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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Feb 24. 2024

소나기

<한뼘소설> 8화

“준비되셨죠, 기사님? 카메라 보시고 친구끼리 대화한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큐!” 

 “죄송해요, 한 기자님, 질문이 뭐였죠? 아, 맞다. 생각났다. 택배 일이 힘들지 않냐고요? 물어 모해요. 힘들죠, 많이. 몸 쓰는 일이잖아요. 인공지능이 탑재된 학습형 택배 로봇이나 드론이 물류에 도입되면서 오히려 20kg 넘는 물건들은 죄다 우리 차지가 됐으니까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아이러니죠. 게다가 직장인들은 주 4일 근무에 32시간만 일하잖아요. 우리는 여전히 50시간 넘게 일해요.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라 근로기준법은 먼 나라 이야기죠. 그나마 십여 년 전에 전국택배노조가 결성돼 형편이 나아진 게 이 정도예요. 바깥에서 일하니까 계절과 날씨에 영향도 많이 받고요. 눈비 오는 날은 더 힘들죠. 특히 예고 없이 소나기라도 내리면 발을 동동 굴러요. 내용물이 상하는 것도 아닌데 택배 상자가 젖으면 고객들이 싫어하거든요. 물론 모든 고객이 다 그런 건 아니에요. 천사 같은 분들도 많으니까요. 일이니까 어떻게든 해내야죠.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은 없잖아요. 욕심 안 부리고 체력 받쳐주는 만큼만 일하면 저랑 우리 반지 먹고살 만큼은 벌어요. 아, 반지는 제가 키우는 비글이에요. 요즘 한창 재롱떨 때라 고 녀석 보는 재미로 살죠. 돈 싫어하는 사람 없지만 욕심부리면 끝이 없잖아요. 우리 센터에도 얼마 전에 한 분이 과로사로 돌아가셨어요. 올해로 벌써 아홉 분째예요. 기술이 발달해서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밤에 주문한 물건이 새벽에 도착하는 시대잖아요. 세상은 더 편해졌는데, 왜 우리 기사들은 갈수록 힘들어지는지 모르겠어요. 그게 좀 답답하죠.” 


  “이 일에 보람을 느끼냐고요? 그럼요. 요즘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택배 가지고 가면 얼마나 반갑게 대해주시는지 가끔 민망할 정도라니까요. 그럴 때 보면 사람들이 정말 외로움을 많이 타는구나 싶어요. SNS에선 혼자 사는 삶이 무척 낭만적이고 화려해 보이지만, 사실 그거 대부분 연출이잖아요. 진짜 외로우니까 안 외로운 척하려고 그러는 거잖아요. 심지어 1인 가구는 반려견들까지 난리도 아니에요. 처음에는 제 몸에서 강아지 냄새가 나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개들도 외로움을 탄다고 하더라고요. 매일 혼자 지내는 우리 반지한테도 얼마나 미안한지…. 아무튼, 제가 그냥 무거운 상자만 나르는 사람은 아니구나 싶을 때 보람을 느끼죠. 가끔 문 앞에 고맙다는 편지도 써주고 한여름에는 고생한다고 시원한 생수나 음료수를 놓아두는 집들도 있어요. 겨울에는 핫팩도 놓아주고요. 그럴 때는 정말 울컥하죠. 이런 분들 덕에 세상은 아직 살만하구나 싶기도 하고요.”  


 “길거리에서 택배 로봇을 만나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궁금하다고요? 글쎄요.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그냥 참 열심히 다니는구나 뭐 그 정도죠. 신기하기도 하고요. 언젠가 우리 일을 빼앗아 가겠지만, 아직은 시간이 좀 있잖아요. 악당으로 보이지는 않아요. 처음 드론과 택배 로봇이 도입될 때만 해도 곧 택배 기사가 사라지리라 걱정했지만, 그렇지만은 않았잖아요.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여기저기서 불거졌으니까요. 가까운 거리도 멀리 돌아가거나 해킹 문제 같은 거 말이에요. 한 기자님도 기억하시죠? 택배 상자를 싣고 가던 드론이 주파수 가로채기로 강남 8차선 도로 한가운데 떨어져 난리가 났었잖아요. 결국 가벼운 물건은 택배 로봇이 맡고 섬이나 산골 마을처럼 접근이 어려운 지역은 드론이 맡게 되었죠.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이 완전히 배제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은데, 한 기자님 생각은 어떠세요? 제가 파워 ESFP거든요. 하하하.” 


 “한 기자님, 인터뷰할 거 더 남았어요? 물량이 밀려 자정 넘겨야 끝날 것 같네요. 꿈이 있냐고요? 글쎄요. 반지랑 행복하게 사는 거 말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아, 맞다. 하나 있어요. 번개 배송, 총알 배송 이런 건 좀 없어지면 좋겠어요. 우리 기사들이 힘들어서 그런 건만은 아니에요. 세상이 너무 빨라지잖아요. 자동차도 세상도 스피드에만 집착하면 탈 나기 마련이거든요. 서행 구간도 필요한 법이죠. 정말 급하게 필요한 물건은 가까운 동네 마트에서 살 수 있잖아요. 산책도 할 겸 동네 한 바퀴 도는 거죠. 요즘 골목골목마다 개성 있는 식당들이 은근히 많거든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일이니까 맛집 정보는 빠삭해요. 암튼 너무 빨리 가면 안 돼요. 다 함께 천천히 가야죠. 너무 뻔한 말인가요? 마지막 말은 기자님이 알아서 편집해 주세요. 이제 정말 끝난 거죠?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친구들한테 텔레비전 나온다고 소문 쫙 냈으니까 뽀샵 꼭 해 주셔야 해요. 수고하셨습니다, 한연호 기자님.”   


 택배 기사 정근이 모니터 속에서 환하게 웃었다. 아마도 그의 마지막 웃음이었으리라. 인터뷰를 진행한 이틀 후 정근은 지하 원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연호는 숨진 정근의 옆을 끝까지 지켜준 반지를 떠올렸다. 정근이 고독한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하니 헛헛한 마음이 아주 조금 위로되었다. 연호가 정근을 인터뷰한 ‘4차 산업혁명 시대어느 택배 기사의 하루는 '택배 없는 날' 저녁 방송될 예정이었지만,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으로 불방되었다. 방송은 나가지 못했지만, 연호는 편집본을 정근의 부모님께 전해드렸다. 그의 마지막 미소를 보여드리는 게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정근의 죽음은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연호는 기분이 씁쓸했다. 그의 죽음을 과로사로 인정받는데 1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어젯밤 주문한 물건이 오늘 새벽에 도착하는 초고속 시대, 그 일을 온몸이 부서지도록 해낸 택배 기사의 죽음을 규정하는데 왜 그토록 긴 시간이 걸렸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정근이 말한 세상의 브레이크는 정작 그의 죽음을 인정받는 데에만 작동한 듯했다. 창밖으로 먹구름이 몰려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세차게 빗방울이 쏟아졌다. 일기 예보에 비 소식은 없었는데 또 달갑지 않은 소나기가 퍼부었다. 연호는 어디에선가 발을 동동 구를 수많은 정근이 떠올랐다. 기왕 퍼붓는 김에 오늘 하루쯤 세상이 멈추면 좋겠다고 그녀는 물색없이 혼잣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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