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몇 달째 불면증에 시달리며, 두통까지 따라왔다. 이명까지 생기면서 예민해졌다. 몸이 안 좋다 보니 마음도 지쳐갔다. 상담을 받고 싶었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어 그럴 수가 없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어내지 못한 채 걱정과 불안에 시달렸다. 매일 그렇게 생각 속에 끌려다니면서 일상생활이 불편해졌다. 외형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불편함은 해결되지 않았다. 남편은 직장생활을 잘하고, 아이들도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잠든 후, 그 시간을 아까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곤 했다. 영화나 인스타그램 등을 보며 인터넷 세계에 빠져들었다. 한두 시간만 하자고 생각했지만 결국 몇 시간씩 보내게 되었다. 그 시간은 나만의 시간이었지만, 그로 인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늦어지고, 아침에 눈을 뜨면 피곤함이 밀려왔다. 결국 그 습관들이 쌓여 몸 상태가 더욱 나빠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독서 모임 언니가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괜찮냐?" 나는 아무 말 없이 침묵했다. 그때 언니는 법륜 스님의 정토회에 다녀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불교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언니가 보여준 동영상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 그 영상에서 '나를 알아가는 공부'라는 문구가 떠오르며, 이 기회에 내 삶을 돌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남편은 기독교 집안이라 반대했지만, 결국 법당에 가기로 결심했다.
법당에 들어서자 갈색 방석에 앉았다. 법문을 듣기 전에 10분간의 명상 시간이 있었다. 눈을 감고 코끝에 집중하며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고요히 숨소리에 집중하다 보니, 주변의 소리들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 차의 엔진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새들의 지저귐... 그 소리들은 그동안 놓쳤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다. 명상은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지만, 나에게는 평안을 주었다. 내면의 소리를 듣고, 과거의 기억을 돌아보며, 현재의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그 시간은 마치 깊은 우물처럼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여행이었다. 그동안 흘려보내지 못한 감정들이 물길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꾸준히 명상을 하면서 감정 기복이 줄어들었고, 예민함도 덜해졌다. 또한 알아차림을 통해 걱정이 멀어지고, 생각이 점차 줄어들어 삶이 단순해졌다. 과거와 미래의 불안과 걱정보다는 현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10분이라는 시간이 짧을 수도 있고, 길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명상을 하고 나면 삶에 대한 태도와 질이 달라졌다.
명상은 떠다니는 생각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오늘 명상을 할 때도 그랬다. '글쓰기와 명상에 대한 글을 써야 하는데, 어떻게 쓸지?' 하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화요일 미술 수업에 대한 걱정도 함께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수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명상 덕분에 마음 상태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신기한 일이 있었다. 예전에는 일상에서 화가 나면 감정을 제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명상을 하면서, '지금 나는 화를 내고 있구나. 짜증을 내고 있네'라고 알아차리게 되었다. 마치 자동차가 시동을 걸고 달리다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고 멈추는 느낌이었다. 감정이 출렁거리던 때가 평온해졌다.
명상은 모두에게 맞는 방법은 아닐 수 있다.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 명상은 내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고, 자신을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명상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생활습관이나 건강도 중요한 부분이다. 건강이 나쁘다면 명상만으로 고쳐지지 않는다. 그럴 때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명상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었고, 과거의 기억 속에서 왜 불안과 걱정이 많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마치 영화관에 앉아 내가 아니라 제삼자 입장에서 내 인생을 돌아보는 듯한 경험을 했다. 명상은 나의 감정과 생각을 정리해 주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