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딸아이 열 한 살 (2)]
부쩍 살이 빠진 모습입니다. 원래 통통하진 않았지만 최근에 보니 옷이 헐렁하고 왜소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와이프 말입니다. 물리치료 받은 저를 데려오는 길에 함께 탄 엘리베이터에서 보니 그렇습니다. “살 좀 쪄야겠다.”
피식 웃으며 고백합니다. 저 출근하고 아이 학교 등교하면 간혹 빵이나 도너츠를 사서 오전에 커피 마시며 먹었답니다. 가끔 과자나 쿠키도 사서 먹기도 하고. 그렇게 군것질을 하니 살이 좀 쪘었다네요. 저랑 아이한테 들킬까봐 먹다 남은 것은 잘 숨겨놓곤 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말이야. 도저히 그런 여유를 즐길 수가 없어. 둘 다 집에 있다 보니 말이야. 장 보고 나서 몰래 사왔어도 어디에 숨길 수가 있어야 말이지. 장바구니에서 꺼낼 때 나는 소리에 무조건반사처럼 돌아보니. 평소에 내가 하는 소리 잘 들리지 않는 척 하면서, 어쩜 비닐 부스럭거리는 소리에는 그렇게 빨리 반응하나 몰라.”
좀비가 그렇지 않나요. 영화속 장면에서 보면 소리와 빛에 민감합니다. 바로 옆에 사람이 서있어도 눈치 채지 못하다가 미세한 발자국 소리에도 고개를 획 돌려 소리 나는 방향으로 무섭게 몰려듭니다. 그러곤 물어뜯습니다.
딸아이나 저나 먹는 것을 참 좋아습니다. 먹성이 좋습니다. 와이프가 장 보고 오거나 주문한 음식재료가 문 앞에 도착하면 스멀스멀 아내에게 다가갑니다. 아니 다가가진 않더라도 소리에 집중합니다. 전 안 그러는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무엇을 사왔는지 궁금해 하긴 했던 것 같습니다. 간혹 아내가 김을 굽다 방으로 잠시 들어가면 그 틈에 몰래 가서 구워놓은 김 밑장빼기로 한두 장 먹은 것은 고백합니다. 딸아이에게도 건네서 입막음 겸 둘만의 비밀을 만들고 말입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 밖에 거의 나가지 않습니다. 사실 그것보다도 다리를 다쳐서 나갈 수가 없는 것이죠. 간혹 하던 외식을 안 한지도 꽤 됐습니다. 엥겔지수가 낮아질 만도 하련만 웬걸 아내 말로는 별 차이가 없답니다. 저나 아이나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집에서 해결하니 음식재료 공수가 만만치 않다는 하소연입니다.
“그거 알아? 아침 먹으면서 점심 머 만들지 고민하고, 점심 먹으면서 저녁에는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거가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아 나도 그 순간 식사에만 집중하고 싶다.”
삼식이 체험 중인 저로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삼식이도 꽤 힘든 거 알아?’라고 한 마디 던지고 싶다만 괜히 긁어 부스럼인 걸 뻔히 알기에 처량한 눈빛을 보낼 뿐입니다. 재택근무하면서 아프고 불편하고 집중해야 하고 바쁘고 정신없는 저로서도 밥맛이 예전 같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슬쩍 그렇게 말한 적은 있습니다. “아프고 불편하네.” 와이프와 아이가 웃습니다. “자기는 내가 보기엔 금방 회복할거야. 아프면 그렇게 밥을 맛있게 먹을 수가 없어, 식욕이 사라진단 말이야.” 그 말인즉슨 제 식욕은 ‘일반 사람’이 보기에 여전히 가공할만하다는 것이겠죠. 차려놓은 것을 남기지 않기 위해 맛있게 먹어줘도 핀잔입니다!
며칠째 통증에 잠을 통 자지 못했습니다. 이틀 내내 하루에 한 두 시간도 온전히 눈을 붙인 기억이 없습니다. 오늘도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서는 누워 숨 쉬는 게 힘들어 책방으로 와서 인터넷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 책도 뒤적이며 동터오는 걸 봤습니다. 블라인드 올리고 창문도 활짝 열어 환기도 시키고 전날 해놓은 설거지 거리들도 제자리에 옮겨놓습니다.
아내 기준으로 봐서는 아직은 견딜만 한 것 같다네요. 6시가 넘어서니 꼬르륵거립니다. 하이에나가 되어 부엌으로 향합니다. 우선 크로와상 하나와 씨리얼을 한 가득 그릇에 담고 우유에 적십니다. 촉촉한 씨리얼이 고소하네요. 혹시나 들킬까봐 먹고 난 그릇은 설거지해 놨습니다. 들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