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사계절이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엄마는 악을 지르며 나가라고 합니다.
제가 말대꾸를 한다고 어디서 저런 게 태어났는지 묻습니다.
대답은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을 것 같지만 말입니다.
저는 그 “나가.”라는 두 글자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습니다.
저는 나가서 어디로 가야 하고 어디서 사는 건데요?
이제 집이라는 것도 없어지는 건가요?
일단 나가야 합니다.
집 안의 모든 물건이 저에게 날아오고 있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갑니다.
쾅!
그리고 철컥.
엄마는 문을 잠가버렸습니다.
그나마 봄, 여름, 가을은 밖에 서 있을 만합니다.
문제는 겨울입니다.
집안에서는 겨울에도 반팔 반바지를 입고 있기 때문에, 저는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겨울 복도로 내쫓깁니다. 운이 좋으면 운동화를 신어도 엄마가 모른 척해줍니다.
콧물이 흐릅니다.
왼쪽 소매 끝에 열심히 닦습니다.
왼쪽 소매가 다 젖었습니다.
콧물은 계속 흐릅니다.
이제 오른쪽 소매 차례입니다.
복도의 반은 벽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에
자리만 잘 잡으면 덜 추운 곳에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조용히 서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더 엄마 화를 돋웠다가 아예 복도에서도 나가라고 하면
차가운 바람을 막아줄 벽이 사라집니다.
양쪽 소매가 콧물로 다 얼어서 뻣뻣해지고
이제 코를 훔쳐 바짓단에 닦을 때 즈음
아빠가 퇴근을 합니다.
오늘도 복도에 서 있는 저를 보고 한숨을 쉬며 지나칩니다.
아빠는 집에 혼자 들어갑니다.
아빠는 한 번도 저를 데리고 들어가 주지 않았습니다.
쾅. 철컥.
저는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집에 들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콧물을 열심히 바짓단에 닦습니다.
철컥.
엄마가 고개를 내밉니다.
“들어와 밥 먹어라.”
저는 들어가서 손도 씻고 얼은 손도 녹일 겸 뜨거운 물에 한동안 손을 담그고 있습니다.
얼은 손은 못생겨집니다. 검붉고 쭈굴쭈굴해져요.
그리고 우리 ‘가족’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저녁을 먹습니다.
엄마아빠는 담소를 나눕니다.
저는 불똥이 튈까 봐 잽싸게 밥을 먹고,
엄마가 또 불러 세우기 전에 방으로 들어갑니다.
아. 다행입니다.
오늘도 집 안에서 잘 수 있나 봅니다.
학교에 갑니다.
반 아이중 한 명이
“나 어제 엄마한테 쫓겨났어”라고 자기네들끼리 말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슬쩍 귀를 기울입니다.
다른 애들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그냥 형이랑 놀이터에서 놀다가 들어갔어”
너무 충격적인 그 아이의 답변이었습니다.
‘아니. 엄마한테 쫓겨났는데, 감히 놀이터에 갈 수 있는 거였어? 그리고 그냥 멋대로 집에 들어가도 되는 거야?’
일단 그 반 아이의 말을 잘 곱씹으며 집으로 갑니다.
집에 가던 길에 아는 아이를 만납니다.
잠깐 이야기를 하고 집으로 갑니다.
분명 그 아이와 오래 얘기한 게 아닌데
집에 와보니 엄마는 화가 나있습니다.
저는 아마 오늘도 복도행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감히 제 반 아이처럼 놀이터에서 놀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복도에 서 있는데 옆집 아저씨가 나옵니다.
이제는 익숙합니다.
아저씨는 아마 “얘는 맨날 혼나서 밖에 나오는 애”라고 생각하겠지요.
아저씨가 담배를 피우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묻습니다.
“추운데 맨날 거기 서서 기다리지 말고 아저씨 집에서 기다릴래?”
저는 고개를 젓습니다.
자리이탈이라도 했다가 돌아올 후폭풍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옆집 아저씨는 그 이후 다시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게 오히려 고마웠습니다.
후폭풍은 정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것이거든요.
그냥 이 정도로 끝날 수 있을 때 끝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