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맹욱 Oct 14. 2024

금 간 천장 (5)

episode. 5

5          


 그 무렵의 금요일이었다. 팀장님이 나를 불렀다. 잘 지냈어요? 네. 다름이 아니라 전할 것이 있어서요. 네. 팀장님의 말은 갑자기 부른 것만큼이나 놀랄만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일을 잘해주었지만, 아쉽게도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다는 것이다. 말이 좋아서 발령이지, 과거로 치면 유배나 다름없었다. 앞으로는 그쪽으로 출근하면 되는 겁니까? 네.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 그냥 그렇게 된 것뿐이었다.      


 내가 발령이 난 곳은 남해였다. 지금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버스 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사천에서 내려서 택시를 타고 또 굽이굽이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예전에 가본 적이라고는 아버지를 따라 가족여행을 갔을 때뿐이었다. 그때의 어머니는 볼 것도 없고, 집이랑도 먼 곳으로 왜 가냐며 아버지를 타박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타박할 아버지조차 없었다. 회의실을 나와서 자리에 앉았지만, 나에게 무슨 일이 있냐며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도 알고 있었던 것뿐이다. 내 덕분에 자신들이 선택되지 않았다는 것에 안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달력을 들고 발령 날짜를 체크했다. 7월 2일이었다. 지금부터 약 두 달 정도 남은 기간이었다. 나는 주위에 있는 아무 종이나 들고 할 일을 적어놓기 시작했다.      


 <해야 할 일>

1. 남해에서 살 집 구하기

2. 지금 살고 있는 집 내놓기     


 해야 할 일은 오로지 집이었다. 이 년 동안 근무했던 곳을 떠나는 데 할 일은 집을 정리하고 구하는 일밖엔 없었다. 나는 문득 천장에 가 있는 금이 생각났다. 천장을 수리하지 않는다면 집을 팔 때,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른다. 집을 보러온 사람들이 천장에 살고 있는 돈벌레를 본다면 기겁을 하며 도망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때의 부동산 중개인처럼 필사적으로 금을 가리는 데에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약점을 숨기려고 하니까. 이렇게 천장의 금은 대물림될 것이다. 내가 집을 판 사람에서 다음사람으로. 시간이 지나고 세월의 풍파를 맞으며 아파트가 늙어갈 때쯤. 꿈에서 본 것처럼 천장은 무너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인지 알 수가 없다. 당장 내일이 될 수도 있는 일이고, 아니면 이 집이 철거되는 날까지 천장의 금은 굳건히 자신의 모양을 지키고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나는 펜을 내려놓고 전화기를 들었다.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주인은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겠냐고 물어보자, 그는 대답하기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전세금 삼 천 중에 이천만 원만 먼저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나머지 천만 원은 남은 계약 날짜까지 입주자가 안 구해지면 계약 날짜에 주겠다고 말했다. 내가 더 물어보기도 전에 집주인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구두쇠 같은 이 남자가 천장에 금이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전세금 받기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내 전화 소리가 들렸는지 여자 동료 하나가 찾아와서 물었다. 팀장님이 뭐라고 하시던가요? 아,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다고 합니다. 어디로요? 남해요. 그녀는 정말 안됐다는 말뿐인 위로만을 남긴 채 자리로 돌아갔다.    

  

 며칠 동안 이사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집주인에게 다시 전화를 걸고 사정을 설명해야 했고, 어찌어찌 설득은 되었으나 그는 가기 전에 청소를 해두라고 말했다. 먼저 일 년 동안 치우지 않았던 집을 청소해야 했다. 가구를 전부 들어내고 걸레질을 시작했다. 물통에 담아두었던 물이 뿌연 구정물이 될 때까지 집 안을 닦았다. 가구를 들어낼 때마다 숨어있던 벌레들이나 쓰레기들을 보는 것은 조금씩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가장 문제인 것은 체력이었다. 열 평 조금 넘는 집이라고 방심했던 것이다. 가구를 들어내고 집을 닦는 데에만 반나절이 걸렸다. 다음으로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는 일이었다. 냉장고를 열어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쓰레기 봉지에 담았고, 읽지 않는 책들, 오래된 물건들을 차례로 봉지에 담았다. 필요 없는 물건을 찾는 일은 꽤나 빨리 끝났다. 대부분 쓰지 않거나 필요 없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년 동안 살아온 집을 정리하는 데는 고작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땀에 젖은 옷을 세탁기로 던져버리고 욕실로 향했다. 물을 틀고 세면대에 샤워기를 걸쳐놓았다. 따뜻한 물이 나오자 욕실 안은 수증기로 가득 찼다. 수증기는 한 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천장의 금은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숨을 들이키는 것처럼 수증기를 가득 머금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바람을 뱉었다. 그 모습은 하나의 인간이나 다름없었다. 

이전 04화 금 간 천장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