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야 할 사람을 자르지 않는 것
'잘라야 할 사람을 자르지 못하는 것'이 대표들의 대표적인 직무유기인 이유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리더십을 시험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조직을 하나의 유기체로 본다면, 대표는 그 유기체의 면역시스템과 같다. 건강에 해로운 요소들을 식별하고 제거하여 전체의 건강을 지키는 역할이다.
스타트업은 하나의 유기체와 같다. 건강한 몸이 신진대사를 통해 필요한 영양분은 흡수하고 독소는 배출하듯이, 건강한 조직도 마찬가지다. 성과를 내는 인재는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조직에 해가 되는 요소는 과감하게 제거해야 한다. 특히 작은 조직일수록 각 구성원의 역할이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이런 신진대사가 더욱 중요하다.
파레토 법칙에 대해 익히 들어 알 것이다. 80:20 법칙이라고도 하는데, 조직 내 성과의 80%는 20%의 인력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회사에서도 실제로 일 돌아가게 만드는 건 소수고, 나머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아무리 상위 20%가 나머지 80%를 끌고 가는 것이 인간 사회라고는 하지만, 적어도 작은 조직의 스타트업은 달라야 한다. 작은 조직일수록 인재밀도가 높아야 살아남는다. 대기업처럼 여유 인력을 둘 수도 없고, 비효율을 감당할 여력도 없으니까. 그런 면에서, 스타트업 대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잘라야 할 사람은 자르고, 필요한 인재는 확실하게 잡아두는' HR management이다.
그런데 말은 쉽다. 정작 현실에서는 많은 대표들이 이 HR management의 절반, 특히 '잘라야 할 사람을 자르는' 부분을 회피한다. 경영진 책상 위에는 매일 수많은 결정들이 올라오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미루고 싶고, 가장 피하고 싶은 게 바로 이거다. 이 어려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대표들의 가장 치명적인 직무유기다. 조직의 건강성과 다른 구성원들의 사기, 그리고 회사의 미래가 이 한 번의 어려운 결정에 달려있을 때가 있으니까.
왜 자르지 못하는가
먼저 이해해야 할 건, 좋은 리더일수록 사람을 자르는 일을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숫자로 사람을 보지 않으니까. 그 사람의 가정사정도 알고, 그동안의 노력도 봐왔고, 개인적인 관계도 형성되어 있다.
"저 사람도 가정이 있는데...", "그래도 회사에 10년이나 다녔는데..."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인간적인 리더일수록 이런 고민은 더 깊어진다.
여기에 현실적인 두려움도 겹친다. 슬프게도 한국에서는 이런 결정을 내리면 온갖 부작용이 따라온다는 거다. 노동 분쟁 일어날 수도 있고, 다른 직원들 불안해할 수도 있고, 언론에 나쁜 회사로 찍힐 수도 있다.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이라는 말만 나와도 벌써 부정적인 이미지니까.
그래서 많은 대표들이 이런 생각을 한다. "그냥 좀 더 지켜보자. 혹시 나아질 수도 있고."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결정을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문제는 더 커진다.
조직 전체가 치르는 비용
하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는 직원, 조직 문화를 해치는 직원, 혹은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직원을 그대로 둘 때 조직 전체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생각보다 크다.
실제로 한 IT 회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팀에서 "리소스가 부족하다"며 다른 팀의 개발자를 차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회사는 성과를 잘 내는 팀에서 개발자를 빼서 그 팀에 지원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리소스 부족이 아니었다. 그 팀에는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성과를 내던 팀의 한 구성원이 대표에게 "저희 팀 일정도 빠듯합니다. 개발자를 다시 돌려주세요"라고 요청했을 때, 대표는 "왜 나한테 그래...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정확히 대표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근본적인 인재밀도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잘하는 팀에서 사람을 빼서 임시방편으로 땜질하려 했던 것이다.
이는 마치 몸의 한 부분이 제 기능을 못할 때, 건강한 다른 부분에서 영양분을 빼서 공급하는 것과 같다. 당장은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전체 유기체의 건강을 해치게 된다. 이런 임시방편적 해결책은 유기체 전체에 여러 문제를 동시에 일으킨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건강한 부분의 기능 저하다. 성과를 내던 팀의 사기가 떨어진다.
"우리가 열심히 해봤자 결국 다른 팀 뒷수습만 하게 되는구나"
라는 허탈감이 든다.
솔직히 말하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속마음은 이렇다. "왜 나만 이렇게 바보같이 열심히 하고 있지?" 야근하면서 일 마무리하고, 문제 생기면 해결책 찾고, 마감 임박하면 남아서 수습하는 건 항상 같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성과를 내지 못하는 동료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지원을 받는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대체 왜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성과주의가 무너지고, 전체적인 생산성이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변화를 거부하거나 새로운 도전을 회피하는 직원들이 그대로 남아있으면, 조직 전체의 변화 속도가 느려진다. 마치 독소가 체내에 축적되어 신진대사를 방해하는 것처럼, 이들은 조직의 건강한 성장을 막는다.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이런 조직의 둔화가 치명적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직 구성원들은 리더가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인지 지켜보고 있다. 필요한 순간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리더를 보면, 다른 중요한 결정에서도 의구심을 갖게 된다. 특히 그 리더를 존경하고 좋아했던 직원이라면 실망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진짜 리더십은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것
건강한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성과와 책임이 분명해야 한다. 성과를 내는 사람이 인정받고,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책임을 지는 시스템이 있어야 다른 구성원들도 동기부여가 된다. 반대로 "어떻게 해도 별 차이 없다"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조직 전체가 나태해진다.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오면 미루지 말아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더 복잡해지고, 조직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커진다. 특히 팀장이나 중간관리자급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라면 더욱 신속한 결정이 필요하다. 그들의 영향력은 개인을 넘어 팀 전체, 나아가 조직 전체에 미치기 때문이다.
완벽한 리더는 없다. 모든 대표가 냉정하게 사람을 잘라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이건 내 문제가 아니야"라고 책임을 회피하는 건 안 된다. 조직의 인재밀도를 높이고, 각 구성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대표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느끼는 그 답답함과 허탈감은 정당하다. 열심히 하는데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 무능한 동료들 때문에 피해 보는 상황에 화가 나는 건 당연하다. 그건 당신이 예민해서가 아니라, 정말 문제가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잘라야 할 사람을 자르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한 명의 직원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리더의 자질과 조직의 미래, 그리고 그 안에서 진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이 시험에서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순간, 그 리더는 이미 답안지를 백지로 제출한 것과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