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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GXING May 25. 2024

딸바라기 집안서열3위의 고충

[2024년 딸아이 열 다섯 살 (2)]

“아빠가 온라인에 글 써볼까 하는데 좀 신박한 네이밍 하나 없을까?”

“음 온라인에 글 쓴다면 괜히 무게 잡고 그런 제목 하지 마라, 재미없다”

“그러니까 하나 좀 지어달라고! 기존대로 khgxing 이걸로 그냥 할까?”

“아휴 그게 머야! 아빠 집에서 어차피 서열3위잖아. 집안서열3위로 해 ㅋㅋ”


그래서 온라인 아이디는 집안서열3위가 됐습니다. 참고로 우리 집은 달랑 3명입니다.


아이가 정리한 집안서열은 이렇습니다.

엄마 부동의 1위. 모든 결정권한 갖고 있음. 마음대로 결정사항 바꿀 수 있음

자신, 서열2위. 엄마에게 다소 밀리긴 하지만 최소한 아빠보단 앞섬. 아빠에게 무언가 ‘지령’을 내릴 수 있으며 무언가 시킬 수 있음

아빠, 서열3위. 엄마가 시키는 것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시키는 것도 해야 하는 신세. 간혹 반항해보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원래 해야 하는 것이 남아 있을 뿐.


조만간 브런치 아이디도 ‘집안서열3위’로 바뀌지 않을까 싶습니다. 


집안서열3위는 세상의 많은 아빠들이 그러하듯 소위 딸바라기입니다. 아이와 노는 시간이 제일 좋았습니다. 지금은 아이가 적극적으로 ‘놀아주지는’ 않지만 다른 것을 서로 하더라도 같은 공간에 있으면 좋아합니다. 다행히 아이도 마음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같이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같은 공간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 보입니다. 저 혼자만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서두요.


요즘엔 아이의 시선을 한번이라도 더 받아보려 무던히도 애를 씁니다. 그러다 아이에게 지청구를 받기도 합니다. 아내도 그만 좀 해라! 라는 경고성 눈 흘김을 보내기도 하구요.


이번 주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딸아이 학교에서 악기 연주 발표회가 있었습니다. 정시 퇴근 했습니다. 회사에서 아이 학교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립니다. 공연은 저녁 6시15분부터 시작했지만 아이 공연은 맨 마지막이기에 7시경 시작된답니다. 부리나케 갔습니다. 


공연인지라 기분을 냈습니다. 점심 때 회사 근처 꽃집에서 아담한 꽃다발을 하나 미리 사놨습니다. 이게 그렇습니다. 꽃 같은 선물은 받는 사람도 받는 사람이지만 주는 사람이 기분이 더 설렙니다. 더군다나 꽃을 사본 기억이 가물가물한 지경인지라 사면서 낯선 기분이 좋더라구요. 


그런데 이날 공연은 이렇게까지 준비할 공연은 아닌가 봅니다. 아내에게 카톡으로 꽃 사진을 보내니 이런 회신이 오네요. “설마 for 오늘 콘서트?”


아이 공연을 위한 꽃다발 구입 소식에 아내의 반응. 오늘 공연은 꽃다발 준비할 정도의 공연이 아니었나 봅니다. 


다행히 시간을 맞췄습니다. 조용히 공연장 뒤로 들어가니 끝에서 두 번째 공연단 연주가 한창입니다. 그 공연이 끝난 뒤 아내가 앉아 있는 앞부분 자리로 조용히 들어갔습니다. 앞에서 서너 번째 줄이네요. 


이제 딸아이와 함께 공연단이 들어옵니다. 아빠 왔다는 티를 내고 싶습니다. 무의식중에 손을 살짝 들어 흔들었습니다. 아내가 옆에서 “으이구 하지 좀 마!”라네요. 아 그럴 것 같습니다. 너무 설레발일 것 같네요. 


하긴 저도 학생 때 부모님이 학교에 오는 행사 같은 게 있으면 그랬네요. 반갑기는 하지만 괜히 부모님이 ‘오버’하면 짐짓 싫어하는 티를 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제가 그러고 있네요. 돌이켜보니 그때 부러 싫어하는 티를 왜 냈나 싶습니다. 다 같은 마음인데.


하여간 전략을 바꿨습니다. 아이와 눈을 마주치려 무던히도 애썼습니다. 이 녀석도 엄마 아빠가 어디 앉아 있나 슬쩍 곁눈질 하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아니라네요.) 눈이 마주치는 것 같아 우스꽝스런 표정을 지어 아이가 봤는지 확인합니다. 집에서 간혹 표정 하나로도 이 녀석 칫솔질 할 때, 드림렌즈 낄 때 웃음 폭발 시켜 방해하곤 합니다.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 같은데 본 건지 정확치 않네요.


공연을 마치고 아이와 만났습니다. 아이는 친구들과 얘기하느라 분주합니다. 저한테 눈길도 안주네요. “수고했어 잘 했다” 하니 시크하게 “응”하고 끝인데요. 이 녀석은 아빠와 밀당을 할 줄 아는 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와서야 알았습니다. 가방에 있는 꽃다발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요. 짐짓 아무것도 아닌 양 슬쩍 꽃다발을 건넵니다. 아이 표정이 밝습니다. “고마워, 예쁘다” 그제서야 잘 사왔구나, 안도합니다. 꽤 마음에 들었는지 화병에 꽂아 거실 탁자 위에 올려놓네요. 


화병에 꽂아 거실 테이블 위해 올려놓은 꽃다발


간혹 요즘 아이 관심을 끌고자 하는 모습을 보면 중학생 남자아이가 된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상대방이 약간 귀찮아하는 행동을 해서 관심을 유발하는 모습이 그러합니다. 이런 것이죠. 퇴근하고 와서 아이가 아직 안 자고 있으면 괜히 한번 관심 끌어 보겠다고 부러 그 녀석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눕거나 “뭐하고 있어?” 하고 말 걸어 봅니다. 


그럼 딸아이는 딱 두 마디 합니다. “가라, 나가” 전 이렇게 말합니다. “응 그래.” 영락없이 관심 받고 싶어 하는 중년 아빠 그 모습입니다. 


제가 요즘 애한테 ‘징징’대는 게 하나 있습니다. 스포티파이에 노래 리스트 만들어 달라는 겁니다. 별건 아닙니다. 출퇴근길이나 운동할 때 간혹 노래를 듣는데 그때 들을 수 있는 즐겨찾기 리스트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거 만들어 달라는 거죠. 제가 직접 할 수도 있지만 왠지 아이가 엄마한테는 선물로 만들어 줬기에 나도 달라는 ‘당당한’ 요구인 겁니다. 


하지만 이 녀석은 가차 없습니다. 생일까지 기다리라는 겁니다. 사실 엄마한테 만들어 준 것도 생일선물로 만들어 준 겁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 학창 시절에 친구 생일날 카세트테이프에 노래 녹음해서 주던 것과 같은 이치네요. 하여간 이 녀석, 아빠한테 미리 만들어 주면 생일선물 다른 거 준비해야 하니 부러 만들어주지 않고 있는 겁니다. 


간혹 농담 삼아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너 나중에 대학생 되면 너 학교 근처에서 아빠 하숙집 할란다.” 애는 학을 떼네요. 이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결혼 안 해도 된다. 아빠 엄마랑 함께 살자.” 이 말에는 아내가 학을 떼네요.


마음이 그렇습니다. 빨리 커나갔으면 하는 마음도 한 편에는 있지만 천천히 커도 좋겠다는 마음도 다른 한 편에 있습니다. 요즘 부쩍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는 기분이 드는 나날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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