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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란 감정의 실용적 가치에 대하여

잘만 쓰면 최고의 연료가 되기도 하는, '불안 활용법'

by 최지현

나는 스스로가 '불안'이라는 연료를 태우며 달리는 자동차 같다.

대게 불안이란 감정은 없애야 하는 것, 잠재워야 하는 감정이라 여기지만 사실 불안은 꽤나 괜찮은 연료다. 사람은 콩알만 한 불안으로도 하루를 몽땅 불태우며 뜨겁게 살아갈 수 있으니까.


다만 이 강력하고도 생존에 꼭 필요한 불안이란 감정을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잠식되지 않도록, 기어봉과 운전대를 꼭 쥐고 '불안이란 이름의 전차'를 운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사람마다 동작하는 메커니즘도, 연비도 저마다 달라서, 스스로가 자신의 '불안'에 대해 메타적으로 인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불안을 크게 3단계로 나눠서 관리한다.


1단계는 약간 똥줄이 타고, 그걸 안 하면 안 될 것 같고, 자려고 누우면 자꾸 생각나는 정도의 불안이다. 이것은 내가 나에게 신호등 역할을 해주는 불안이다. 멈추거나, 기다리거나, 전진하라고. 그 의사결정을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하라는 신호라고 받아들인다.


2단계는, '나도 불안한데 주변에서도 같이 걱정하는' 단계의 불안이다. 특히 내가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보다 더 호들갑 떨 때이다. 이럴 땐 깊이 있는 고찰이 필요하다. 나는 보통 2단계의 불안을 육체노동과 함께 음미해 본다. 집안일을 몇 시간 동안 미친 듯이 하거나 헬스장에 가서 평소보다 2배로 운동한다. 육체노동 후에 개운해지고 불안이 사라진다면, 그냥 1단계의 불안 정도로 내려버리면 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차가운 이성이 고개를 들고 내가 미처 똑바로 보지 않고 흐린 눈 하고 있던 것들을 아주 선명하게 보려고 노력한다. 그럼 용기 있게 그것들을 직시하고, 단단해진 내 몸으로 해야 할 일들을 그냥 해버린다.


마지막 3단계는 몸에 이상이 오는 불안이다. 나는 공황장애를 안고 살아가기 때문에 이럴 때 나의 몸 상태를 잘 살펴야 한다. 약을 먹거나, 강제로 나를 쉬게끔 한다. 이런 종류의 불안은 내가 스스로를 다치게 하기도 한다. 과하게 먹고 다 토한다거나, 과하게 자서 할 일을 못한다거나. 어쩔 땐 원인 모를 몸의 통증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 자신에게 해서는 안 될, 진심도 아니고 쓸 데도 없는 비난의 말을 스스로 퍼붓기도 한다. 이럴 땐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바로 병원에 가거나, 명상을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많은 연구들에서
'지능이 높을수록 불안을 더 잘 느낀다'라고 한다.

우리의 뇌가 과거와 미래의 사건들을 더 자세히 생각하고 시뮬레이션할 수 있어서, 더 강하게 반추하고 그것이 과한 걱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혹시라도 너무 불안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라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내가 너무 똑똑해서 그런 거야. 아, 이제 그만 불안해하고 해야 할 일을 하자."

대부분의 불안은 1-2단계에서는 모두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3단계는 병원 가서 약 받아오면 된다.


이 드넓은 우주를 상상해 보자. 끝없이 펼쳐진 장엄한 우주 속에서, 먼지보다도 작은 미세한 존재인 내가, 아주 잠시나마 빛나는 순간. 그것이 바로 '나의 불안을 스스로 고찰하고 이겨낼 때'라고 생각한다. 내 삶 속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불안들 속에서 잠식되지 않고, 오히려 연료로 써버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기 진정한 극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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