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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Jan 28. 2024

뷔자데

<한뼘소설> 4화

 화창한 주말 아침, 반쯤 열어둔 블라인드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봄햇살이 뱅&올룹슨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쇼팽의 왈츠곡 1번 '화려한 대왈츠'의 피아노 음률에 맞춰 황홀한 광무(光舞)를 추었다. 전문 하우스키퍼인 베일리도 천재 작곡가이자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던 음악가의 예술혼을 오롯이 이해하는 것처럼 섬세한 동작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거실부터 서재까지 무소음 무선 청소기로 먼지 하나 없이 만들더니 어느새 화장실 청소까지 마무리했다. 아메리칸 스탠더드 변기가 은은한 조명에도 반짝했다.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효율적인 손놀림으로 건조기에서 수건을 꺼내 색깔별로 차곡차곡 개었다. 때마침 25분에 맞춰 놓은 타이머가 따르릉, 따르릉 경쾌하게 울렸다. 베일리는 노랗게 익은 스콘을 꺼내 아일랜드 식탁에 올려놓았다. 180도로 예열해 놓은 덕분에 먹기 좋게 잘 익었다. 갓 구운 빵에서 기분 좋은 냄새가 풍겼다. 0.5cm 두께로 버터를 깍둑썰기하고 차가운 우유에 달걀을 적당히 풀어 박력분 300g에 옥수숫가루 20g과 베이킹파우더 6g, 설탕 45g, 그리고 소금 3g을 체에 걸러 잘 섞어준 후 미리 준비해 둔 버터와 계란 우유물을 넣어 10분 동안 치댔다. 바쁜 아침에 준비하기에는 손이 많이 갔지만, 아이들이 갓 구운 스콘을 좋아하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빵이 먹기 좋은 온도로 식는데 5분 정도 걸렸다. 아직 준비할 게 남았다. 베일리는 서둘러 어젯밤 씻어둔 싱싱한 유기농 야채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두 개의 우드 샐러드 보울에 각각 담았다. 하나는 오리엔탈 드레싱을, 나머지 하나에는 허니 머스터드 드레싱을 골고루 뿌려주었다. 입맛이 다른 아이들을 위한 조치였다. 곧바로 인덕션 앞으로 자리를 옮긴 베일리는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둘렀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한 손으로 계란을 깼다. 정확히 1분 만에 맛있는 계란 프라이가 탄생했다. 두 개는 써니 싸이드 업(Sunny Side Up), 두 개는 노른자와 흰자가 완전히 섞여 양쪽을 모두 익힌 오버 하드 프라이드 에그(Over Hard Fried Egg)였다. 매일 아침 반복하는 동작이기에 0.1초의 낭비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신선한 제주 우유를 냉장고에서 꺼내 테이블 세팅을 마무리한 베일리. 식탁에 올려둔 스콘에서 봄날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 흰 연기가 햇살 사이로 흩어져 사라졌다. 먹기 좋게 식었다는 신호였다. 베일리는 부드러운 솔# 음성으로 아이들을 불렀다. 이내 개구쟁이들이 뛰어와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어, 소금이 없네. 베일리 소금 좀 꺼내 줄래?" 

 "………."

 "베일리, 소금 좀 부탁해."

 "………."
 "베일리, 명령이야. 소금!." 

 "뭐야! 아이씨. 형아, 베일리 고장 났나 봐. 왜 하필 브런치 먹을 때 귀찮게. 엄마한테 전화할까?" 

 "그 정도는 너희들도 할 수 있잖아. 날 좀 내버려 둘래?"

 그 순간 최고급 스피커에서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평화로운 봄날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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