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돈은 상관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그런 사람치고 진실된 사람은 없더라고

by 최지현

여긴 내 공간이니까 일단 시원하게 외치고 시작하겠다.

돈은 중요해! 돈이 최고야! 돈은 많을수록 좋아!

솔직히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왜 돈얘기를 이토록 터부시 하는 걸까. 돈 좀 밝히면 속물취급을 하는 걸까. 모든 사람이 월급날만 기다리고, 부동산 정보와 주식 시세에 그렇게 관심이 많으면서 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본주의 사회다. 모든 관계가 교환으로 이뤄지는 시스템이다. 연인 관계에서도 "내가 주는 것 대비받는 게 적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고, 직장에서도 "내 시간과 노력의 대가"를 계산하게 된다. 친구 관계조차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보게 된다.


생각해 보면 '마음'도 결국 돈으로 표현되는 거다. 부모님께 용돈 드리는 것, 연인과의 데이트 비용, 아이 교육비. 모두 사랑을 돈으로 번역한 것들이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급여는 '당신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메시지고, 저임금은 '당신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뜻이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의 허상

'돈으론 행복을 살 수 없어.', '인생은 돈이 다가 아니야.', '돈이 중요한 게 아니야.'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의문이 든다. 돈으로 행복을 완전히 살 수는 없겠지만, 돈 없이 불행을 피할 수는 있나? 병원비 걱정하고, 학비 때문에 고민하고, 노후 준비에 불안해하는 건 뭔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살면서 "돈이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건 일종의 모순이다. 더 묘한 건, "저는 돈이 그렇게 중요한 사람은 아니라서요"라고 운을 떼는 사람들이다. 그럼 뭐가 중요한가 물어보면, "성장", "경험", "의미" 같은 추상적인 단어들이 나온다. 그런데 막상 계약 조건이 마음에 안 들면 "예산이 맞지 않아서"라며 발을 빼는 건 똑같다. 내 경험상 유독 '돈이 중요하지 않다'라고 강조하는 사람들 치고 진짜 돈에 무심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돈에 관심을 보이는 순간 '속물'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이상한 현상. 마치 돈 이야기만 꺼내면 '품위 있는 사람'에서 탈락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지만 현실에서 경제적 독립 없이는 진짜 선택의 자유도 제한된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나.


직장에서 만난 이중잣대들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이 직장이다. 급여나 대금 협상에서의 미묘한 반응들. 솔직하게 원하는 금액을 말하면 돌아오는 눈빛. 마치 내가 뭔가 '격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꺼낸 것처럼. "요즘 젊은 사람들은 너무 현실적이야", "돈보다 성장할 기회를 줄 테니까", "여기서 배우는 게 더 중요하지 않아?"

거래처 협상에서도 비슷하다. "저는 돈이 그렇게 중요한 사람은 아니라서요"라고 운을 떼면서 시작하는 사람들. 자신이 속물적이지 않은 고결한 사람이라는 걸 어필하려는 듯하다. 그런데 막상 예산이 마음에 안 들면 똑같이 발을 뺀다.


흥미로운 건 경영진의 논리다. 경영자에게 '이익 극대화'는 당연한 의무다. 수익이 곧 성과니까. 그런데 직원이 급여를 언급하면 갑자기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식으로 나온다. 당신의 돈이 중요한 만큼, 내 돈도 중요한 거 아닌가?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종종 상대방의 정당한 요구를 무력화시키는 도구로 쓰인다. 특히 권력관계에서 위에 있는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할 때는 더욱 그렇다.


돈은 선택의 자유를 준다.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당당하게 나갈 수 있는 배짱. 원하지 않는 결혼 생활을 끝낼 수 있는 용기. 아이를 언제 낳을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여유. 이 모든 것이 결국 '경제적 기반'에서 나온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는 특권이다. 부모의 재산이나 배우자의 소득, 이미 마련된 경제적 기반이 있기 때문에 돈이 '제일' 중요하진 않는 것이다. 그런 조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당연시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솔직함이 더 건강하다

물론 정말로 소박한 삶을 철학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 하지만 문제는 말로는 '속물적이지 않아야 한다'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경제적 이득 앞에서 누구보다 예민한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는 유독 돈 이야기를 꺼린다. '돈 얘기 하는 사람 = 속물'이라는 공식이 너무 견고해서, 정당한 경제적 요구조차 '계산적'이라고 폄하당하기 쉽다. 차라리 솔직하게 인정하는 게 낫지 않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중요성을 인정하되, 그것에만 매몰되지는 않겠다"라고.


급여 협상에서, "성장 기회도 좋지만, 그에 상응하는 금전적 보상도 함께 고려해 주세요"라고 말하자.

일상에서,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하자.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고, 이 시스템에서 돈은 분명히 중요하다. 경제적 안정 없이는 내가 추구하는 가치들도 제대로 실현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물론 돈이 모든 문제의 해답은 아니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생기는 불행과 제약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 둘을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성숙한 태도가 아닐까.

keyword
이전 26화'인정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