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딴생각해?"
어린 시절, 자주 듣던 말이었다. 초등학교 수업시간, 초록색 칠판을 보고 있지만 머릿속은 이미 과거에 멈춰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종종 사람들에게 동문서답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학교에 오셨다. 엄마와 담임 선생님께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나는 그 옆에 앉아 있었다. 선생님께서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시며 "정서 불안"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로 인해 충동적이거나 안 좋은 일이 있을 수 있으니 잘 보살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집으로 걸어가셨다.
정서 불안은 언제부터 내 안에 있었을까? 그건 아마 8살이 되기 전, 엄마와 떨어져 있었던 그 시점부터 시작된 것 같다. 삼촌에게 맞았던 기억이 그때 그 시간에 멈춰 있었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 기억이 자꾸 떠올라 사람들의 검은 눈동자를 직시하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하늘을 보거나 땅을 보면서 대화를 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가 3초 만에 딴생각을 하곤 했다. 간절히 1분이라도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었지만, 그게 어려웠다. 중요한 일도 귀에 담기지 않아, 다 흘려보냈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자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대화가 되지 않으면 우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연습부터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듣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연습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말하면, 이해는 안 되지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용이 정리되지 않아서 엉뚱한 말이 나왔다. 듣고 있지만, 집중되지 않았고, 내 생각을 꺼낼 수도 없었다.
이런 증상은 대학 시절까지도 이어졌다. 광고 디자인 수업에서 조별 과제가 있었다. 각자 역할을 맡고 진행해야 했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하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봐 조용히 있었다. 결국 이해하지 못한 채 그 주에 엉뚱한 과제를 해갔다. 같은 조 친구들에게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다음 주엔 잘 해와야지" 생각했지만, 계속해서 다른 과제를 해왔다. 그때는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어버리고 싶었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럴까?" 자책하며 학교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10년이 지난 후에야 왜 그랬는지 알게 되었다. 그때 내 안의 상처받은 내면 아이는 치유가 필요했던 상태였고,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곪아 있었던 것이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머릿속을 계속 어지럽혔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그 기억들이 떠오를까 봐 두려워 말문을 닫고 살았다.
그 후 결혼을 하게 되었다. 대화가 관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히 느꼈다. 대화가 되지 않으니 그로 인해 자주 다투게 되었다. "답답해. 너랑 대화하면 벽하고 하는 것 같아." 남편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화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내면의 치유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명상도 알게 되었다. 명상은 나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퇴근 후 남편과 대화할 때 눈을 바라보는 연습을 하며, 내가 지나치게 딴생각에 빠져 있었음을 깨달았다. 명상을 통해 호흡에 집중하며, 내면을 가라앉히고,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는 방법을 배웠다. 습관을 바꾸는 건 쉽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연습했다. 딴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메모지에 상대방의 말을 적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집중하는 연습을 했다. 명상을 통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여전히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명상을 통해 그것과 거리 두기를 시작했다. 내면의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몇 년 동안 명상과 대화의 연습을 거쳐, 이제는 사람들과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명상은 내게 단순히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면을 들여다보고, 나 자신을 이해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어린 시절,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이제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