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맹욱 Feb 15. 2024

풍류

힐끔 단편선 - 013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고 한다. 15년만의 무더위! 사상 최고의 무더위! 같은 과장 광고나 뉴스들이 줄기차게 나왔고, 사람들은 에어컨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에어컨을 많이 사기 때문에 지구가 더 더워지는 것은 아닐까? 나의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본인이 쓰지 않는다고 지구가 크게 달라지는 것만은 아니었을텐데. 아무튼 그렇게 우리집은 남들 다 사는 에어컨을 사지 않았다. 그리고 진짜 사상 최고의 무더위라고 불릴 수 있는 날에 내가 태어났다.     


 나는 어릴 적부터 피부가 까맸다. 아니 처음에는 불그스름했다고 했다. 어딘가에 탄 것 마냥 불그스름 해지더니 이내 까맣게 되어버렸다고 한다. 부모님 모두 하얀편이었는데, 내가 이런 피부가 된 건 여름에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엄마가 그렇게 말해줬기 때문이다.     

 

 사상 최고의 무더위에 에어컨도 없는 집에서 태어난 나는 여름을 싫어할 수 밖에 없었다. 생일이 다가오면 날씨가 점점 더워지다 못해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렀고, 케이크에 불을 불 때면 촛농이 녹아 흐르듯 내 이마에서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기 때문이다. 엄마가 “소원 빌어야지.”라고 말하면 눈을 감고 생각한다. 제발 에어컨이 있는 집에서 살게 해주세요. 여름엔 춥고, 겨울엔 더운 집에서 살게 해주세요.      


 에어컨을 사자고 말해본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탈탈 – 소리가 나는 선풍기 한 대를 틀어놓고 우리 가족은 모두 거실 바닥에 누운 채로 시간을 보냈다. 마치 더위 그 자체를 즐기기라도 하듯이. 아빠는 매번 이렇게 말했다. “여름은 원래 더운 거야. 그 계절을 그대로 즐기는 것도 나름의 풍류지.” 풍류란 가난한 것이었다. 여름에는 냉방비를 아끼고, 겨울에는 난방비를 아끼는 것. 그리고 그런 걸 풍류라고 말해버리면 듣는 사람은 정말로. “음~.” 나 “음……?” 라고 말해버리는 것이다. 나로 치자면 둘 다에 해당했다. “음~, 음……?”     

 나는 학교에 가는 걸 좋아했다. 올해에 마침 교실에 커다란 에어컨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에 매번 가장 일찍 가서 가장 늦게 나왔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에어컨을 켜고 ― 이 시절에는 교실 내에서 에어컨을 조작할 수 있었다. ― 선생님이 “이제 집에 가야하지 않겠니?”라는 말을 할 때까지 교실에 남아 있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매번 멀고도 더웠다.     

 

 친구들 중에서는 감기에 걸리는 녀석도 더러 생기기 시작했다. “선생님 너무 추워요.” 에어컨 앞자리에 앉은 녀석이 말했다. ‘복에 겨운 녀석이로군.’ 나는 실제로 이렇게 생각했다. 여름에 춥고 겨울에 덥다는 고민을 할 수 있는 그 자리야말로 가장 행복한 것임을. 선생님은 이내 다시 말했다. “지금 또 추운 사람?” 꽤 많은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 과반수의 법칙을 통해서 에어컨은 꺼졌다. 교실에는 착찹한 기운만이 감돌았고, 이내 점점 더워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내가 손을 들 차례였다. “선생님. 너무 더워요.”     


 하루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부모님과 같이 밥을 먹고 있던 중에, 나는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우리도 에어컨 사면 안 돼?” 그 날의 저녁 메뉴는 김치찌개였다. 이열치열이라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냥 우리집에서 자주 해먹던 음식이었다. 벌건 국물에 코를 박고 밥을 먹고 있던 아빠가 휴지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아직이야.” 그 말을 들은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더 말하고 싶었지만 이 두 사람은 확실한 계획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뭔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 지금이 무조건 때 같았지만 ― 아무튼 그랬던 것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학교에서는 춥고, 집에서는 더운 이 양극화적인 현상을 해결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생긴 것은 말이다. - 그러니까 이를테면 아프리카와 남극을 매일 오가는 사람 같았다 – 균형이 필요했다. 아니 어쩌면 나의 숙명은 균형을 맞추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세상은 꽤 불공평하다. 이런 균형을 맞춰야 하는 중요한 업무를 대통령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 부모님도 아닌. 열 살짜리인 나한테 떠넘겼으니 말이다. 대통령도, 선생님도, 그리고 우리 부모님도.     


 모두 다 무책임한 어른일 뿐이다.     


 어쩌면 그것이 풍류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의 에어컨 부수기 계획은 이번주 금요일로 날을 정했다. 아침에 가장 일찍 오는 사람이 나였으므로 일은 손쉽게 처리될 수 있었다. 바께스 하나를 든 채로 나는 운동장에 있는 모래를 모았다. 그리고 교실에 도착하고 여느때처럼 에어컨을 켰다. 에어컨에서는 쎄한 냄새와 함께 시원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잠시동안, 아주 잠시동안이지만, 나는 고민했다. 이 에어컨을 꼭 고장내야만 하냐는 물음이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굳히고 에어컨의 머리 부분에 열심히 퍼왔던 모래를 집어넣었다. 바람 때문에 일부는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지만, 효과는 있었다. 에어컨에서 탈탈 – 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움큼. 다시 한 움큼. 그렇게 집어넣을수록 에어컨에서 나오는 바람은 점점 약해지더니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조금씩 균형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선생님! 쟤 보세요. 에어컨에 이상한 짓 해요!”     


 라는 소리가 들렸을 땐 이미 늦었다. 에어컨 때문에 감기에 걸렸던 녀석이 선생님을 불러온 것이다. 도대체 왜? 넌 에어컨 때문에 감기도 걸렸잖아. 선생님은 무서운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모래가 담긴 바께쓰를 빼앗은 채로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건지 물었다. 나는 대답할 순 없었다. 당신들을 대신해서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는 말을 할 순 없었다.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땅에 떨군 채로 울고 있었다. 선생님은 몇 번 더 다그치더니 전화기를 들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 대상은 우리 부모님이었다.      


 엄마가 급하게 학교에 도착했을 때까지 나는 울고 있었다. 에어컨은 여전히 탈탈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고, 아이들은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선생님께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선생님은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엄마는 나에게 다가와서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작게 속삭였다. 엄마가 다가오자 울음이 조금씩 멈추는 것 같았다. 땅에 떨궜던 고개를 들자 선생님과 엄마, 그리고 아이들은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말이 궁금해 죽겠다는 듯이. 나는 어떤 말이든 해야된다는 강박에 사로 잡혔고, 이내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풍류…….”    

 

 “응?”     

 엄마는 잘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재차 물었다.  

   

 “계절을 그대로 즐기는 것도, 나름의 풍류……니까요.”

     

 “음……?”     


 교실은 “음……?”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이내 아이들은 하나 둘씩 웃기 시작했다. 엄마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고, 선생님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는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아빠가 말했던 풍류는 부끄러운 것이었다. 말하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빠 역시,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풍류란 가난한 것임과 동시에 부끄러운 것이었다. 나는 풍류라는 얘기를 함으로써 어쩌면 인정한 것일지도 모른다.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대대적인 일을 치룬 사람이 아니라, 그냥 가난한 집안의 아이가 부린 땡깡이라는 것을. 이후에 부모님은 학교에 방문해서 에어컨 수리비를 내밀었다. 그 돈이 언젠가 에어컨을 사기 위해 모든 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부모님은 나에게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슈퍼에 들려서 차가운 아이스크림 하나를 입에 물려준 것이 전부였다. 그 후로 나는 다시는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허황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에어컨을 사자는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해가 되었을 때도 여전히 과장 뉴스는 튀어나왔다.     

 

 20년 만의 무더위!     


 지구 최악의 무더위!


 에어컨의 판매량은 급증한다. 그리고 우리집은, 여전히 바닥에 누운채로 탈탈 – 거리는 선풍기를 쐬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을 그대로 즐기는 것이. 차가운 바닥에 누운채로 최대한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우리집만의 풍류라는 것을.


                    

이전 12화 터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