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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의 무게, 불안의 그림자

by 감사렌즈

신호등을 기다리며 따사로운 햇살을 느낀다. 이 순간, 살아 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10년 전, 바로 그 자리에서, 그 버스정류장에서 서 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버스를 타기 위해 밀려드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힘겹게 탔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날도 그랬다. 사람이 가득 찬 버스에서 숨을 쉴 공간이 없어서 호흡이 가빠졌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며 숨을 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결국, 버스 안에서 주저앉았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일을 계속 나가야 했기 때문에, 그 모든 상황은 정말 버겁고 고통스러웠다. 그때마다 원망과 분노가 밀려왔다. "왜 이렇게 돈이 없는 남편과 결혼해서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그때, 어깨를 툭툭 치며 자리를 양보해 주신 한 분이 있었다. 창문을 열고 바람을 쐬니 살 거 같았다. 순간, 사람이 이렇게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회사로 가는 길, 눈물이 났다. 그 눈물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퇴근 후에는 남편에게 그날의 힘든 이야기를 전했다. 미안해서 그런지 아무 말이 없었다. 남편은 피자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서 육아를 함께 할 수 없었다. 퇴근 후, 어린이집에서 3살 된 아들을 데려오면, 몸이 무거워 업을 수가 없었지만, 아들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어서 업고 집으로 갔다. 그때, 어떻게 그런 힘이 나왔을까? 만삭의 몸으로 아이를 업고 가는 것, 그것이 바로 모성애인가 싶었다.

집에 돌아오면 아이의 밥을 챙기고, 집 청소를 하고, 빨래를 개다가 피곤에 지쳐 잠이 들었다. 눈을 떠 보니 8시가 넘었다. 첫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출근해야 했다. 허겁지겁 준비하며 녹초가 되었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버스를 기다리던 그 순간이었다. 문득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지금 이 시간을 끝내고 싶다. 파란 버스에 뛰어들까? 이 시간이 언제쯤 끝날까?

하지만, 그때 배를 만지며 생각했다. 배 속의 아이는 어떻게 될까?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너무 가엾어. 안 돼. 내 아이를 지켜야 해.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고달프고 힘들었다. 남편은 가게 일로 도와줄 수 없고, 모든 걸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 벅찼다. 그 시간을 그냥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 10년 전 나와 지금에 내가 달라졌다는 걸 알았다. 과거에 비해 마음은 단단해졌고, 힘든 순간에도 그때의 경험들이 지탱해 준다. 힘든 기억들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그 덕분에 지금도 어려운 일들을 이겨내는 힘이 된다.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이 쉽지 않고, 가끔은 두려움에 도망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 어려움을 맞아들인 뒤에는 항상 해내고, 잘 키워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 나를 보면 정말 자랑스럽고 고맙다.


그때, 나 자신이 너무 나약하다는 걸 알았다. 아이들을 키우려면 체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내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명상을 시작했다. 하루 10분, 깊은숨을 들이쉬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처음에는 머릿속이 복잡하고 잡생각이 많았다. 마음이 떠도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점차 그 소란 속에서 마음의 중심을 찾을 수 있었다. 명상은 온전히 나 자신과 마주하게 해 주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명상 속에서 과거의 상처와 불안이 여전히 내 안에 있음을 직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조금씩 그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그것을 부정하려 했지만, 이제는 그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내 마음이 치유될 수 있음을 알았다. 명상은 가벼워지게 했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평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운동도 병행했다. 계단을 오르고 산책을 하면서 몸이 조금씩 강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운동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명상이었다. 몸의 변화보다는 내 마음의 변화가 더 중요한 순간들이 있었다. 명상은 내 마음을 다잡고, 불안과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게 도와줬다. 운동을 통해 몸을 돌보는 것처럼,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 되었다. 영양제를 빠짐없이 챙겨 먹으며 몸을 돌보듯, 명상을 통해 내면을 돌보았다.


책을 읽고 지혜를 얻으며 삶에 적용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명상 속에서 자신을 마주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었다. 명상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해주었고, 머릿속은 점차 정리되었으며, 그 과정 속에서 점점 더 단단해졌다. 두려움은 점차 사라졌고, 평화와 힘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명상은 나를 변화시켰다. 과거의 내가 느꼈던 불안과 두려움은 여전히 내 안에 있지만, 이제 그것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그 감정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법을 배웠다. 내면의 평화가 자리 잡으면서, 나는 더 이상 과거의 그림자에 사로잡히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10년 전의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때 정말 힘들었지만, 잘 견뎌줘서 고마워. 그 시간을 버텨주었기에 오늘 내가 여기 있고, 이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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