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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GXING Apr 21. 2020

"소중한 두 개 왜 빼?!"

2020.4.5

민선이는 1,100개 한 것을 알고 있을까? 줄넘기 개수 말이다.


코로나19로 학교 개학이 연기 되고 연기 되고 또 연기됐다. 사상 초유의 사태이고 세계사적인 상황이다. 이런 블랙스완을 민선이는 즐겁디 즐기고 있다. 학생 때 그렇지 않은가. 일단 학교 안가면 좋지 않은가. 여름방학이 줄어든다는 말에는 “그런 말 하지마! 지금 좋잖아!”란다.  


반대다. 지선이는. 학교 안가고 집에 있는 아이 모습에 “언제 학교가나”이다. 학교 공부 때문은 아니고 하루 종일 민선이 챙겨야 하니, 매순간 딸아이와 툭닥거리니 그럴 수밖에. 민선이 녀석 먹성이 좋아서, “아침은 머야”, “점심은 머야”, “저녁은 머야” “간식은”을 시도 때도 없이 물어본다. 그것도 스트레스란다. 안 겪어보면 모른다니 그런가 보다 한다. 학교 교재 풀이 도와주면서는 답답해 죽는다. 한글 책보다 영어 책을 더 좋아하는 민선이에게 한글 책 읽으라 엄하게 말하지만 그때뿐이다.


운동할 때도 데리고 다니며 운동 시켜야 하니, 가기 싫어하는 아이 달래고 혼내며 데리고 나가는 것부터가 진이 빠진단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선이의 말도 이해는 된다. 그래도 다행은 다행이다. 민선이는 결코 주눅 들지 않는다. 엄마한테 눈을 흘기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 엄마 껴안고 웃음 한바가지다.


아무리 운동을 시켜도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것도 아니고 매일 하던 수영을 하지도 못하니 운동량이 부족한 건 사실. 그래서 대안으로 찾은 게 줄넘기다. 민선이는 하루에 줄넘기 1,000개를 해야 한다. 엄마가 데리고 나가서 하던지 아니면 혼자 나가서 하고 들어온다. 그래도 ‘아직은’ 순진한 딸내미여서 1,000개를 꼬박 한다. 혼자서도.


오늘은 일요일이니 나보고 데리고 나가서 줄넘기 시키고 오란다. 민선이도 잘됐다 싶은가보다. 아빠는 엄하게 하지 않으니, 그리고 1,000개 세는 것도 귀찮은데 아빠한테 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민선이가 모르는 게 하나 있다. 나갈 때 엄마가 아빠한테 넌지시 ‘지시’한 게 있다. 개수 셀 때 밑장 빼라고. 1,100개 이상의 1,000개를 시키라는 말이렷다.


자 이제 ‘작전’ 시작. 100개를 넘었지만 100개를 부르지 않는다. 130개가 되어서야 민선이가 걸려서 멈췄다. 몇 개 했냔다.

“응 100개”

“어 이상한데? 아빠 나 120개는 넘었어!”

“그래? 이상하다 아빠가 잘 못 셌나? 120개로 할까 그럼?

”아냐 알았어 100개로 해. 대신 50개 할 때마다 50이라 말해줘. 얼마 했는지 알아야 나도 잘 한단 말이야“

”알았어“(뜨끔했지만 잘 넘어갔다)


다시 시작이다. 이번에는 50단위이니 애매하다. 우선은 50 셈을 지킨다. 300개를 넘어가서는 슬슬 다시 작동이다. 10개씩은 더 가서야 50을 부르고 100을 부른다. 민선이가 힘들다고 멈췄다. 32개 정도 했을 때다.


“몇 개 했어?”

“응 30”

“아빠! 이상하다! 나 서른두개 했단 말이야”

(이녀석 속으로 세고 있었나 보다) “멈출 때는 10단위에서 끊어야지”

“안돼! 내 소중한 두 개 왜 빼?!”

“알았어, 알았어”


700개를 넘어가면서 이 녀석도 슬슬 힘든가 보다. 적당히 빼야겠다. 800을 넘어가면서는 10개만 더 붙였다. 힘들어서 줄넘기 자세가 흐트러진다. 제대로 하라고 흉내를 내니 역효과다. 웃음보가 터졌다. 머가 그리 웃긴지 배를 잡고 웃는다. “아빠 그만해! 웃겨서 못하겠어!”


1,100개 같은 1,000개를 채우고 꽈배기 연속 5개까지 한 뒤에 오늘의 줄넘기 과제는 다했다. 목발 짚은 아빠 옆에서 발그레한 얼굴로 웃음 터져 있는 민선이 모습이 마냥 좋기만 하다. 이 글을 언젠간 읽을 민선이가 “아빠! 이럴 줄 알았어!” 하며 달려들 모습이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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