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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머무는 곳에 7

단편소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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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3살이 7살의 삶을 사는 기분이 썩 좋지 않다는 것에는 아저씨도 동의를 해. 때론 아저씨도 회사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거든. 그땐 뭐랄까 수치스러운 기분도 들고 무거운 갑옷을 입고 항상 생활을 하는 기분이야. 그 무거운 갑옷을 입고 밥을 먹고 서류 정리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가망이 없어 보이는 회사는 과감하게 무너트리는 거야. 약간은 너의 기분을 알 것 같아.”


작은 그녀는 고구마라테를 다 마셔간다. 썩 맛있게 먹는 것 같지는 않지만 여자아이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진지하고 맛있게 먹었다.


“그건 말이죠, 그런 면도 있지만 전 아직 어리잖아요. 제 나이 또래는 친구가 가장 필요하죠. 친구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떡볶이 같은 걸 씹어 먹으며 우리들만의 비밀 공유 같은 거, 그게 제 또래에는 가장 필요한데 전 그걸 하지 못해요. 즉, 외로움이 깊어져서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외로움이라는 건 나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건널 수 없는 바다와 같다고 생각을 해요.”


나는 너무나 자연스레 어른스러운 말투로 이야기하는 작은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작은 얼굴에서는 도무지 13살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친구들과 부모님의 맹목적인 사랑이 제 또래에는 제일 중요하고 그 외의 것은 아직 모르는 나이예요. 아저씨도 아마 오래전엔 그랬을 거예요. 지금처럼 벤치에 앉아서 말을 걸고 다른 생각에 멍하게 있고 하는 걸 보니 아저씨도 고민이 깊은가 봐요”라며 아이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나는 블루베리 머핀을 일회용 포크로 떠서 입으로 넣었다. 머핀이 퍽퍽했다. 입안의 혀에 살갑지 않게 붙는 느낌이었다. 퍽퍽하지 않은 머핀이 정말 맛있는 머핀이다. 그런 머핀의 맛을 알게 된 것도 은서 덕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먹는 머핀은 가공된 맛이 많이 가미된 것이라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꼬마 숙녀가 잘 먹는다. 잘 먹는 것을 좋아해야 할지 아니면.


“기억이 없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몽땅 사라져 버린 느낌이야. 마치 전쟁이 끝나고 난 후 부자와 가난한 자들로만 나눠진 느낌이야.”


아이가 그런데요? 같은 표정을 지었다.


“말하자면 전쟁의 중간은 사라졌다는 거야. 게다가 저 건물에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아저씨의 아내야. 아저씨의 아내와 함께한 기억마저 하얀 막 같은 구름이 몰려와서 다 덮여 버렸어. 기억이 나지 않아. 그래서 조금은 두려운 거야. 두려움. 혹시 두려움이 뭔지 알고 있지?” 나는 이 아이가 두려움이 뭔지 알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니까 아저씨는 지나간 기억의 재생산을 해낼 수 없다는 말이군요.”


작은 그녀의 말에 나는 흐응, 하는 알 수 없는 소리가 나왔다.


‘재생산’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7살 인생을 살아가는 13살 소녀라.


“아저씨,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꼬마가 뭐 이래? 이런 표정은 짓지 말아 주세요. 거짓의 7살 인생은 정말 힘들다구요.”


작은 그녀는 짐짓 미소를 짓고 한숨을 함께 내뱉었다. 미소는 작은 얼굴에 알맞게 번지는 미소였다. 하지만 미소는 이내 사라지고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래 알았어. 이미 너에게 많이 놀랐으니까 말이야. 물론 좋은 쪽으로 말이지.”


나는 서서히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은서와 나란히 앉아서 커피를 마신 건 언제였더라. 이내 나는 작은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말이죠. 우리의 작고 쪼글쪼글한 뇌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정보를 우리도 모르게 재편집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뇌가 재편집을 해서 보는 이 세상이 전부라고 착각을 해 버리는 거죠. 무엇인가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어 버리는 것에서 이 기억의 장치가 시작을 해요. 아저씨, 제 말 잘 듣고 있죠?”

나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느 때보다 집중을 해서 듣고 있었다.


“그 말은 곧 인간은 꽤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의 위주로 생각을 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본 것만이 진실의 모든 것이라고 믿어 버리는 거예요. 인간이란 참 모순된 유기체죠. 아저씨, 유기체라는 게 무슨 말인지 아시죠?”


“흠.”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착각의 발달로 인해 뇌가 인지하고 싶지 않은 기억은 작은 창고를 만들어 그 안에 봉인해 버리고 과정을 지속적으로 해낸다고 보시면 돼요. 아저씨는 융학파 쪽이세요? 프로이트 학파 쪽이세요?”


나는 점점 골치가 아파왔다.


“글쎄, 어느 학파 쪽인지는 그동안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만약 그 사람들이 살아있다면 널 굉장히 좋아했을 것 같구나.”


나의 말에 작은 그녀는 살짝 웃었다. 아마도 동의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 봉인된 기억은 아주 단단한 세라믹 박스 같은 것이라 사고가 파괴되지 않는 이상 열리지 않아요. 아저씨도 아마 여러 부분의 기억들이 아저씨의 또 다른 자아의 강한 의식에 의해서 굉장히 단단한 상자를 만들어서 그 안에 집어넣어 버린 듯해요.”


나는 작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을 했다. 그래, 떠 올리려는 기억의 풍경들은 먹지를 댄 것처럼 뿌연 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손에 닿을 듯 말 듯 한 곳에서는 그 기억의 풍경이 화악 펼쳐진 것만 같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저씨는 그동안 자신을 숨겨가면서 아저씨 내부가 아저씨의 또 다른 내부에게 넌 다시 나오지 않는 게 좋겠어! 라며 철저히 위계를 강요한 것 같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작은 그녀를 보며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태도를 정해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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