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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타인의 인정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다

by 최지현

인정받으려고 할수록 나는 나로부터 멀어졌다.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은 마치 뫼비우스 띠 같아서, 가지고 싶어서 다가갈수록 제자리걸음인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점점 더 가혹한 기준을 나에게 적용하게 됐다.


완벽주의는 나의 생존 전략이었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는 새벽 3시까지 매만졌고, 메일 한 통 보내는 데도 30분씩 걸렸다. '혹시 오타는 없나? 어투가 너무 딱딱하진 않나? 이렇게 말하면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야만, 다른 사람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이 주어진다고 믿었다.


25살에 팀장이 된 첫날 전날 밤, 나는 잠을 거의 못 잤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좋은 팀장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글을 올리고 답글을 새로고침하며 읽어대느라. 하지만 달린 답글들은 냉소적이었다. "억지로 친해지려고 하지 마세요. 그래봤자 뒤에서는 다 불편해합니다." "그런 생각으로 팀장 하면 힘들어요. 그냥 적당히 일 잘 시키고 선 잘 지키는 게 최선이에요."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팀장 역할을 잘하고 싶었다. '적당히'가 아니라, 정말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회의에서 너무 단호하게 말하면 뒤에서 '까칠하다'는 소리가 들려왔고, 너무 부드럽게 하면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는 매 순간 줄타기를 했다. 강함과 부드러움 사이, 전문성과 친근함 사이에서. 그 좁은 경계선을 걸으려다 보니, 정작 진짜 나는 어디로 사라져 버렸다. 6년 정도 고군분투하면서 나름대로 산전수전을 겪으며, 나는 '좋은 팀장, 유능한 팀장' 역할을 연기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어떻게 해야 인정받는 팀장이 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렇게 믿었다.


몇 년 후, 더 큰 성장을 위해 오래 몸담고 있던 광고/마케팅 업계를 떠나 IT 회사로 이직을 했다. 나는 산업군을 바꿔도 계속 유능한 팀장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만만했다. 자만이었다. 첫 출근날, 첫 회의에서 그 자신감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일하는 방식, 우선순위, 사용하는 용어까지. 준비된 게 하나도 없었다. 경력직으로, 그것도 신사업팀 팀장으로 입사한 첫 회의에서 나는 완전한 바보가 됐다. 소위 '판교 사투리'라고들 부르는 IT 업계 용어들이 난무했다.

"스프린트 백로그에서 API 연동 이슈를 어떻게 핸들링할 건지, CI/CD 파이프라인은 구축됐나요? 레거시 시스템 마이그레이션 일정도 체크해야 하고..."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사용하는 언어를 나만 모르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모르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공부하다가, 엉엉 울었다. 하지만 나는 또 예전 방식으로 돌아갔다. 모르는 용어가 나와도 끄덕이며 알겠다는 표정을 짓고, "네, 좋은 방향인 것 같아요"라며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밤에는 혼자 자료를 뒤적이며 그 차이를 메꾸려 했지만, 수십 년간 축적된 업계 노하우를 며칠 만에 따라잡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프로젝트 킥오프 미팅에서 완전히 들통났다.


"팀장님, 이 프로젝트의 핵심 KPI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에 나는 동문서답을 했다. 회의실의 싸한 침묵이 모든 걸 말해줬다. 며칠 후 CTO에게 호출됐다. '아, 완전 깨지겠구나. 나 잘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예상대로 제대로 혼쭐났다.


"너 지금 네가 프로젝트 리딩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볼 땐 전혀 못하고 있어."

그런데 그다음에 나온 말이 내 인생을 바꿨다.


"못하는 거 할 수 있는 척하지 말고, 진짜 네가 잘하는 거 해. 우리 회사에서 너밖에 못하는 일이 있잖아. 사람들 만나서 설득하고, 새로운 사업 기회 발굴하는 거. 그거 해."


그 한마디에 뭔가 확 풀렸다. 입사 후 3개월 동안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프로젝트를 위해서가 아닌 내 인정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노력한 것뿐이었다.


"지금 하던 거 못하겠다고 하고, 네가 잘할 수 있는 일 시켜달라고 해. 나도 대표님한테 말해둘게."

그 순간 갑자기 자신감이 솟았다. '그래, 맞아. 그 누구도 못하는 걸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그 길로 대표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그 뒤로, 전혀 다른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지금 하고 있는 '전략 기획' 일이었다. 이 일도 처음이라 진짜 시행착오가 많았다. 뒤지게 깨지고, 실수하고, 매일매일 부족한 나를 마주하며 견뎌야 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그냥 나 스스로에게,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쪽팔리지 않을 정도로만 하자!'라고 마음먹었다. 타인의 인정이나 칭찬은 애초에 기대도 안 했다. 기준이 내 안에 생긴 거였다. 날 선 피드백도, 실수에 대한 꾸중들도 다 나에게는 공부가 되어서 오히려 일이 재밌어졌다. 하면 할수록 더 잘하고 싶어졌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인정받으려는 욕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누구의 기준'으로 인정받으려 하느냐가 문제라는 것을.


중요한 건, 남의 평가나 인정에서 신경을 좀 끄는 연습을 하는 거다. 사람은 연습하면 뭐든 늘거든. 나도 처음엔 안 됐다. 프레젠테이션 하나 만들 때마다 새벽 3시까지 매달렸고, 메일 한 통 보내는 데도 30분씩 고민했다. 하지만 조금씩 연습했다. "이 정도면 됐어"라고 말하는 연습, "모른다"라고 인정하는 연습, "내 방식대로 해보자"라고 결정하는 연습. 지금도 완벽하지 않다. 가끔 남의 눈치 보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그것 때문에 나를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연습 덕분에 훨씬 나아졌거든. 당신도 할 수 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자. 오늘 하루만이라도 "이 정도면 됐어"라고 말해보자. 누군가의 인정을 기다리지 말고, 일단 내가 나를 인정해 주자. 연습하면 는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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