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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와의 전쟁, 그리고 내 감정의 자리

by 감사렌즈 Mar 16. 2025

한숨이 늘었다. 그 안에는 자격증, 취업, 아이들 학원비, 그리고 사춘기 아들이 있었다.

어제도 중학교 1학년 아들과 한바탕 싸웠다. 초등학교 4학년 동생을 데리고 PC방에 갔다 왔다. 데리고 가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5분만, 10분만 하고 그만하라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결국, 안되겠다 싶어 폰을 뺏었다.

그러자 아들은 아파트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고함부터 지르는 버릇, 이번에는 꼭 고쳐야겠다고 결심했다. 몇 번이고 타일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아들의 멱살을 잡았다. 복도로 끌고 나가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지만, 그 순간 손을 놓쳤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도저히 말을 듣지 않으니 충격요법이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잘못된 방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옆집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아이를 훈육할 방법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아들은 후다닥 뛰어가 현관문을 걸어 잠갔다. 숫자를 세며 문을 열라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 결국, 게이트 문 건전지를 빼고 음악을 크게 틀어둔 채 샤워를 했다. 맨발로 나와 복도에서 서 있으니 차가운 기운이 발끝에서부터 스며들었다.

‘이놈의 사춘기, 정말 지긋지긋하다.’

육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어 다닐 때는 머리가 다칠까 봐 걱정했고, 뛰어다닐 때는 넘어질까 봐 노심초사했다. 매 순간마다 새로운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춘기의 벽은 유독 더 높고 단단하게 느껴졌다.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상황이 닥치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성 버튼’을 켜려 애썼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밤새도록 복도에서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 집으로 와달라고 부탁드렸다. 다행히 아들은 목사님의 방문에 문을 열어주었다.

늦은 밤 연락드린 점을 사과하며,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아들은 목사님 앞에서 쏟아내듯 내게 쌓였던 불만을 말했다.

‘이녀석,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이쁘게 봐주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아니면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 걸까. 오늘의 이 상황을 1년, 2년 후에 되돌아본다면 별일 아닐 수도 있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의 고민을 들으면 나만 힘든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내 아이와 부딪히는 그 순간에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싸움을 하는 듯하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이겠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나가야 할지 매일 고민이 깊어진다.

감정적으로 행동했던 순간이 후회된다. 그래도 부모라면 무조건 참아야 하는 걸까? 아니다. 참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속에 쌓이면 병이 된다. 감성적으로 행동하는 대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감정을 먼저 알아차려야 한다.

‘지금 내가 화가 나고 있구나.’

‘왜 화가 났을까? 아들이 내 말을 듣지 않고 PC방에 가고, 스마트폰을 했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이런 감정을 제대로 알아차리고 인정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매 순간 내 감정을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명상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리고 감정을 다스릴 수 있도록 운동, 글쓰기 같은 활동을 꾸준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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