봤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냥 일을 잘 해냈을 때의 그 성취감과 뿌듯함이 좋다. 내가 사회인으로서 그래도 제대로 밥은 벌어먹고 살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든다.


그래서 타인과의 경쟁이나 나를 향한 비난에 의연한 편이다. 이기고 지는 것은 나에게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나에 대한 평판에 대해서도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내 관심사는 오로지 나의 ‘일’과 ‘성과’ 그 자체에 있다.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근로계약서에 적힌 근무 시간보다 일을 많이 하고, 성과를 많이 내려고 하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나의 모습이 타인에게는 ‘워커홀릭’으로 비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말을 들을 때는 그냥 ‘남들이 보기에 내가 일을 되게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나 보다’ 정도로 생각했다. 나를 향한 이 단어가 진정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최근에 옛 동료에게서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내가 열심히 잘 사는 모습을 아니꼽게 보는 사람이 몇 있다고.


물론 남들이 나에 대해서 얼마든지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함께 동고동락했던 사람들이, 내가 열심히 잘 사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이었다. 나와 우리는 예전에도, 지금도 그냥 열심히 현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인데. 그 모습이 도대체 왜 아니꼬운 걸까?


그렇게 내가 수도 없이 들어왔던 ‘워커홀릭’이라는 단어에 대해 곱씹어보게 되었다.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 그것에 몇 가지에 감정이 섞여있었다. 혐오감, 재수 없음, 미움, 질투, 불쌍함, 그리고 여기에 약간의 부러움이 섞인 말인 것 같다.


좀 억울하다. 나는 워커홀릭이 아니다. 마냥 일에만 미쳐서 다른 건 다 등한시하고 내 모든 가치의 기준을 일에만 두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나는 노는 거 엄청 좋아한다. 드라마 보고, 영화 보고, 누워서 애니팡하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수다 떠는걸 굉장히 좋아한다.

그저 생존을 위해서 적당히 놀고 일을 좀 더 열심히 하는 것뿐이다.


누군가 나에 대해 정당한 이유로 비난을 한다면,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 오히려 그 사람에게 고맙다. 부족한 나에게 피드백을 주었으니까. 나는 그걸 성장의 기회로 삼아서 더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의도가 아니라, 대충 워커홀릭이라는 말로 나를 내려치는 평가는 사절이다.


‘워커홀릭’이라는 단어는 진정 나를 ‘일에만 미쳐있는 재수 없는 인간’으로 프레이밍 하는 혐오발언이었던 걸까? 정말 그런 거라면,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걸까.


소설가 김훈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친구들아, 밥벌이엔 답이 없다. 우리는 그저 끌어안고 울고 싶다.’


나와 우리는 그저 생존을 위해서, 개인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서로 아니꼬워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등을 토닥여주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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