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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Feb 12. 2024

패스워드(The Password)

<한뼘소설> 6화

 해진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심장 박동이 두 배는 더 빨라졌다. 얼마나 눈동자를 굴렸는지 두 눈이 욱신거렸다. 왼쪽 엄지 손가락을 얼마나 물어뜯었는지 손톱 끝이 시퍼랬다. 등 뒤에 선명하게 박힌 나이키 로고가 소나기를 맞은 것처럼 후줄근했다. 영혼으로부터 끌어내 심호흡하고 모니터를 뚫어질 듯 바라보았다. 자판 위 가지런히 올린 두 손이 물색없이 떨렸다. 프로그래머인 해진은 1분에 수 백개 단어를 오타 없이 타이핑했다. 그런 그가 검지 손가락 하나만 곧게 폈다. 기회는 두 번밖에 남지 않았다. 오랜 비행에 지친 독수리가 자판 위로 천천히 하강했다.  


 N.e.i.g.h.b.o.r.1.9.6.7.^.^


 숨을 멈추고 조심스레 엔터키를 눌렀다. 모니터 위로 '유효하지 않은 패스워드'라는 메시지가 해진을 비웃는 듯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중학교 때부터 각종 계정에 사용한 패스워드였다. 다른 패스워드는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더랬다. 가상화폐를 넣어 둔 디지털 지갑에만 다른 패스워드를 사용할 까닭이 눈곱만치도 없었다. 혹시 몰라 대소문자를 바꿔가며 아홉 번이나 시도했는데 결과는 모두 똑같았다. 망할 놈의 에러 메시지가 약 올리듯 모니터를 채웠다. 해진은 세상의 모든 욕을 동원해 자신과 자신의 하찮은 기억력에 퍼부어댔다. 차라리 망각이라는 축복 속에 내던져진 채 사는 게 마음 편했다. 왜 하필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대청소가 하고 싶어 15년도 넘은 낡은 노트북을 발견했을까. 무신론자인 해진은 이것이 신의 축복인지, 저주인지 한참 동안 생각했다. 아무튼, 이제 기회는 딱 한 번밖에 남지 않았다. 마지막 기회를 날려 버리면 디지털 지갑은 자동으로 파괴되도록 설계되었다. 열 번의 기회 동안 패스워드를 올바르게 입력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파괴되는 초창기 디지털 지갑 모델이었다. 지갑 안에는 1만 개 비트코인이 잠들어 있었다. 오늘 시세로 1 비트코인이 7천2백만 원을 웃돌았다. 7천억 원은 해진의 꿈을 현실화하고도 남을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2010년 5월, 라슬로라는 이름의 남자가 비트코인 포럼에 피자 두 판에 1만 비트코인을 내겠다는 말도 안 되는 글을 올렸다. 비트코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였지만, 아무도 그의 제안에 선뜻 응하지 않았다. 모두 기술적인 관심만 있을 뿐 현실에서 비트코인을 사용하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해진 역시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상 암호화 기술에 관심 있을 뿐이었다. 측은지심이 발동한 해진은 라슬로라는 친구에게 파파존스 피자 두 판과 콜라 한 병을 보내주었다. 라슬로는 피자를 배달받은 즉시 해진의 디지털 지갑으로 1만 비트코인을 전송했다. 이후 먹고사는 일에 내몰려 비트코인에 관심이 시들해진 해진은 그 사실을 까맣게 잊었고, 대청소 중 우연히 발견한 노트북을 살펴보다 디지털 지갑과 마주하게 되었다.  


 모니터를 앞에 두고 해진은 깊은 고뇌에 싸였다. 지금 이 순간 컴퓨터를 끄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살 수 있을까, 예전처럼 살 수 있을지 자문했다.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마지막 기회마저 날려 버리면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 평생 자신을 저주하지 않을까? 해진은 두 눈을 감았다. 지난 삶이 필름 영화처럼 한 컷 한 컷 머릿속을 스쳐갔다. 불의에 저항하며 선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후회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두 손을 자판 위에 나란히 올렸다. 이번에는 거짓말처럼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 한 글자씩 천천히 자판을 두드렸다. 가능성 있는 조합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N.e.i.g.h.b.o.r.1.9.6.7.^.^.!


 가운데 손가락을 엔터키 위에 살포시 포갰다. 순간 모니터에 이전과 다른 메시지가 떴다. 해진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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