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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Oct 07. 2024

금 간 천장 (3)

episode. 3

3           


 A/S 기사는 전화를 건지 삼 일이 지나서야 초인종을 눌렀다. 방금 출발했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서비스직 사람들이 하는 말 중 가장 신빙성 없는 말들이 바로 이것이었다. 푸른 모자에 푸른 조끼를 입은 기사는 나와 눈이 채 마주치기도 전에 집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다짜고짜 욕실의 위치를 물었고, 나는 큰 방 옆이라고 말했다. 큰 방이 어딘지도 몰랐던 그가 열었던 곳은 다용도실이었다.      


 이거 금액이 꽤 나가겠는데요? 천장을 이리저리 살펴본 후에 그가 말했다. 대략 어느 정도…… 백만 원 정도 들 겁니다. 백만 원. 먹고 죽어라 해도 없는 돈이었다. 그는 왜 천장을 수리하는데 이 정도의 돈이 드는지 설명했다. 오래된 아파트, 천장의 금과 함께 동반되는 누수의 문제. 하는 김에 욕실 인테리어까지. 이 세상은 불공평하다. 천장을 고치려고 사람을 불렀건만, 욕실 인테리어까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에게 말했다. 빨리 수리하시지 않으면 천장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구요. 수리기사는 장난을 머금은 미소를 지으며 비아냥거렸다.     


 꿈속에서 천장은 몇 번이고 무너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천장이 무너지고, 알 수 없는 두려움 뒤에는 <후련함>이 있었다. 나는 어쩌면 수리기사에게 천장을 고치는 방법이 아니라 천장을 무너뜨리는 방법을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리기사는 며칠 뒤에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내 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수리기사가 돌아간 뒤에 집안 곳곳을 뒤졌다. 혹시나 내가 잊고 있었던 값진 물건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사 오기 전에도 꼼꼼히 보지 않았던 집을 이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쩌면 돈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다른 금 간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집안을 샅샅이 뒤졌다. 빗자루로 침대 밑을 쓸어보거나, 냉장고나 티브이 뒤를 확인했다. 돈은커녕 애꿎은 바퀴벌레들만 찾아냈다.      


 다음으로 한 일은 물건을 뒤지는 것이었다. 좀도둑처럼 서랍이란 서랍은 전부 열어놓고 귀중품을 찾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가져온 귀중품이라고 해봤자, 대학생 시절 사놓았던 기타뿐이었다. 그것조차도 삼 개월인가 튕기고 고스란히 인테리어로 전락해버렸다. 돈 주고 샀던 기타도 인테리어가 되는 판국에 천장이라고 그 그늘에서 벗어날 순 없는 것이었다. 나는 기타를 다시 원래 장소에 놓아둔 후에, 옷장으로 걸어갔다. 서랍에 있는 옷들을 꺼내고,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내가 까먹고 넣어놓은 잔돈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주머니란 주머니는 전부 뒤져보았다. 후드티 주머니, 바지 주머니, 셔츠 주머니, 재킷 안쪽 주머니, 코트 주머니, 뒤지다 못해 모자 안까지 살펴보았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뒤졌던 나에게 떨어진 돈은 1250원 뿐이었다.     


 결국 나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전화 목록을 손으로 내리면서 나는 필사적으로 두 글자를 찾고 있었다.


 ‘엄마’     


 명절 때도 전화하지 않았던 그 이름을 찾은 것은 효심이 아닌 내 욕심 때문이었다. 통화음이 끊기고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밥은 잘 먹냐로 시작한 엄마와의 대화는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아픈 곳은 없는지, 일을 잘 돼가는 지 등등. 엄마 천장도 괜찮냐고 물어볼 순 없을까요. 그렇다면 내가 이틀 동안 겪었던 금이 갔던 천장에 대한 것과, 매일 같은 꿈을 꾸는 것. 위층 뚱보에 대한 얘기, A/S 기사가 인테리어인지 뭔지로 내 돈 백만 원을 요구했던 일까지. 머릿속에 그려진 대화를 실현시키기에는 내 현실이 너무 아이러니했다. 하지만 이래 부모란 사람들은 자식새끼 생각보다 위에 있는 법이었다. 어머니는 의례적인 인사가 끝난 후에 나에게 물었다. 그래 돈은 안 필요하고? 어쩌면 내가 장장 몇 십분 동안 설명했어야 할 이야기를 엄마는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해버렸다. 어쩌면 우리 엄마는 하나의 큰 압축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것이 엄마의 예의였다. 아들이 전화가 왔을 때의 예의. 당장 엄마가 쓸 돈도 없지만 아들이 필요하다면 자신이 쓸 돈까지 보내주는 사람. 그것이 나의 엄마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엄마의 아들이었다. 엄마 통장 확인해보라고 전화드렸어요. 나는 지갑을 챙기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뭐하러 보냈냐고 말씀하셨지만 내심 좋은 눈치였다. 핸드폰을 켜고 메모장에 적힌 어머니의 통장번호를 누른 후에,      


 <이체하기>라는 글자 앞에서 멈춰 섰다.      


 엄마의 고맙다는 말 앞에서 나는 그 글자를 누를 수밖엔 없었다. 이렇게 천장 수리와는 두 발자국은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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