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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GXING Oct 27. 2024

'어쩌다 보니' 재택 2주째

[2020년 딸아이 열 한 살 (1)]

본의 아니게 재택근무 2주째입니다. 코로나19가 바꾼 일상 (단순히 ‘바꾼다’는 표현이 미안할 정도의 변화입니다. 급격하고 완전히 없던 것들이었으니)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재택근무입니다. 물론 일부 업종에서는 예전부터 해오던 것이기도 하지만 일반 기업들로서는, 일반 직장인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죠. 제게도 물론이고요.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순환 형태로 재택근무를 시행중입니다. 부서당 25% 정도 재택근무를 하도록 해서 사무실내 밀집도를 낮추자는 생각이죠. 그렇게 한다면 대략 일주일에 한두 번 재택을 하게 되건만 전 2주째 재택 중입니다.


그게 그렇습니다. 다리를 다쳤습니다. 종아리 근육 파열이랍니다. 어떤 운동을 했길래? 민망합니다. 과격한 운동이라도 했으면 그러려니 하는데 가볍게 조깅하다 그랬으니까요. 


2주전 일요일 여느 때처럼 와이프, 딸아이와 함께 동네 산책로 산 둘레길로 향했습니다. 제자리 뛰기 형태로 가볍게 조깅하며 가는데 딸아이가 장난으로 쫒아오네요. 부러 잡혀주는 척 기다리다, 다가오면 피하며 속도를 냈습니다. 속도라 해봤자 말 그대로 슬쩍 이고요. 


집근처 북부산림청 입구의 약간 경사진 비탈길에서, 뒤쫓아 오는 것을 모른 척 기다리다 거의 다가왔을 때 속도를 내는데 누가 종아리를 힘껏 걷어찬 느낌입니다. ‘어이구“ 데굴데굴 굴렀죠. 아이가 무심결에 발로 종아리를 걷어 찬줄 알았습니다. ”M, 왜 차니!“ 애꿎은 딸아이만 ”몰라. 느낌 없었는데...“ 하며 울상입니다. 


딸아이에게 미안한 노릇. 종아리 근육이 찢어진 것인데 아이가 찬 줄 알았으니. 정말 날아오는 골프공에 종아리를 맞은 기분입니다. 여느 일요일 기분전환 산책을 못할듯 싶어, 아내와 아이 둘이서만 일단 둘레길 갔다 오라 하고 전 입구에 앉아 있었습니다. 앉아 있으면 나아지려니 했건만 오히려 더 걷지 못하는 것 아닌가요. 집에 돌아가려 해도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겠습니다. 택시 불러 먼저 집에 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재택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재택근무가 그렇습니다. 하는 일에 따라 효율이 다릅니다. 새로운 부서로 옮긴지 한 달도 되지 않고 이 부서는 꽤나 바쁜 부서입니다. 보고도 많고 페이퍼 작업도 많네요. 재택이다 보니 대면보고를 할 수 없지만 온라인 메신저로 날아오는 요청자료 처리하고 보고서 작성하고 여러 민원 전화 받다 보니 책방에서 꼼짝도 못합니다. 아내가 “화장실도 안가니?” 할 정도니까요. 사무환경이야 아무래도 모니터 두 대 있는 사무실이 나을 수도 있지만 집중도는 오히려 재택이 낫던데요. 


새로운 부서 업무 파악을 하는 데도 좀 도움이 된 듯합니다. 과거 보고서 등을 읽을 시간이 사무실에서는 다른 사안들로 주어지기 쉽지 않았는데 재택하면서 조금은 차분히 과거 파일도 뒤져 읽었습니다. 그래도 이 부서 일은 익숙해질 시점이면 아마 다른 부서 옮길 때쯤일 것 같은 생각이지만.


업무 시간은 재택이 더 긴 것 같습니다. 원래 사무실에서도 비교적 늦은 시간까지 업무가 이어지기도 했지만 재택하면서는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고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심리적 편안함 때문에라도 업무시간이 늘어나네요. 하다보면 9시를 훌쩍 넘깁니다. 재택근무 하면 오히려 번아웃된다던데 이런 경우인가 싶습니다. 


아이는 그래서 “아빠 근무시간 마감은 9시까지야”라며 9시 넘으면 방에 들어와 빨리 나와 놀자 합니다. 이게 참 그렇습니다. 두 가진데 우선 딸아이는 아빠 재택을 매우 반깁니다. 이 녀석은 아빠가 책방에만 있다 하더라도 아빠가 집이라는 같은 공간에 있는 그 심리적 안정감을 즐깁니다. 그 안정감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와 함께 놀진 못하더라도 같은 공간에 같은 시간에 있다는 그 느낌이 좋습니다. 


다른 하나는 적응력입니다. 예전 베이징에서 일할 때는 아빠가 집에 오는 시간이 8시 반만 되어도 “빨리 왔네”라며 반겼습니다. 지난해 부서에서는 비교적 퇴근 시간이 빨라, 7시 반 정도만 돌아와도 “인정해줄게” 했지요. 그러다 이 부서에 와서는 9시 반 전에만 오면, 자기랑 같이 잠자리에 들기만 하면 반깁니다. 아빠 방 앞에 큰지막하게 “아빠가 늑게오는 것에 반대함니다. 항의함니다!”라고 서툴게 써놓은 녀석이 말입니다.


업무는 업무 시간에만 하는 게 당연한 것. 일이 많은 날은 어쩔 수 없겠지만 일상적으론 일이 보다 익숙해지면 그래 지겠죠. 앞으로 2주는 더 목발신세일 듯합니다. 그래도 다음주에는 회사에 출근할 계획입니다. 걸어서 10분 거리 회사지만 와이프가 차로 데려다 주고 데려올 것일 테지요. 그래 주겠죠?


딸아이가 일어났나 봅니다. “아빠!” 부릅니다. 가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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