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즈온(hands-on), 큐잉(queing)
몸살이 났다. 하타요가 다음 날이다. 월요일 선생님은 핸즈 온(hands-on)이 많으시다. 유독 나에게만 더 그러시는 것일 수도. 나는 요가 숙련자인 데다가 항상 일찍 오고, 열심히 수련을 하다 보니 조금 더 내 몸의 정렬을 맞춰주시고 싶으신 것 같다. 골반이 틀어지면 균형을 맞춰주시고, 후굴을 하고 있을 땐 내 뒤로 오셔서 깊은 후굴이 될 수 있게 양 팔뚝을 잡고 당겨주신다.
나는 보통 눈을 감고 요가를 하는데, 차박차박 선생님 발소리가 들리면 온몸에 긴장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을 넘어 120%의 아사나로 완성시켜 주시겠지 하는 마음에 긴장이 된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동작이기에 도와주셔도 힘이 든다. 억지로 늘리고 뻗고 뒤튼다. 유독 핸즈온이 많았던 그날. '흡!' 하며 더 늘리고 더 비튼 덕에 3일 동안 아예 요가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으슬으슬 춥더니 몸살이 났다. 서커스 무용단원으로서 훈련을 받은 듯 온몸이 쑤셨다. 수련이 아니라 훈련이었다.
그 이후 나는 핸즈온이 적고, 교정과 수정이 적은 화요일 수업을 들었다. 내가 주도해서 나의 몸과 마음 밭을 가는 수련을 하고 싶었다. 화요일 선생님은 핸즈온이 적은 대신 말이 구체적이다. 비유와 이미지로 내가 스스로 내 몸을 정렬시키고 만들어나갈 수 있게 해 주신다. 기다려주시는 셈이다.
월요일 수업은 인터넷 랜선을 직접 노트북에 꽂고 작업을 하는 듯했다면, 화요일 수업은 스타벅스에서 성능 좋은 와이파이에 노트북을 연결시킨 후 내가 좋아하는 창가 자리에 앉아 일을 하는 느낌이었다. 깨어진 몸과 마음의 균형을 조금씩 맞춰나가는 수련 과정을 스스로 바라보고 이끌어갈 수 있게 기다려주시기 때문이다. 기다려준다는 것은 믿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화요일 수업이 끝나면 내가 한 뼘 더 성장했다고 느낀다.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큐잉에 귀 기울이며 움직인다. 호흡도 내가 가져간다. 속도도 내가, 시작도, 끝내는 것도 내가 한다. 동작 중간에 쉬는 것도 내가 정한다. 그러다 보니 내 기량의 최고를 경신하는 수업은 늘 화요일이다.
출산 후 인상 깊게 읽었던 책 <엄마 심리 수업>이 떠올랐다. 책의 저자는 가장 좋은 엄마는 '빈틈 엄마'라고 했다. 집안에 cctv를 설치해 두고 아이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엄마, 집안이 늘 청결하고 정돈되어 있는 엄마, 자신의 기준과 잣대가 분명해서 아이를 늘 가르치는 엄마는 좋은 엄마가 아니라고 했다. 아이가 스스로 실패해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엄마, 자기 할 일이 바빠서 일거수일투족을 다 챙겨주지 못하는 엄마, 실수하는 것을 즐겁게 바라봐 줄 수 있는 빈틈 엄마가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엄마라는 것이다.
일일이 핸즈온 하지 않고 간간이 반짝이는 큐잉으로 수업을 이끌어가는 것은 어쩌면 지도자에게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고쳐주고 싶고, 바로잡아주고 싶은 욕구를 내려놓고 바라만 봐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